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2011. 2. 14. 13:48

어찌되었거나 이런 현상들을 뒤집어보면 정보사회에서의 '미각'과 음식물은 디저털화할 수 없는 마지막 아날로그의 영토를 대표하는 성벽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사람은 동물처럼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먹는 행위는 생리적인 욕구나 물질적인 경제가치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나타낸다. 음식물이 정보를 교환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예수와 제자들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커뮤니케이션은 최후 만찬이었다. 돌을 주고 빵(떡)을 만들어보라는 마귀를 향해 "사람은 빵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예수께서 어째서 고상한 말 심각한 말 다 버려두고 그 흔한 한 조각 빵을 자신의 몸이라 하시며 제자들에게 나눠주셨는가. 어째서 값싼 한 방울의 포도주를 자신의 피라고 하시며 마시라 하셨는가. 수많은 말씀과 이적을 보이셨던 예수께서 왜 하필 '먹고 마시는 것'으로 최후의 메시지를 남기려 하셨는가.

 

한국의 젓가락 정신은 인간관계를 나타내는 정, 믿음, 상호성(인터렉션)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은 '노이즈'를 배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시스템 자체를 변환시키는 관계기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젓가락 문화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은 지금까지의 IT(정보기술)를 RT(Relation Technology, 관계기술)로 바꿔주는 주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은 'IT'를 'RT'로 부르게 될 것이다.

 같은 무기를 만들더라도 생명을 죽이는 창 기술자보다 새명을 지켜주는 바아패 기술자가 되는 것이 좋다는 유교의 오래된 교훈을 받아들인다면 IT는 군사정보와 금융정보를 넘어서 인정과 사랑 그리고 감동과 행복을 나누는 RT의 따뜻한 디지털 환경을 만들게 될 것이다. RT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도구(기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는 기술로서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아트'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따.

 

정보기술을 새 패러다임으로 비유하자면 그것은 액체도 고체도 아닌 '공기'라고 말할 수 있다. 공유는 해도 독점할 수는 없는 것이 공기이며 지식이다. 사용을 해도 없어지지 않고 순환한 것 또한 공기의 속성이며 정보의 특성이다. 그러므로 '가치'는 있어도 '가격'은 없는 것이 공기이며 지식정보다.

 

사람을 살리면 디지로그 시대가 오고, 컴퓨터를 못하는 노인도 더 이상 구박받지 않는 세상이 '된다.' 젊음의 열정은 엔진은 돼도 방향을 잡는 키가 되기는 어렵다. 사이버의 본뜻이 '키잡이'이듯이 배가 좌충우돌할 때 희망의 땅으로 갈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것은 기성세대이다.

 그러나 강을 다 건넜으면 타고온 뗏목은 버려야 한다. '되다'는 말 못지않게 버리란 말을 잘 쓰는 한국인이 아닌가. 잊어버리고 놓아버리고 내버리라고 하지 않는가. 무거운 뗏목을 메고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혼하는 저 신시의 땅으로 갈 수 없다. 눈물 나게 배고팠던 이 민족에 경제성장의 기적을 만들어준 자랑스러운 주역들, 짐승처럼 억압받고 살던 사람들에게 민주화의 빛을 밝힌 용감한 주역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을 버려야 또 하나의 새벽이 온다. 천방지축 달리는 위험한 아이들도 의젓한 어른이 '되어' 이 강가로 올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뗏목을 골라 강을 건널 것이다. 그날을 위해 디지로그의 시대가 지금 어떻게 오고 있는지, 한국인이 그 시대의 주역이 되어 새로운 문명을 끌고 가는 디지로그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세계를 향해 '사람'을 살리라고 외쳐야 하는지 그 발성법을 익혀가야 한다.

 왜 아침은 이렇게도 아름다운가. 아직 그 빛 속에 어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녁 노을은 왜 그렇게도 아름다운가. 다가오는 어둠 속에 아직 빛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이 엇비슷하게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상. 그것이 한국인이 오랫동안 참고 기다렸던 그 공간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만나는 기분 좋은 시간, 한국인의 시간이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