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긍정일기2016. 7. 6. 19:52

 

 

 

냉동실서 꺼낸 아이스양갱.

맛은 별로지만, 내가 만든 1호 양갱이라 올려는 보지만,

다음엔 꼭 더 맛있는 맛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더 맛있는 맛으로 선보일 수 있기를 고대하며_()_

 

 

 

 

* 참회와 감사

- 남 일을 내 일처럼 여겨주는 친절에 감동을 받았다. 역시 남을 나로 볼 줄 알아야 그런 친절도 가능해지는 거구나 싶다.

나의 불친절은 남과 나를 가르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마음씨가 고운 사람의 친절에 감사함과 동시에 나의 불친절함을 참회합니다.

 

-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도반님의 힘나는 응원을 받을 수 있음에,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나갈 수 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아이들이 순수하게 고백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오랜만에 감동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_()_

 

 

  

* 원력

스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인 듣는 것을 잘해야 한다는 말씀은 다름 아닌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라는 의미와 같은 것 같다.

순간 순간에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며 외적인 것 뿐만 아니라 내적인 부분까지도 세밀하게 지켜보고 관찰하며 알아차리는 일.

내가 가진 나쁜 습관 중에 하나가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보며 SNS나 블로그 등을 확인하고 쇼핑몰을 구경하는 일인데,

이건 잘 듣고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것에 집중하는 삶이 아니다. 아 결국 나도 스마트폰 중독자가 되고 말다니. T_T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도 스마트폰을 사지 않으며 기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했건만, 스마트폰을 사고 나서는

그 누구보다도 많이 사용하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노력해서 보다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고

듣는 연습을 해나가야겠다.

잘 들을 수 있는 큰 귀를 갖기를, 항상하고 원만하고 언제나 통하는 자리에서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 회향

미세하게라도 지은 공덕이 있다면 일체 중생께 회향합니다.

아주 작은 깨우침이라도 일체 부처님께 회향합니다.

 

 

 

/

요즘

궁금하고, 기대되고, 떠올리면 좋은 그런 일이 생겼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대긍정일기2016. 7. 5. 21:30

 

 

에휴, 이놈의 인기 :)

 

 

 

 

* 참회

- 치사하고, 추접스럽고, 소심하고, 뒤끝 엄청난 마음을 참회합니다.

날마다 부끄러운 것 외엔 내세울게 없음을 참회합니다.

- 다친 참새를 알고도 나 할일 먼저 하고 가느라 참새가 무사히 몸을 옮긴건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었던 이기심과 어리석음을 참회합니다.

 

 

 

* 감사

- '못 할게 뭐야',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용기를 낼 수 있어 기쁩니다.
-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과 시원한 비를 보고 느낄 수 있어서 기쁩니다.

 

 

 

* 원력

작고 옹졸한 마음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크고 원대한 마음을 품을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 회향

아주 작은 선근 공덕이라도, 아주 미세한 깨우침이라도 일체 중생과 부처님께 회향합니다.

옴 아 훔. _()_

 

 

Posted by 보리바라봄
대긍정일기2016. 7. 4. 23:08

 

 

* 참회

나의 고정된 생각의 틀을 하나 발견했다. 진짜 굉장한건데 어째서 이제야 발견한걸까!

그게 어떤거냐면 바로 상대의 '무반응'을 '나를 싫어한다' 내지는 '내가 뭔가 잘못했다'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반응 없음'을 보고는 전전긍긍 괴로워한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가 싫은가...' 하고는.

이 대단한 생각의 틀을 이제야 알아채다니!!! 툭 하면 사용하던 고정된 틀이었는데.

그래서 때때로 '~한 일이 있었다'하며 어떤 상대가 반응이 없는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 놓으면

대부분 뭐 그런걸 가지고 그러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여겨주곤 했다. 이게 진짜였는데!!!

앞으로 또 '무반응' 앞에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내가 또 그렇게 느끼고 있구나'하고 재빠르게 알아차려줄테다.

 

반면에 원치 않는 상대의 적극적인 '반응'에 대해서는 아주 큰 거부감을 느낀다.

그런 나의 에고를 보면서 '반응 없음'이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는거구나 깨닫게 된다.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마음이 강한 만큼 좋은 소리와 칭찬을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하다.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하고, 그 기대에 미치지 않으면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착. 접착제 보다도 더 끈끈한 욕심이 이런 괴로움을 만들어 낸다.

칭찬을 받아야 하는데 상대가 반응이 없으니 어리둥절해 하며 뭘 잘못했는지 찾아 다니는 것이다.

이렇게도 바보같이. T_T

 

싫은 소리도, 듣기 좋은 소리에도 연연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칭찬을 받으려는 욕심을 참회합니다. _()_ 

 

 

 

* 감사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_()_

 

 

 

* 원력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뀐 것일 뿐 에고의 집착은 여전히 진득진득 끈끈하다.

좋아하는 마음 또는 싫어하는 마음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발원합니다.

 

 

 

* 회향

아주 작은 선근 공덕이라도, 아주 작은 깨우침이라도 일체 중생과 부처님께 회향합니다.

옴아훔.

 

 

 

/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저녁 시간이 통으로 날아가 하루에 남은 자유로운 시간이 사라지고 만다.

한마디로 너무 바빠져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만다.

자주 그런 것은 아니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해야 하는 걸까.

 

 

 

/

양갱은 진짜 맛없게 되었는데, 담에는 좀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영 못 먹을 맛은 아니라 다행이다. 힝.

 

 

 

Posted by 보리바라봄
대긍정일기2016. 7. 3. 19:58

 

 

 

이런 노래를 부르던 이랑이 참 좋다.

돌고래 학살 영화를 보고 만들었다던 노래.

<삐이삐이>

 

 

 

 

* 참회

홍서원에 갈때면 늘 많은 것을 얻지만, 그저 눈으로 본 것 만으로도 배워올 때가 있다.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 중에 하나가 스님들께서 절을 올리시는 모습이다.

100일을 목표로 108배를 하고 있는 중인 나는,

54배씩 두번 나누어 하던 것을 얼마 전부터 아침에 108배를 다 해버리며

'이제 이정도는 쉬워'하고는 큰 만족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문제는 절을 올리는 자세와 태도이다. 꾸준히 하는 것에만 애써 위안 삼으며

어떤 간절함이나 지극함이 없다. 단순히 무릎을 굽혔다 폈다, 팔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운동을 하는 사람처럼 108이라는 숫자를 채우는 것에만 급급하다. 

그런 중에 단 한배라도 제대로 올린 적이 있었을까.

스님들께서 절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느낌이 전해져 온다.

하여 나도 따라해보려 노력은 해봤지만 쉽지 않다.

숫자에 열을 올리며 가장 중요한 지극한 마음을 등한시 했던 어리석음을 참회합니다. _()_

 

 

 

* 감사

- 비가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홍서원에 편히 오고 갈 수 있도록 데려다 주신 거사님과 보살님들께 감사합니다. _()_

- 다같이 한 마음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노래를 부르며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었음에 감사인사 올립니다.

- 마음 편히 맛있는 점심 공양을 먹은 것에 감사합니다.

 

 

- 반대로 가려던 마음을 돌이켜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정진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주시는 큰스님께 감사드립니다. 

 

 

 

* 원력

부처님 가르침 뒤로 물러서지 않는 자리에 이를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은혜 갚은 일만 할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조바심을 내지 않고 천천히 지극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 회향

아주 작은 선근공덕이라도, 아주 작은 깨우침이라도 일체 중생과 부처님께 회향합니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대긍정일기2016. 7. 2. 20:35

 

 

 

오랜만에 우쿨렐레. 이랑의 <너의 리듬>

인생노래인 <삐이삐이>도 다시 불러보았는데 그건 다음 일기에 올려야디.

 

 

 

 

* 참회

이토록 쉽게 흔들리고 변하는 마음임을 그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어리석음을 참회합니다...

 

 

하루하루가 살만 하다 여겨질 때,

그런 날들이 계속되기만을 바란 것은 어리석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그렇게 괜찮은 삶이라면 더 나아지고 싶은 욕심도,  

스스로를 반성하게 될 기회 조차도 얻기가 힘들어진다.

 

반면에 삶이 힘들때,

그럴 때 아이러니 하게도 더 나아질 기회가 찾아오고 자기 반성도 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기운을 내라며 *카스를 마시고 *타500을 선물하곤 하지만,

그건 그저 설탕물일 뿐이다.

매번 이런 순간들이 찾아올때면 외면하거나 그대로 눌러버렸던 나는

새롭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하나 찾았는데 그건 바로 큰스님의 법문을 듣는 일이다.

위태로운 점은 그 조차도 하기 싫어지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온갖 생각들이 다 떠오른다.

 

'이대로 끝인가'

'놓지 말라고 하셨는데'

'니가 그럼 그렇지 뭐' 등등.

 

그러다 순간적인 선택을 하고는 그대로 널부러져서 블로그 속 법문을 청한다.

멍한 상태로 듣다가도 어느 시점이 지나고 나면 점차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나는 늘 같은 이유로 무거운 기분에 빠져드는데 그건 죄책감 또는 창피함, 자기 비하 같은 마음이다.

스님 말씀을 듣다 보면 나는 이미 온전하고도 완전한 존재라는 걸 다시금 자각하게 된다.

 

비어있음의 자비, 그 자체

 

특별히 내 상황에 맞추어 설해주시는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어느 법문을 듣던지 간에 내게 꼭 들어맞는 말씀들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혹은 몇일 단위로 엎치락 뒤치락 하는 마음은

괜찮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끝없이 떨어져 내릴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교묘한 마음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피며

오뚜기처럼 다시, 청개구리처럼 다시 벌떡 벌떡 일어나는 자세가 필요하다.

 

너무 쉽게 만족하고 너무 쉽게 좌절하는 마음을 어떻게 길들여야 할까?

만족스러울 때는 더 치밀하게 살펴서 들뜸을 가라 앉히고,

좌절할 때는 긍정적인 부분들을 자각하여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는게 균형인 것 같다.

 

 

 

* 감사

에고가 아닌 부처님의 가피를 입고 살아감에 감사합니다.

 

부처님의 가피라는 표현은 어딘지 모르게 미신 같은 스멜이 느껴져서 거부감이 느껴졌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에고가 잘못 이해한 탓이었구나, 알게 됐다.

 

에고로 지은 삶은,

'내가 옳다'

'내가 잘났다'

'잘된 것은 내 탓, 잘못된 것은 네 탓'

하는 식의 분별의 삶이지만

 

부처의 삶은,

내가 아닌 전체의 비어있음, 그리고 오직 자비뿐인 삶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때문에 내가 아니라

'당신이 옳다'

'당신을 존중한다'

'잘된 것은 모두 당신 덕분' 그리고 '부처님 덕분' 할 수 있게 된다.

 

 

 

* 원력

에고의 장난질에 놀아나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옴 아 훔 _()_

 

 

 

* 회향

아주 작은 선근공덕이라도, 아주 작은 깨우침이라도 일체 중생들과 부처님께 회향되어지이다.

 

 

 

/ 양갱을 만들겠다고 이것 저것 재료를 샀는데...

팥을 삶은 일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으면서도 굳이 저녁판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 잘 됐으면 좋겠다. :)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