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2010. 5. 19. 12:19

 

 


 

p. 59
 우리는 어느 순간이나, 어느 날이나, 어느 달이나, 어느 해나 잘 쓰고 잘 보냈다. 우리가 할 일을 했고, 그 일을 즐겼다. 충분한 자유 시간을 가졌으며, 그 시간을 누리고 즐겼다.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할 때는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결코 죽기 살기로 일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더 많이 일했다고 기뻐하지도 않았다. 가끔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사람에게 노동은 뜻있는 행위이며,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일이고, 무엇을 건설하는 일이고, 따라서 매우 기쁨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p. 162
 버몬트에서 자급 자족하며 우리는 더 나은 길을 찾는 데 힘을 쏟아야 했는데, 그럼으로써 보통 도시인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수없이 많은 재능을 다시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재능들 가운데 가장 중용한 것은 밭을 일구고, 양식을 가꾸고 먹을 거리를 장만하는 것과 관련된 재능이었다. 뿐만 아니라 집을 짓고, 여러 가지 시설을 만들고, 집을 고치고, 도구와 장비를 만들고 고치는 일 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거리를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 큰 기쁨이었다. 통나무를 자르고 장작을 패고, 숲에서 나무를 해오는 일을 하면서는 숲은 물론 그것과 관련된 많은 것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이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계획하고 재료와 공구를 모았으며, 우리가 기대하는 결과를 얻으려고 필요한 기술을 익혔다.


p. 185
 우리는 이 일을 겪으면서 협동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성공하려면 반드시 먼저 정신의 공감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목적과 방법에 대해 의견이 같다고 해서 충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골짜기에서는 이것조차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동체가 계속해서 힘을 모아 일해 나갈 수 있으려면 모든 구성원들이 받아들이는 정신의 공감대가 있었야 한다.


p. 201
 우리는 시골에 사는 사람이 자본주의 도시 생활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주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몇백 년 동안 사람들이 해 온 경험에 아랑곳 없이, 우리 두 사람이 그 되지도 않을 일을 하겠다고 떠맡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만이 이러한 공동체에서 살수 있다는 것을 예전보다 지금 더 강하게 믿는다. 이러한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경쟁을 일삼는 자기 중심 사회에 길들여지고, 그 속에서 억압 받으며 살아왔지만, 그 뒤에 남을 생각하며 살려는 의지와 그렇게 살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을 갖춘 보기 드문 사람들이다.


p. 208
 우리가 그이들보다 건강에도 좋고 값도 훨씬 덜 드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그 사람들도 인정했다. 우리가 자기들보다 훨씬 건강하고, 편안한 옷을 입고 만족스러운 집에서 살고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여유를 누린다는 사실도 그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이들 스스로는 이런 생활에 따를 수 없었고,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

집을 짓고 필요한 걸 만들고 관리하고 먹을 걸 기르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만은 않은데다가 보람있고 의미있고 배울 것도 많다고 . . .

어떤 대단한 기계보다도 자연이 더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0. 4. 28. 14:25


내용 : 무대에는 사람 몸 하나 숨겨주지 못할 정도로 빈약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는 두 주인공, 고고와 디디가 있다. 고고와 디디는 친구사이 이다. 그들은 서로를 헐뜯었다, 감싸 안았다가, 섭섭해한다. 그들은 딱히 할 일이 없어 보인다. 지리멸렬한 대화를 끝도 없이 펼쳐간다.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지만 그 대화는 은근히 매력적이고 때때로 웃기기도 하다. 기억의 망각을 반복해 가며 그 지루함을 말로써 죽인다. 지루함을 견뎌내지 못하면 목숨을 저버릴 것이다. 그들의 모든 행위와 대화는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은 오로지 시간을 잊기 위함이고 지루함을 없애기 위함이다. 하염없이 기다린다. 기다림의 대상은 바로 '고도'이다. 고도가 아니면 그들은 떠난다. 떠나려 하다가도 이내 고도를 상기해 내고는 다시 기다림을 계속한다. 만약 기다림을 잊는다면, 그들은 떠날 것이다. 내일을 기다린다. 고도는 내일 온다. 그러나 다시 다가온 내일은 오늘이 되고, 고도는 다시 내일 온다. 오늘만 있을 뿐, 내일은 영원한 내일이다. 소년은 오늘도 말한다. 고도는 내일 온다고.

 고도는 올 것인가?

 고도는 고고와 디디의 유일한 희망이다. 이를 통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시간이 빨리 갈수록 고도는 빨리온다. 그러므로 가능한한 시간을 빨리 죽여야한다.

 그렇다면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도는 무엇인가? 이에 관해서는 어떠한 정보도 없다. 단지 그들의 대화와 무대, 묘사등을 통해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왜?'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 단순한 기다림. 기다림의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인지도 없다. 약속을 받았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다. 이유가 없다.

 고고와 디디는 포조와 럭키를 만난다. 포조는 럭키를 이리저리 끌고 학대한다. 포조는 럭키를 소유한 것으로 보이지만 반대로 럭키에게 구속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럭키는 포조에게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 고고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포조는 기억과 시각을 상실한다. 시간이 무의미해진다. 과거를 상기시켜줄 기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럭키는 무기력 하다. 그러나 생각한다. 딱 한번, 난해한 '말'들을 미친듯이 토해낸다. 당나귀 같은 럭키는 말을 통해 존재하고 표현하고 의미를 대변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인간성 상실의 상태로 돌아간다.

고도는 내일 온다. 기다림의 이유는 없다. 고도는 고도이다. 기다림은 끝 없이 반복된다. 기다림의 끝은 죽음이고, 고도는 오지 않는다.

느낌 :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기다림의 대상은 누구인가? 고고와 디디는 '고도'라는 존재를 하염없이 기다리지만 그는 오지 않는다. '고도'는 '신', '유토피아', '희망' 등을 상징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도는 작가 역시 알지 못한다. 이유를 묻지 않는 유일한 대상이 바로 그 고도이다.

 인간은 인간의 존재에 관하여 끊임 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철학과 종교, 그 이외의 모든 학문과 문학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어떤 종교나 학문도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모든 인간이 기다리는, 어쩌면 '기다림'자체를 의식하지도 못하는 그 기다림은, 고고와 디디의 '고도'와 다를 바 없다.

 고도는 올 것인가? 내일은 오는가? 시간을 애써 죽여가며 지루함을 견뎌내는 기다림은 모두 고도를 위함이다. 오로지 고도를 위하여, 모든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죽음' 마저 포기한다. 그렇다면 고도는 반드시 그를 위한 모든 행위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만큼 가치가 있어야 하는 대상이고 기다림에 따른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이유 없는 기다림이어야 한다면, 이는 무의미를 더 크게 확장시켜줄 뿐이다. 무의미한 기다림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고도는 반드시 와야만 한다. 그래야 끝없는 기다림에 이유가 있다. 그러나 고도는 오지 않을 것이다. 고고와 디디를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기다림이다.

 어쩌면 작가는 내일의 기다림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이는 나의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무슨 줄거리를 다 쓰라고 하는건지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름대로 유익했다. 정리되지 않은 머릿 속의 생각들은 글을 쓰다 보니 정리가 되는 것 같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0. 4. 24. 19:00


p.59

숲을 서서히 벗어나면서 그는 자신의 마음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러한 느낌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여러 가지로 깊이 생각하여 보았으며, 마치 깊은 물 속을 뚫고 맨 밑바닥까지 들어가듯이 이러한 느낌의 맨 밑바닥까지, 그러한 느낌의 원인이 도사리고 있는 맨 밑바닥까지 파고들어갔다. 그렇게 한 까닭은, 원인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생각이라고 여겨졌으며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느낌이 인식으로 바뀌어져서 사라지는 일이 없이 본질적인 것이 되고 그 인식 속에 있는 것이 빛을 발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p.210

이 돌멩이는 돌멩이다. 그것은 또한 짐승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신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부처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장차 언젠가는 이러 것 또는 저런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항상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p.213

그 사물들이 나와 동류의 존재라는 사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나는 그 사물들을 그토록 사랑스럽게 여기는 것이고 그토록 숭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는 거야. 그 사물들이 나와 동류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사랑할 수 있어. 자네가 들으면 그런 가르침도 다 있느냐며 비웃을 터이지만 이것도 아무튼 하나의 가르침이야. 사랑이라는 것 말일세, 고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 이 세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일, 이 세상을 설명하는 일, 이 세상을 경멸하는 일은 아마도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이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헤르만 헤세

 

 

극과 극의 공존과 완전성

...

아 모르겠다 ;

내가 할수 있는 건 경험 뿐 ?

아마도 그런거 같은데

그리고,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다시 아니라고 한다.

흐흐흐흐

 

어쩌면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0. 4. 7.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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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레에 물렸을 때는 다섯 가지 이상의 풀을 찧어 바르면 낫는다. 한약도 한 가지씩 따로 먹으면 의미가 없고, 30가지 이상 섞어 먹어야 중화와 상생 작용이 일어나 약의 효과가 나타난다.

 

: 약 마저도 중화와 상생 작용이라니. 신기하고 재미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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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어떤 세상, 어떤 문화가 오고 또 바뀔지라도 자연의 방법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확신이 넘쳤다.

 

: 이것이 내가 지켜야 할 것.

 

/

 환자들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남들이 자기 입장에서 자기를 알아주길 원하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친구, 가까운 이웃들, 부모 형제들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실상 이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남이 알아주고, 남이 이해해 주길 원하기에 앞서 모든 것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며, 늘 홀로 설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춰야 한다. 환자들은 이것을 빨리 깨달아야 하며 자신의 입장을 몰라준다고 해서 조금도 서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몸이 아픈 것도 하나의 도(道)라고 생각한다. 아프지 않으면 사람도, 미물도 그 어떤 것도 성숙할 수가 없다. 아픔을 이긴 사람만이 자기의 세계가 커지고 스케일도 커지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지게 된다.

 

: 오늘 나에게 꼭 필요했던 문구. 스스로 선다는 것은 외로운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지고 더 사랑하게 되는 일일 터..

 

/

 요즘 너도 나도 웰빙(Wellbeing), 웰빙 하는데 이 웰빙이라는 게 뭔가. 고급 아파트에 사련서 골프나 치러나 다니고 하는 것이 웰빙이 아니다. 사람은 죽을 때 잘 죽어야 한다. 행복하게 죽는 것이 웰빙이라는 얘기이다. 잘 먹고 잘 살다가 나중에 병이 들어 고통스럽게 죽는다면 웰빙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이런 사람들을 너무도 무수히 보아왔다. 부귀, 명예, 권세 모두 다 소용없다. 이것은 포장된 웰빙일 뿐 진정한 의미의 웰빙은 아니다. 사람은 잘 죽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을 때 아무런 고통 없이 행복하고 편안하게 잘 죽는 것이 진짜 웰빙이다. 웰빙의 귀착은 결국 몸이기 때문이다.

 

: 잘 죽고 싶다.

 

 

 

강순남

 

웃으시는 모습이 보는 사람마저 기분 좋게 만들어 주신다. 저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들이 참 좋다.

나도 강순남씨 처럼 나만의 소명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올해는 나의 길을 조금 더 뚜렷하게 하고 실천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

 

살아 있는 것들은 정말 신기하다. 호흡, 그리고 조화. 비워내는 것. 이를 잘 꿰뚫고 있었던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를 본받고 싶다.

효재 + 타샤에 이제 + 순남이다. 흐흐.

내가 아는 좋은 것들을 내가 온전히 익혀서 나누고 싶다.

아이..  이 책을 모두 다 한 번 쯤은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

어려운 책 뿐만 아니라 이렇게 술술 넘어가는 책도 배울것이 참 많다. 장독대, 여기 한번 꼭 가봐야지. 꼭꼭꼭.

 

+)

 

소금 많이 드세요. 죽염으루.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09. 11. 28. 23:27





그림, 박만희 : www.talltree.kr


문정희 시인의 에스프리 (기지, 정신)

 

*

나이가 젊다고 해서 다 젊은 것은 아니다. 젊음 속에는 열정과 희망이 소금처럼 반짝거려야 하고 노을처럼 방황이 서려 있어야 한다. 열정과 희망은 꿈을 꾸게 하고, 방황은 실수하게 한다. 꿈꾸는 것과 실수하는 것은 젊음이 갖는 특권이다.

 

*

기회란 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무심한 일상의 순간, 아니 만나는 사람, 만나는 상황이 모두다 기회이며 그 기회를 눈부신 자기 성장의 기회, 성공의 계기로 만드는 것은 순전히 자기 자신의 손에 달려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기회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준비하고 만드는 것이다.

 

*

지금 막 그 젊음 속에 갇혀 있어 사방으로 눈이 부신 젊음을 만나면, 나는 목메인 음성으로 귀띔해 준다. 그대는 지금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다운 것을 가지고 있다. 뭐든지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도 아름답다. 심지어 실수조차도 빛나 보이는 나이를 바로 그대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자부심에 충만해 있으되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되 그것이 결코 비겁이나 열등감 과는 구별된 그런 향기를 지닐 수는 없을까? 자부심은 인생을 성취시키는 좋은 힘.

 

*

한 사람의 시인에게는 당연히 하나의 세계가 있어야 하고 그 세계란 다름 아닌 이 세상 누구도 침범한 적이 없는 눈부신 처녀림을 말하는 것이다.

 

 

 

'늙은 꽃'이란 시를 알게 되면서 부터 좋아하는 시인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