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2011. 2. 14. 13:47

* 누구나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도 자주. 특히 이른 아침이면 홀로 깨어 평원에 어리는 안개와 지평의 한 틈을 뚫고 비쳐오는 햇살과 만나야 한다. 어머니인 대지의 숨결을 느껴야 한다. 가만히 마음을 열고 한 그루 나무가 되어보거나 꿈꾸는 돌이 되어보아야 한다. 그래서 자기가 대지의 한 부분이며 대지는 곧 오래 전부터 자기의 한 부분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인디언 천막을 열면 들파으로 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 사이버 마인드는 이것들과 닮아 있다. 그리고 이것들과 통한다. 새로 맞이한 밀레니엄 시대는 정체성(totality)의 시대가 아니다. 그것은 고독의 공가이 증대하고 홀로 있는 것의 의미가 극대화되는 시대이다. 대중 속의 고독한 군중과는 질이 다른 그 어떤 자족에 근거한 홀로 있음의 느낌이 절정에 달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그 홀로 있음이 단지 개인주의와 고립감으로 그치지 않고 네트워크를 통해 이어지는 연대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처럼 철저히 자족에 근거한 홀로 있음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 자신만의 혼(魂)에 정직하고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자연스런 차이 혹은 다름을 드러나게 한다. 누구도 같지 않다. 본래 다른 것이다. 그 차이 혹은 다름이 드러나느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며 진정한 힘이다. 자기 안으로 깊이 들어간 영혼은 세상을 향해 진정으로 열려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가만히 마음을 열고 한 그루 나무가 되어볼 수 잇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고 근사한가. 꿈꾸는 돌이 되어볼 수 있는 사람을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 자족에 근거한 홀로 있음의 의미를 일상 생활 속에 심을 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그들에게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따로 없다. 모든 것이 길이다. 스스로가 밟고 나아가는 것이 곧 길인 것이다. 미개처그 미답의 웹 세계에 길이 따로 있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우리는 꿈꾸기를 그칠 수 없다. 그것을 포기할 수 없다. 꿈꾼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림자 없는 실체가 없듯이, 꿈꾸기 없는 삶이란 더 이상 삶이 아닌 것이다. 꿈꾸기란 무엇인가. 도피인가, 몽상인가, 환영과 환상에 사로잡힘인가. 아니다. 진정한 꿈꾸기는 삶의 몸부림이고 일상의 전복이다. 꿈꾸는 자만이 진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자, 꿈을 꾸자. 터무니없다고 비아냥거려도 좋다. 현실이 만만치 않아도 좋다. 꿈꾸기는 전복하기다. 더 이상 꿈꾸기를 주저하지 말자. 꿈꾸기는 내 살아 있음의 가장 강렬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 존 브록만 曰 :

 가치는 활동에서 나온다. 컨텐츠라는 낱말은 더 이상 하나의 명사가 아니다. 컨텐츠는 곧 컨텍스트이자 활동을 뜻한다. 컨텐츠는 관계, 즉 공동체이다. 컨텐츠는 접속을 제공하는 상호작용 요소들과 구별됨으로써 문자나 그림이 아니다. 컨텐츠는 동사, 즉 연속적인 과정이다. 요컨대 지적 처리와 서비스의 가치는 올라갔고, 지적 자산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다. 컨텐츠는 정보이다. 정보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가치는 활동에서 나온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