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2011. 5. 5. 20:04


2011.01.24 19:23




 
p. 290

 보는 것의 위태로움. 그것은 결국 자신의 눈을 앎의 유일한 창으로 믿는 데서 오는 것이다. 감각을 앎의 유일한 원천으로 삼을 때 삶은 얼마나 위태롭고 천박해질 것인가. 이어지는 대목에서 연암을 그 점을 거듭 환기한다. "소리와 빛은 외물(外物)이니 외물이 항상 이목(耳目)에 누(累)가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것을 잃게 하는 것이 이 같거든, 하물며 인생이 살아가는 데 있어 그 험하고 위태로운 것이 강물보다 심하고, 보고 듣는 것이 문득 병이 되는 것임에랴."

 

 

p.319

 요점은 척도를 고정시키지 말라는 것, 진리 혹은 가치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놓이는 자리, 곧 배치에 따라 달라지는 까닭이다.

 

 

 

 

*

물음, 사이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1. 5. 5. 20:03


2011.01.20 11:20


 




 p. 156

 그때, 왜 그랬는지 몰라도, 내 속에서 그 무엇인가가 툭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신부복 깃을 움켜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버렸다. 너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뭐냐? 그러나 너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한 가치도 없어. 너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너에게는 없지 않느냐?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너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에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또 옳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너도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생애 전체에 걸쳐,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쳐서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너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숙명,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더불어 너처럼 나의 형제라고 하는 수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알아듣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을 가지고 있다. 특권을 가진 사람들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너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네가 살인범으로 고발되었으면서 어머니의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1. 5. 5. 20:02


2011.01.18 23:33



 
p. 15 

 모든 배움은 호기심과 의문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p. 23

 인간의 두뇌 기능 중 가장 단순한 것은 어떤 정보를 읽고 아무런 비판이나 판단 없이 그대로 기억하는 것

 

pp. 28~29

 나는 그 사건을 통해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는 일이 그 사람을 얼마나 많이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 삶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삶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성장해야만 가능하다. 교사와 부모가 끊임없이 아이들을 믿고 인격체로서 존중해 줄 때 비로소 그 아이들도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한다고 나는 믿는다.

 

pp. 184~185

 

 나의 이웃들이 선이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실은 악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내가 후회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나의 방정한 품행에 대해서일 것이다. 무슨 귀신이 씌워서 나는 그처럼 착한 모습을 보이며 다녔을까?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왜 내 이웃들이 선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것이 사실은 악일까? 이 구절은 정말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로우의 날카로운 지적에 따르면, 아무리 착하고 위대한 행위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즉 진정으로 자발적인 행위가 아니라면 별 의미가 없고 오히려 그것은 '악' 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주위의 기대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살 때라야 진정한 선이 될 수 있으리라.

 

 

 

 

 

*

요즘 마음에 두고 있는 간디학교를 이야기한 책이다:)

간디학교는 단순히 학교만을 의미하는 곳이 아니다. 생태마을, 공동체적인 삶, 대안적 기업, 그리고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 이기도 하다. 아이..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1. 5. 5. 20:00


2011.01.13 22:33


나는 꿈속을 살고 있나 …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1. 5. 5. 19:48


2011.01.11 19:45


나도 이 아저씨처럼 농사짓고 싶다 :)

농사, 집짓기, 채식, 대안학교. 여기에 다 들어있다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