불교의 '마음공부'는 정확한 비어있음에 대한 인식(공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오계를 지키고 채식을 실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오계와 채식은 자비와 연결된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길을 차근차근 따르다 보면 끝내는 붓다가 되어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데,
그러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은 37가지 방법이 있다.
이 37조도품 중에서 처음 출발하는 지점이 바로 사념처(四念處) 수행, 신수심법(身受心法) 이다.
바로 몸과 느낌, 마음과 법(진리)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라 여전히 헷갈리는 개념이 많지만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관찰하는 일에 재미가(?) 붙는 것 같다.
때때로 내 자신이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날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좌절하지 말라'는 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정말 큰 힘이 된다.
몇일 전에 살핀 '나'란 존재는 '부정적인 생각의 노예'에 지나지 않구나 싶었는데,
오늘 살펴본 '나'는 '감정의 노예'였다. 완전히 심한 기분파.
내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한 앞으로도 영영 그렇게 살수 밖에 없을거다.
이 몸은 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토록 음식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걸까?
스님께선 음식이 바로 불성이라는 말씀을 하셨을 정도로 음식을 가려먹는 것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신다.
식습관이란 '내 몸'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하는 듯 싶긴 하면서도...
여튼, 몸은 정말 까탈스럽다.
많이 먹어도, 부족하게 먹어도, 영양 성분이 엉터리인 음식을 먹어도 금세 피곤해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이지 철저하게 음식을 가려서 평상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서 그날 하루를 부정적인 감정 덩어리로 살게 된다.
못나고, 비뚤어지고, 비웃기 좋아하고, 흉보고, 뻔뻔한 감정들이 수도 없이 오고 간다.
기분이 나쁜 상태에선 심지어 그런 마음을 내는 것에 당당하기까지 하다.
죄책감도 없어서 미안한 마음도 들지 않을 뿐더러, 누군가 시비라도 건다면
'내가 뭘 어쨌다고! 어쩌라고!'하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자체를 알아차리게 되면 '아차' 싶어지면서, 서서히 감정이 누그러진다.
오늘 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금 여기에 스님이 함께 하고 계시다고 여기며 상상으로 떠올리는 일이었다.
그랬더니 날뛰던 마음이 급작스레 순둥이같이 굴며, 삐딱하던 자세를 고쳐 바로서게 되었다.
마음이란게 참 어찌나 미묘한지 똑같은 말투와 상황인데도,
예전엔 '왜 나한테 난리야' 했던 것이,
이제는 '저 사람들이 모자란 부분들을 나에게라도 의지해주니 참 고맙다'는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
멀리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문제들도,
가까이에서 갇혀 있다보면 굉장히 큰일이고, 심각하고,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다 그게 아니였음을 알고 나면 안도하게 되면서 다시 편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조금 칭찬을 받으면 '이런 걸로 아상을 높이진 않아'하고 여기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잘해서 그렇지'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언제나 천사같은 말과 행동들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건 내가 아니라 전체의 마음인건데)
하지만 조금만 지나도 금방 예전의 습관들이 다시 되돌아오기 때문에,
지금의 내 위치가 어디인지를 다시 자각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온갖 부정과 고통도 나 자신을 알게해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에 좋은 점이 있다.
오늘은 그런 하루였다.
진정으로 진실되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벗이 되고 싶다.
* 무지무명의 어리석음을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_()_ _()_ _()_
* 스스로를 살피면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밀고 나갈 수 있도록
곁에 스승님과 같은 길을 걷는 좋은 벗들이 많이 있는 행운에 감사합니다. _()_
* 날뛰는 마음을 완전하게 조복시켜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_()_
* 모든 선근공덕을 일체 중생께 회향합니다. 일체 부처님께 회향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