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오고 가는 길에 눈과 코가 즐거웠는데, 돌아오는 길에 보니 베어지고 없다. 무상하구나.
* 참회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뭔가 하고 있을때 연락이 왔다는 이유만으로 싫은 마음을 일으킨 것을 참회합니다.
(이번 경험으로 내가 방해 받는다고 느끼는 것 자체를 엄청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꽃이 예쁘다고 향기를 맡고 사진도 찍고.. 그러던 중에 전화벨이 울리는데 순간 싫은 마음이 확!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금방 통화를 끝내고 곧바로 참회를 했다. 이토록 못난 점을 빨리 알아차린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 수용하는 사람이고 싶어라.)
살피면 살필수록 모난 곳 투성이 입니다. 오늘 하루 중에도 자비로운 마음보다는 싫은 마음, 귀찮은 마음, 상을 세우는 생각이 훨씬 더 많았음을 참회합니다. _()_ 이런 마음들이 일어날 때마다 동일시 하지 않으며 꾸준히 알아차리겠습니다.
* 감사
푸른 오월을 바라보고, 스치는 바람의 상쾌함을 느끼며, 붉은 장미의 아름다움을 지켜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문고리가 고장이 나서 3층 높이의 창문 사이로 넘어 가겠다는 자칫 위험할 수 있는 행동을 하려던 것을
'사람 다치면 어쩌려고'하는 말을 듣고 제 몸 귀하게 다룰 줄 아는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히 다치지 않고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은 아만이었음을 깨우침에 감사합니다.
* 원력
부러 자비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지는 자비심을 키워 나갈 것을 발원합니다.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니고 있으므로,
자비 아닌 것을 열심히 떼어내고 깎아내는 작업만 하겠습니다.
자 : 남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마음
비 : 괴로움을 덜어주려는 마음
희 : 괴로움을 떠나 즐거움을 얻으면 기뻐하는 마음
사 : 평등하게 대하려는 마음
을 무량하게 키워나가겠습니다. 옴아훔 _()_
* 회향
회향할 만한 선근 공덕이 없는 것 같지만, 있다면 전부 회향합니다.
_()()()_
/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라는 대사가 나왔는데 참 와닿았다.
나이든 사람들만 죽음을 곁에 둘 것이 아니라, 젊기 때문에 힘 있을때 더욱 깊게 사유해야 하는 것.
근거도 없이 막연히 80세 이상은 살거라고 여기며 한창 즐기며 살라고들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도, 아니 당장 우리 엄마 아빠 연배의 어른들만 보아도 병을 앓지 않는 사람이 없다.
시간 금방 간다. 내가 벌써 서른인 걸 보면 알지. 언제나 죽음에 대한 사유로부터 멀어지지 않기를.
요즘 바라는 게 참 많다.
<디어 마이 프렌즈> 하나 남은거 보고 싶은데, 이거 보고 나면 시간이 많이 지나버릴 것 같아서 꾸욱 참는다.
벌써부터 졸립기 시작하니, 공성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끙.
보리심의 새싹 법문 동영상을 한편 보고, 교수님께서 주신 <불교의 무아론>을 읽다가 자야겠다.
'어떤 나쁜 사람이 버리는 거야', '저걸 내가 왜 주워야 해', '저 쓰레기들을 다 줍다간 시간이 다 가버리고 말걸', '나처럼 안버리면 얼마나 좋아?'하고 온갖 잡생각은 다 하면서, 직접 주워 쓰레기통에 버릴 자유는 없었음을 참회합니다.
* 감사
쓰레기를 주워 버릴 자유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많이(?) 주웠다. 오고 가는 길에 한 두개쯤 주워 버린 적이 있고, 다같이 의무적으로 한걸 빼면 처음이다. 오 맙소사. 진짜로 처음이구나.
쓰레기를 주워야겠다는 마음이 든 경위는 이렇다.
<참회, 감사, 원력, 회향>의 훈습일기를 쓰는데
다른 부분 보다도 '회향'에서 딱 걸리는 거다. '회향은 어떻게 하는 걸까'. '뭘 해야하는 걸까' 싶기도 하거니와, 회향을 한다는 건 내가 뭔가 잘한 부분, 선한 부분을 실천한 것이 있어야지 할 수가 있는건데, 그게 떠오르질 않으니 할 거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착한 일을 해볼까 하는 마음에 20L 짜리 쓰레기 봉지와 집게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평소에 눈여겨 본 것은 큼직 큼직한 쓰레기들이었다. 그런데 이 쓰레기들이 한 두개가 아니였기 때문에 맨손으로는 다 주워버릴 엄두는 안나고 해서 '내가 버린 것도 아닌데 뭐'하고는 그냥 지나치곤 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몇개일 뿐이니 비닐봉지 정도면 충분히 다 주워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가면서도 '몇개 안될 거 같은데 그냥 10L 짜리로 할까?' 하다가 혹시나 싶어 20L 짜리를 챙겼다.
그 런 데
문제는 그런 쓰레기들이 아니였다. 길 가장자리에 쌓여있던 수많은 담배꽁초들. 그동안은 눈에 걸리는 쓰레기만 보느라 그렇게 작은 쓰레기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쓰레기를 주우려고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니 이렇게나 많을수가! 대충 보고 멀리서 보니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주워도 주워도 계속해서 꽁초들이 보이고. 또 하나 줍기가 난감했던 쓰레기들은 묵은 쓰레기들이었다. 얼마나 오래된건지 색이 바래고, 곰팡이가 슬고, 흙과 엉겨붙어 눅눅해진 쓰레기들. 이 쓰레기들은 진짜 줍기도 싫은 기분이 들었다. 제일 싫었던 것은 페트병에 약간의 물(?)과 함께 담겨있는 담배꽁초들.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그냥 버려두었으면 주울 수나 있는 것을, 그렇게 섞어 놓으니 물 따로, 꽁초 따로, 재활용품 따로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쓰레기들은 어디서 왔을까? 쓰레기를 버리고자 하는 사람들 마음 속에서 왔겠지.
진짜 쓰레기는 이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다.
쓰레기는 떨어져 있으니 주울수 있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 숨어 있는,
드러나지 않는 진짜 쓰레기는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주울 수도 없다.
진짜 버려야 할 쓰레기는 마음 속에 있는 것.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 마음 속의 쓰레기는 무엇일까?
큼직큼직하고 이제 막 만들어진 쓰레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반면에 담배꽁초처럼 작은 쓰레기들은 무엇이 있을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쓰레기들.
오래된 쓰레기는 무엇일까? 만지기도 싫어 외면하고 묻어두기만 했던 묵은 습관의 쓰레기들.
이런 생각에 미치다 보니 끝이 없는 쓰레기들을 보며 '누가 누굴 욕하겠나' 싶어졌다. 내 쓰레기도 버리지 못해 이렇게 끌어 안고 사는데. 요 근방을 줍는 것 뿐인데도 20L 쓰레기봉투는 다 들어 찼고, 눈에 보이는 모든 쓰레기를 줍다가는 짜증이 날 것만 같아서 오늘은 이정도만 하는 마음으로 그만 두었다. 착한 마음 내려다가 되려 성질을 부린다면 에고만 강화시킬 뿐이겠지 싶었다. 아주 깨끗하게는 못했지만 그래도 쓰레기봉투를 채워 묶어두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쓰레기를 주워 버릴 자유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 원력
드라마는 눈으로 보는 것 뿐이라 간접적인 경험에 불과하지만, 모든 상황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이라 여긴다. 집에 있으면서도 TV는 아예 틀지를 않을 정도로 흥미가 없지만, 최근에 알게된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에 결국 빠져들고 말았다. 드라마 속 세상은 아름답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훨씬 간절함이 묻어나는 그런 세상.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내가 가졌던 미련들을 떨쳐내기를 바래본다. 어떤 아름다운 것들도, 진실된 사랑들도... 그 순간, 가까이에 있을 때는 행복인 듯 보이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하여 조금만 멀어지고 나면 곧 슬픔이 되버리고 만다. 이왕 빠진 드라마 재미나게 볼테지만, 기왕이면 세상 일에 미련을 떨쳐 버리고, 보다 자비심을 키울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드라마 하나를 보더라도 자비심을 키우는 생각을 하겠습니다. 마음 속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힘은 자비심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연금술은 오직 사랑 그 뿐임을. 늘 되새기며 잊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_()_
* 회향
겨우 쓰레기봉투 하나 채운 선근 공덕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믿음으로 회향합니다. 이 회향으로 온 존재의 마음 속에서 눈꼽 만큼의 쓰레기라도 버려 보다 자유로울 수 있기를!
/
초파일에 홍서원에서 받아 온 <열려있는 참된 깨달음> 두 번째 이야기를, 오늘까지 해서 두 번 읽었다.
/ 그간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 이름 지으며 볼 때마다 부정적인 마음을 내곤 했던 사람이 있었다. 개인적으론 누군가를 이렇게 싫어하는 일이 굉장히 드물다고 여기고 있는데... 때문에 싫어하는 이유가 합당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착한 내가 싫어하는 거니까 그만한 이유가 있는거라고.
그런데 스님 말씀을 들으며 모든 것을 내 안에서 찾겠다는 말로만 알았던 것을 실천에 옮겨 보고자 마음 먹었더니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나라는 걸 알수 있었다. 또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 여기며 수용하고자 하는 마음을 더 일으켜 보았더니 같은 상황에서도 이전만큼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게다가 오늘은 서로 웃으며 안부까지 묻게 되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사람의 고생스러움이 안쓰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뻔뻔함'이라 믿었던 생각이 '그럴만한 사정'으로 바뀌기까지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리다니... 그걸 알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내가 옳다'는 생각과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금도 생각해보려 하지 않은 좁은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참 기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간 원망하는 마음을 내고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속으로는 화를 내었던 어리석음을 참회합니다...
/ 생명을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해쳤던 못된 마음을 참회합니다...
* 감사
봄날의 공기를 쐬며 아장아장 한 걸음씩 걸어나가는 아이의 모습에 기쁜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용기에 감사합니다. 시원한 바람에 자유로운 마음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소소한 충격들에 주눅들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원력
쉽게 남의 허물을 지적하지 않으며, '그럴 것이다' 추측하여 원망하지 않으며, 누군가 나의 허물을 지적하거나 나와 다른 생각을 주장할 때 '그럴리가 없다'고 부정하기 전에 깊게 수용하고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그렇게 받아들인 만큼 보다 넓은 그릇이 되기를. 그렇게 넓어진 마음으로 언제나 편안하고 밝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나보다 남의 마음이 훤히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되기를.
* 회향
내가 함부로 해쳤던 생명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내게 조금이라도 선한 공덕이 있다면 모두 그들에게 회향되기를.
/
단 일주일 사이인데도 매일매일 달라지는게 느껴진다.
조금씩 나아지며, 조금 더 행복해지고, 조금 더 편안해 지고, 조금 더 자애로워지고, 조금 더 노력하는...
/
친구와 다투고 나서 자신의 허물은 숨기고 친구의 허물만 들춰냈던 아이가,
자기의 그런 모습을 스스로 얘기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자신을 보호하려 할때는 자꾸만 시선을 회피하고 어떤 말을 할지 생각하더니,
솔직한 말을 할때는 두 눈을 마주하며 깊은 눈빛을 보낸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눈은 아름답다.
/
시선이란 비추어 보는 것. 진짜를 보아주는 것.
그것은 오직 하나 뿐.
/
아무런 효과가 없을리가 없다. 온 존재계는 진실한 마음에 감응하는 법이니까.
/
훈습 일기를 안쓰던 말투로 쓰다보니 영 어색한 문장들이 되는 것 같지만. 그게 중요한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