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2011. 4. 12. 10:01

Vincent van Gogh




돌이켜보면, 이곳에서 지낸 세월 동안 포기하고픈 생각이 들었던 적이 어찌 한번도 없었을까요. 그럴 때면 제가 떠올리는 기억이 있습니다. 생전 처음 벼를 베던 날, 논둑에 서서 콧물까지 흘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것을. 나도 모르게 "아이구, 내 새끼!" 하며 우리 벼를 가슴에 부둥켜안았던 그 순간을.

 

 

 

p.145

 남녘 땅 어디엔가 풍물로 벼농사를 짓는 어른이 있다고 들었다. 농약 대신이라 했나 비료 대신이라 했나, 아무튼 벼가 잘 자란다 했다. 나무와 사람의 유전자가 90퍼센트도 넘게 같다는 말도 들었다. 가락을 듣기만 해도 그토록 신명이 나는 것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p.165

 마라톤을 뛰면서 머리가 환해지던 순간이 떠올랐다. 나보다 먼저 반환점을 돌아 달리는 사람들을 마주 보고 달리노라면 부러움과 절망을 넘어 어느 순간 머리와 가슴이 환해진다.

 '그래, 자신의 길을 저렇게 열심히 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이는 내게 힘을 주는구나. 꼭 함께 가지 않더라도 각자가 열심히 자기의 길을 가노라면, 그러다가 이렇게 잠시 스쳐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겠구나.'

 

 

 

 

 


*

농사 짓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생각해보게 된 책.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1. 3. 31. 22:19






p. 251

 

우리가 사랑해야만 하는 '자신'은 우리의 자아도 아니고, 아무 생각도 없이 이기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불친절하게 행동하고 돌아다니는 일상인도 아니다. 우리 각각의 내면에 있는 창조주의 일부분인 순수한 영혼의 불꽃, 즉 불교도등리 '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사랑받는 것들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내면의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내면에 있는 이러한 영혼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만이 개인의 삶이라는 좁은 감옥에서 벗어나 각자의 믿음에 따라 신, 알라, 도, 브라마, 창조주 등으로 불리는 영적인 힘과 함쳐질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연대할 우리의 힘은 무한히 증대될 것이다.

 

 

 
 

*

아주 영적인 자서전이다.

학원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몇 번 쪼개가지고 다 읽었다.

제인 구달... 좋다.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어릴적 내가 느꼈던 첫 순간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다면…

내가 태어난 이유는 뭘까?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1. 2. 14. 13:48

어찌되었거나 이런 현상들을 뒤집어보면 정보사회에서의 '미각'과 음식물은 디저털화할 수 없는 마지막 아날로그의 영토를 대표하는 성벽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사람은 동물처럼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먹는 행위는 생리적인 욕구나 물질적인 경제가치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나타낸다. 음식물이 정보를 교환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예수와 제자들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커뮤니케이션은 최후 만찬이었다. 돌을 주고 빵(떡)을 만들어보라는 마귀를 향해 "사람은 빵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예수께서 어째서 고상한 말 심각한 말 다 버려두고 그 흔한 한 조각 빵을 자신의 몸이라 하시며 제자들에게 나눠주셨는가. 어째서 값싼 한 방울의 포도주를 자신의 피라고 하시며 마시라 하셨는가. 수많은 말씀과 이적을 보이셨던 예수께서 왜 하필 '먹고 마시는 것'으로 최후의 메시지를 남기려 하셨는가.

 

한국의 젓가락 정신은 인간관계를 나타내는 정, 믿음, 상호성(인터렉션)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은 '노이즈'를 배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시스템 자체를 변환시키는 관계기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젓가락 문화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은 지금까지의 IT(정보기술)를 RT(Relation Technology, 관계기술)로 바꿔주는 주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은 'IT'를 'RT'로 부르게 될 것이다.

 같은 무기를 만들더라도 생명을 죽이는 창 기술자보다 새명을 지켜주는 바아패 기술자가 되는 것이 좋다는 유교의 오래된 교훈을 받아들인다면 IT는 군사정보와 금융정보를 넘어서 인정과 사랑 그리고 감동과 행복을 나누는 RT의 따뜻한 디지털 환경을 만들게 될 것이다. RT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도구(기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 기술로서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아트'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따.

 

정보기술을 새 패러다임으로 비유하자면 그것은 액체도 고체도 아닌 '공기'라고 말할 수 있다. 공유는 해도 독점할 수는 없는 것이 공기이며 지식이다. 사용을 해도 없어지지 않고 순환한 것 또한 공기의 속성이며 정보의 특성이다. 그러므로 '가치'는 있어도 '가격'은 없는 것이 공기이며 지식정보다.

 

사람을 살리면 디지로그 시대가 오고, 컴퓨터를 못하는 노인도 더 이상 구박받지 않는 세상이 '된다.' 젊음의 열정은 엔진은 돼도 방향을 잡는 키가 되기는 어렵다. 사이버의 본뜻이 '키잡이'이듯이 배가 좌충우돌할 때 희망의 땅으로 갈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기성세대이다.

 그러나 강을 다 건넜으면 타고온 뗏목은 버려야 한다. '되다'는 말 못지않게 버리란 말을 잘 쓰는 한국인이 아닌가. 잊어버리고 놓아버리고 내버리라고 하지 않는가. 무거운 뗏목을 메고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혼하는 저 신시의 땅으로 갈 수 없다. 눈물 나게 배고팠던 이 민족에 경제성장의 기적을 만들어준 자랑스러운 주역들, 짐승처럼 억압받고 살던 사람들에게 민주화의 빛을 밝힌 용감한 주역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을 버려야 또 하나의 새벽이 온다. 천방지축 달리는 위험한 아이들도 의젓한 어른이 '되어' 이 강가로 올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뗏목을 골라 강을 건널 것이다. 그날을 위해 디지로그의 시대가 지금 어떻게 오고 있는지, 한국인이 그 시대의 주역이 되어 새로운 문명을 끌고 가는 디지로그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세계를 향해 '사람'을 살리라고 외쳐야 하는지 그 발성법을 익혀가야 한다.

 왜 아침은 이렇게도 아름다운가. 아직 그 빛 속에 어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녁 노을은 왜 그렇게도 아름다운가. 다가오는 어둠 속에 아직 빛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이 엇비슷하게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상. 그것이 한국인이 오랫동안 참고 기다렸던 그 공간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만나는 기분 좋은 시간, 한국인의 시간이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1. 2. 14. 13:47

* 누구나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도 자주. 특히 이른 아침이면 홀로 깨어 평원에 어리는 안개와 지평의 한 틈을 뚫고 비쳐오는 햇살과 만나야 한다. 어머니인 대지의 숨결을 느껴야 한다. 가만히 마음을 열고 한 그루 나무가 되어보거나 꿈꾸는 돌이 되어보아야 한다. 그래서 자기가 대지의 한 부분이며 대지는 곧 오래 전부터 자기의 한 부분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인디언 천막을 열면 들파으로 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 사이버 마인드는 이것들과 닮아 있다. 그리고 이것들과 통한다. 새로 맞이한 밀레니엄 시대는 정체성(totality)의 시대가 아니다. 그것은 고독의 공가이 증대하고 홀로 있는 것의 의미가 극대화되는 시대이다. 대중 속의 고독한 군중과는 질이 다른 그 어떤 자족에 근거한 홀로 있음의 느낌이 절정에 달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그 홀로 있음이 단지 개인주의와 고립감으로 그치지 않고 네트워크를 통해 이어지는 연대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처럼 철저히 자족에 근거한 홀로 있음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 자신만의 혼(魂)에 정직하고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자연스런 차이 혹은 다름을 드러나게 한다. 누구도 같지 않다. 본래 다른 것이다. 그 차이 혹은 다름이 드러나느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며 진정한 힘이다. 자기 안으로 깊이 들어간 영혼은 세상을 향해 진정으로 열려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가만히 마음을 열고 한 그루 나무가 되어볼 수 잇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고 근사한가. 꿈꾸는 돌이 되어볼 수 있는 사람을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 자족에 근거한 홀로 있음의 의미를 일상 생활 속에 심을 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그들에게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따로 없다. 모든 것이 길이다. 스스로가 밟고 나아가는 것이 곧 길인 것이다. 미개처그 미답의 웹 세계에 길이 따로 있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우리는 꿈꾸기를 그칠 수 없다. 그것을 포기할 수 없다. 꿈꾼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림자 없는 실체가 없듯이, 꿈꾸기 없는 삶이란 더 이상 삶이 아닌 것이다. 꿈꾸기란 무엇인가. 도피인가, 몽상인가, 환영과 환상에 사로잡힘인가. 아니다. 진정한 꿈꾸기는 삶의 몸부림이고 일상의 전복이다. 꿈꾸는 자만이 진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자, 꿈을 꾸자. 터무니없다고 비아냥거려도 좋다. 현실이 만만치 않아도 좋다. 꿈꾸기는 전복하기다. 더 이상 꿈꾸기를 주저하지 말자. 꿈꾸기는 내 살아 있음의 가장 강렬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 존 브록만 曰 :

 가치는 활동에서 나온다. 컨텐츠라는 낱말은 더 이상 하나의 명사가 아니다. 컨텐츠는 곧 컨텍스트이자 활동을 뜻한다. 컨텐츠는 관계, 즉 공동체이다. 컨텐츠는 접속을 제공하는 상호작용 요소들과 구별됨으로써 문자나 그림이 아니다. 컨텐츠는 동사, 즉 연속적인 과정이다. 요컨대 지적 처리와 서비스의 가치는 올라갔고, 지적 자산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컨텐츠는 정보이다. 정보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가치는 활동에서 나온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1. 2. 14. 13:47

그것은 나쁘게 느껴지는 기운이지.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 기운이 자아의 신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네. 자네의 정신과 의지를 단련시켜주지.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세상에는 분명히 양들이 가르쳐주지 못하는 다른 세계가 있는 거야. 양들은 물과 먹이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않거든. 사실은 양들이 가르쳐준 게 아니라 내가 배운 거지

 

삶의 모든 것이 다 표지야

 

저 사람은 표지를 '운이 좋다'라는 말로 표현하는군. 할 수만 있다면 아주 커다란 백과사전에다 '행운'과 '우연의 일치'라는 말에 대해 기록하고 싶군그래. 이 단어들은 우주의 언어로 기록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야.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 이 지구는 살아 있는 존재니까. 정기를 가진 땅덩어리란 얘기야. 우리는 그 정기의 일부분이고, 아주 가끔은 우리도 그 정기가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음을 느끼곤 하지.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자네가 그 크리스털 가게에서 일하는 동안 크리스털 그릇들 역시 자네의 성공을 위해 애를 썼을 거라는 거야.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

 

이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아의 신화를 추구하는 사람의 끈기와 용기를 시험하는 시련뿐이라는 것을. 그 때문에 그는 서두를 수도, 초조해할 수도 없었다. 만일 그렇게 된 다면 신이 그의 앞길에 준비해놓은 표지들을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이것이 작업의 첫번째 단계야. 불순물이 섞인 유황을 분리해 내야 하지.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야 말로 이제껏 '위대한 업'을 시도해 보려던 내 의지를 꺾었던 주범이지. 이미 십 년 전에 시작할 수 잇었을 일을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어. 하지만 난 이 일을 하기 위해 이십년을 기다리지 않게 된 것만으르도 행복해

 

사람들이 내게 점을 치러 올 때, 그건 내가 미래를 읽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를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야. 미래는 신께 속한 것이니, 그것을 드러내는 이른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네. 그럼 난 어떻게 미래를 짐작할 수 있을까? 그건 현재의 표지들 덕분이지. 비밀은 바로 현재에 있네.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면, 현재를 더욱 나아지게 할 수 있지. 현재가 좋아지면, 그 다음에 다가오는 날들도 마찬가지로 좋아지는 것이고. 미래를 잊고 율법이 가르치는 대로, 신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네. 하루하루의 순간 속에 영겁의 세월이 깃들여 있다네

 

그대의 용기를 시험해본 것이네. 용기야말로 만물의 언어를 찾으려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

 

사람이 어느 한 가지 일을 소망할 때, 천지간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뜻을 모은다네

 

그대의 마음이 있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그대가 여행길에서 발견한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때 그대의 보물은 발견되는 걸세.

 

명심하게.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한 남자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네.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만물의 언어를 말하는 사랑, 진정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지.

 

사막 속으로 깊이 잠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대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게. 그대의 마음이 모든 것을 알 테니. 그대의 마음은 만물의 정기에서 태어났고, 언젠가는 만물의 정기 속으로 되돌아갈 것이니

 

제 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꿈을 꾸는 듯하다가도 동요하고, 이제는 사막의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녀 생각에 빠져 있을 때면, 마음은 이것저것 물어대며 숱한 밤을 잠 못 들게 합니다

좋아, 그건 그대의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네. 마음이 그대에게 말하려는 것에 귀를 기울이게.

 

내 마음은 고통받을까 두려워하고 있어요.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

 

눈앞에 아주 엄청난 보물이 놓여 있어도, 사람들은 절대로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네. 왜인 줄 아는가? 사람들이 보물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지.

 

'너는 바람이 될 수 없어. 우리는 너무도 다른 존재야.'

'그렇지 않아. 너와 함께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나는 연금술의 비밀을 알게 되었어. 내 안에는 바람과 사막, 대양, 별들 그리고 우주에서 창조된 모든 만물이 존재하고 있어. 우리는 오직 한 분의 손으로 빋어졌고, 우리에게는 같은 영혼이 있는 거야 .나도 너처럼 되어, 세상 어디로든 스며들고, 바다를 건너고, 내 보물을 뒤덮고 잇는 모래들을 날려버리고, 내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내 곁으로 가까이 실어오고 싶어.'

 

단 하루도 똑같은 날은 없으며

매일 아침은 그날만의 특별한 기적,

그날만의 마법의 순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 파울로 코엘료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