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과 기억의 기록'에 해당되는 글 437건

  1. 2011.04.03 제이슨 므라즈는 채식을 한다 10
  2. 2011.03.09 소소한 일상, 기분좋은 밤 10
  3. 2011.02.16 매화는 향기롭다 16
  4. 2011.01.23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6
  5. 2011.01.19 화가의 역할 6




십센치 노래 아메리카노랑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노래를 듣는데 '아 느낌 좋다' 하다가
노랫말을 보니 발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ㅋㅋ 재밌당.
보컬은 젬베 치고 다른 한명은 기타를 치는데
기타치는 사람은 발에 탬버린도 차고 있다. ㅋㅋㅋ 귀엽당.
젬베라는 악기는 아프리카 악기인데 제이슨므라즈가 내한공연 했을때 보고
그 후로 구입해서 연습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0cm는 무슨 뜻일까 안그래도 궁금했는데 키차이가 십센치라니 ㅋㅋㅋㅋㅋㅋㅋ
십센치 공연 영상 보고 듣다가 이 사람들이 제이슨 므라즈 노래 아임유얼스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제이슨므라즈가 부르는 원곡을 찾아서 듣다가 문득...
'제이슨 므라즈 채식할 것 같다'하는 생각이 들어서 검색해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진짜 채식한다 ㅋㅋㅋㅋ
이 사람이 부르는 노래나 외향적인 모습을 보면 그런 느낌이 온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11년 2월 20일, 햇살 좋은날 - 



교수님을 뵙고 나면 항상 마음이 다잡아진다.
오늘도 게으르고 나태한 상태에서 살짝 벗어난 기분이다.

고민하지말고, 해보기.
해보고 싶은걸 주욱... 적어보고 우선순위 정하기.

내가 농사에 관심있어라 하는 걸 아시는 교수님께서
책 4권을 선물로 주셨다. 
신경써주시는 마음에 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

몸을 위해 산다 → 몸은 사라진다
:욕심 때문에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한다.
의식을 높이는 것 → 몸에 대한 집착이 낮아진다.
의식수준을 높일수록 행복해진다.

물건을 주는 것 보다 마음을 주는 것이 더 크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다른 사람에게 줄 것밖에 없게 된다. 자연스레 사랑하게 되는 것.
욕심을 내려놓는 만큼 나와 너의 차이가 사라지고 모두 같은 '내'가 된다. 
'원수는 없다'
내가 좋은 일을 하면 세상도 내게 좋은 영향을, 내가 나쁜 일을 하면 세상도 나쁜 영향을 준다. 메아리처럼
욕심을 버리기가 어려워서 지키는 것이 계율이다.
내가 좋고 행복하면 그것이 옳은 길이다.



교수님 꼭 빨리 나으세요! 



Posted by 보리바라봄
느낌과 기억의 기록2011. 2. 16. 01:56


(상해아쿠아리움 상점에서)


 이번 열하일기 코스 해외연수는 중앙도서관의 기획으로 다녀오게 됐다. 독서마일리지와, 도서관장님의 추천, 다독자 등등 다양한 연유로 연수를 떠날 수 있었는데 나는 작년 가을에 열렸던 제2회 독서토론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고 해외연수 인터뷰 기회를 얻어 이번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연암은 내게 다소 생소한 감이 있었기 때문에 연수를 시작하기 전에 아쉬운 대로(두꺼운 열하일기를 읽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부족했다)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를 읽었다. 


 연암 박지원은 그의 단편소설 <허생전>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글이 실은 「열하일기」속에 담겨진 일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호질>과 <양반전> 역시도 「열하일기」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다. 연암의 글은 이렇게 부분으로 나뉘어 우리에게 전해져 왔다. 그것이 열하일기를 좀 더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이유일까? ‘박지원의 열하일기’라는 구조를 달달 외우면서도, 그 열하일기가 청나라 황제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조선 사신단의 일행이 되었던 연암의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이는 흔치 않을 것이다.


 이번 해외 연수에서는 6박 7일 동안 심양과 단동을 거쳐 고궁과 북릉공원, 호산산성과 압록강 유람선을 답사하고, 진황도에서 천하제일관과 로룡두, 맹강녀묘를, 승덕에서는 피서산장과 소포탈라궁을 구경했다. 북경에서는 천안문광장과 자금성, 이화원을 들른 후에 뮤지컬 금면왕조를 관람했으며, 상해에서는 101타워와 임시정부청사, 홍구공원, 황포강유람선, 상해서커스, 아쿠아리움 등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유적지를 둘러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이동해야만 하는 제한적인 시간과 일정으로 인해 연암의 자취를 한껏 느끼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다. 때문에 나는 이번 연수중에 특별한 인상을 주었던 ‘뮤지컬 금면왕조’와 상해 일정을 중심으로 감상문을 써내려갈까 한다.

  

 중국의 거리는 집집마다 화려한 복주머니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폭죽소리로 넘실댄다. 왜 이렇게 소란스러운가 했더니, 중국의 최대명절인 춘절기간이기 때문이다. 춘절은 음력 12월 23일부터 1월 15일까지로 ‘구력년’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설날과 비슷하다. 넓은 대륙의 크기를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장시간 버스를 이용해야만 했는데 그러는 동안 수많은 불꽃과 조명들을 즐길 수 있었다. 중국의 교통을 이용하면서 또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대중교통 질서이다. 중국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교통법규를 너무도 쉽게 위반한다. 신호등은 친절하게도 얼마 후에 신호가 바뀌는지 까지도 설명해 주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차와 사람이 동시에 건너가기가 일쑤이고 차와 차 사이에 사람이 끼어 있는 것도  여러 번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교통질서는 무질서 속의 질서가 아닌가 싶다. 가끔은 유턴과 역주행으로 위험천만해 보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자동차와 사람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천천히 달린다. 이 속에는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긴장감과 분노(교통법규위반에서 오는)를 찾아볼 수 없다. 

 큼지막한 건물들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광활한 대륙을 달리다 보면 ‘이런 곳에 사람이 살까’싶은 곳에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눈부시게 차가운 눈들 사이에 솟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의 강인함과 그들의 삶에 관하여 생각해본다.


 

(사진찍기는 금지되어 있다. 이건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

 중국연수 5일째 되던 날 저녁, 우리는 뮤지컬 금면왕조를 관람할 수 있었다. 금면왕조(金面王朝)는 중국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극화한 이야기이다. 여자들만 사는 금면왕국에 남자들만 사는 남면왕조가 쳐들어와 싸우게 되지만, 남면왕과 병사들은 금면여왕의 어진 정치와 착한 마음 때문에 새사람이 된다. 그러던 어느날 큰 홍수가 발생하여 금면여왕은 하늘에 자신의 몸을 맡기게 되고 죽은 여왕은 다시 태어나 태양조가 되어 날아다니며 금면왕조를 지켜준다. 이 단순한 스토리는 언어 없이 펼쳐지는 그들의 표현력으로 인해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훌륭한 무대장치와 감미로운 음향, 역동적인 안무와 화려한 의상은 그들의 연기에 맛을 더한다. 인간의 기술력과 인체의 환상적인 조화! 부드럽고 유연한 인간의 몸짓을 ‘아름답다’는 말로 다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여성의 우아함과 남성의 강인함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감명 깊었던 것은 부드러운 인체의 선을 통해 흐르는 여성미였다.

 중국에서 인체의 신비로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공연이 있었는데 바로 6일째 저녁에 관람했던 상해서커스이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과 때로는 웃음을 터뜨리게 했던 그들의 공연은, 거칠고 단단한 것이 강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유연한 것이 더 강하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육체에 있는 세포들을 모두 사용할 것만 같은 몸놀림을 보고 있자니 잔뜩 움츠려든 내 어깨가 부끄럽게 여겨졌다. 어쩌면 약동하는 생명에게 어울리는 삶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상해101타워, 상해국제금융센터)


 101타워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것이 대만에 있는 그것 말고 상해에도 있었으니, 이름 하여 상해국제금융센터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병따개 모양의 이 건물은 보는 즉시 ‘우와’라는 감탄사를 자아낸다. 하지만 막상 꼭대기 층에 올라서 보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작게 보여 그 높이를 실감할 수 없게 한다. 노랑, 파랑, 분홍, 연두색의 예쁜 자동차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작은 것들은 손으로 꾹 누르면 납작하게 눌릴 것만 같다. 이것이 킹콩의 마음일까? 인간이 작은 생명들을 손쉽게 죽여 버리듯 킹콩 또한 그 모든 것들을 쉽게 뭉갤 수 있었을 것이다.


 

(윤봉길 의사의 동상과 초상화)

 이번 중국연수의 마지막 날 들렀던 홍구공원은 올 봄의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하고 있었다. 곳곳에 피어있는 매화는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어쩜 이리도 향기로울까? 그것은 마치 금면왕조의 몸짓 같았다. 그런데 이곳에 매화나무가 심겨 있는 이유는 바로 윤봉길의사 때문이었다. 1932년 이곳 홍구공원에서 일본군의 수뇌부인 사라카와 요시노리에게 도시락폭탄을 던진 그의 호(號)가 매헌(梅軒)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그가 남긴 글의 일부이다. 스물넷의 나이에 도시락폭탄을 던진 그의 이상은 겨레에 바치는 사랑이었다. 지금 내가 가진 이상은 무엇인가? 이상은커녕 지나치게 안일한 삶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이상을 향한 뜨거운 사랑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가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이다.

 나는 건강한 먹을거리를 바탕으로 독립적인 자급자족을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의미로써 만의 학교가 아니라 지역의 문화공간이기도 한 학교를 중심으로 지역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지역공동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이가 외국의 저 유명한 인물이 아니라 안중근 의사라는 사실을 이번 연수를 하던 중에 알게 됐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동아시아공동체론’보다 100년 앞서고 유럽공동체보다도 70년이나 앞선다고 한다. 그토록 관심을 가졌던 부분인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생각이었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다.


 끝으로 연수중에 있었던 에피소드 두 개를 소개하면서 감상문을 마치고자 한다.  

           

에피소드 1.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중국연수 3일째 되던 날, 향신료를 뺀 현지식 요리를 맛있게 먹고 나서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밖에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어 우리의 마음은 조급한 상태였다. 그런데 잘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추더니 중국인 여덟명 정도가 우르르 몰려드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그들 모두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세 명 정도는 내려야 작동할 것 같았는데 그들은 애꿎은 버튼만 눌러대다가 드디어 한 명이 내려도 반응이 없자, 또 다른 사람이 내리고 다시 타고를 반복하며 서로 실랑이를 벌여댔다. 나는 슬슬 짜증이 몰려왔다. 안 그래도 늦었는데! 그러다가 그들이 우르르 내리고 결국 딱 한명만 엘리베이터에 남아 우리와 함께 내려가게 되었다. 그 순간 흐르던 침묵과 받아주는 이 없는 중국인의 언어...(중국어를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이 상황은 엘리베이터를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이야기가 우습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직접 겪었던 몇 명은 웬만한 시트콤보다도 더 웃기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현장)

에피소드 2. 깔려 죽은 돼지들

 연수 4일째, 승덕(열하)으로 떠나던 버스에서 목격한 일이다. 잘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막히더니 몇 분간의 정체가 시작됐다. 혹시 사고라도 났나, 싶었는데 정말로 큰 교통사고가 나있었다. 처음에 목격된 것은 두 마리의 돼지가 도로 위에서 꿀꿀 거리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 다음으로 목격된 모습은 대형 참사였다. 돼지를 싣고 가던 대형차와 소형차가 전복되어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았다면 크게 다쳤을 상황이었다. 걱정이 되는 것은 돼지들도 마찬가지였다. 뒤룩뒤룩 살이 찐 돼지들은 서로 옆으로 눌려 압사당하기 일보 직적이었다. 어쩌면 제일 아래에 깔린 돼지들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곁에 있던 경찰들은 돼지들의 다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을 구출하는 것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보였다. 짧은 시간에 그 현장을 지나쳤지만 즐거웠던 마음이 이내 착잡해졌다. 저 돼지들을 저렇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단순한 교통사고였을까?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구제역으로 인해 수백만 마리의 동물들이 살처분 되었다. 사람의 미각을 위해 길러지는 수많은 동물들은 이런 사고나 질병이 아니더라도 제 수명에 훨씬 못 미치는 생을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생산해서 죽이고, 소비하고, 생매장 시키는 우리가 정말 문명인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 사진



(상해아쿠아리움의 해파리들)



(압록강)



(첫째날 아주 좋은 호텔에서 기분이 좋아 찰칵찰칵)



(황포강 유람선에서)





Posted by 보리바라봄
느낌과 기억의 기록2011. 1. 23. 01:04




Claude Monet : Branch of the Seine near Giverny, 1897



  

 에리봉  당신은 많은 책을 집필했고, 그 책들은 논평과 토론과 비평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되돌아볼 때면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레비스트로스  이 모든 게 내게는 낯설구나 하는 느낌을 받지요. 어제 어떤 사람이 내게 남아메리카 어딘가의 신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걸어왔어요. 난 내가 동일한 주제를 다루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어디서 다루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기억이 나질 않더군요.

 ...(중략)...

  레비스트로스 나는 망상을 지니고 있진 않아요. 논증으론 결코 모든 사람을 설득시킬 수 없어요. 그리고 그것은 영원한 설득력을 지니질 못해요. 뒤메질이 자주 사용했던 방식으로 대답해보죠. 이십 년 후, 삼십 년 후 그건 완전히 시대에서 뒤진 것이 되어버립니다.

 ...(중략)...

  레비스트로스 내가 왜 그렇게 많은 작업을 했겠어요? 작업을 할 때면 난 불안한 순간들을 겪습니다. 하지만 작업하지 않을 때면 우울한 권태에 휩싸이고, 내 의식은 나를 괴롭힙니다. 작업하는 삶이 다른 것들보다 나를 더 기쁘게 해주지는 않지만, 최소한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게는 해줍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대담 디디에 에리봉,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송태현 옮김, 강, 2003, pp.151~153.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이 집필한 작업들을 되돌아 보면 이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언급한다. 또한 논증이 모든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는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레비스트로스에게 작업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게 해주는 관심사였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라는 말로 비유하여 표현한다. 흐르는 강물은 끊임없이 변한다. 우리 앞의 강물은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계속 지나가고 있고, 다른 물이 그 자리를 다시 채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우주도 그와 같다고 말한다. 상황이 바뀌면 이전에 배운 지식은 이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레비스트로스는 바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지나간 상황들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강에 발을 담그면 강물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변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하면 우리도 변하고 상황도 변한다. 우리는 변화하는 우주의 일부분이고 우리가 참여함으로써 우리와 관련된 것들이 변한다. 이는 구조주의와 빗대어 보아도 서로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논증이 그가 살았던 현실에는 유효할지도 모르나 시대의 흐름과 변화 앞에서는 무효하게 될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그것이 무의식 상태에서 이루어 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 구조주의(構造主義, structuralisme)는 중심과 주체, 자기동일성을 부정하며 인간정신의 구조가 무의식적이며 보편적이라고 보는 사상이다. 구조는 개개의 요소가 상호의존하는 것으로써 서로 의존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전체적인 틀을 의미한다. 요소들은 서로 결합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하나의 요소가 변하면 전체가 변화하게 된다. 각 요소들은 고유한 역할이 있으며 위치로써 기능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사회를 미개와 문명의 구분 없이 하나의 구조로 판단했으며, 모든 사회가 구조적인 전체성을 가지고 있고, 독립된 사회는 그 자체로 유기적인 전체라고 규정지었다. 또한 신화, 친족관계, 사유하는 것도 구조로써 파악하였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느낌과 기억의 기록2011. 1. 19. 00:13



 Vincent van Gogh: "Child with Orange", 1890


 

  에리봉  화가의 일은 무엇인가를 재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색채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당신에게 반박을 가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  내가 보기에, 화가의 일은 현실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6세기와 17세기의 네덜란드 정물화가들이 치즈 조각의 구조, 투명한 유리잔, 솜털로 뒤덮인 과일을 정확히 묘사하려고 노력한 것은, 물리적인 인상과 화가의 작업이 내포하는 지적인 작용 사이에 상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가치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화가의 작업은 감각 세계에 대한 지적인 반영이 됩니다. 화가는 우리가 내부로부터 감각 세계를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에리봉  술라주는 당신이 19세기의 군소 화가들만 찬양한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  그건 부정확한 지적입니다. 왜냐하면 『야생의 사고』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문자 P를 사용할 수 있는 화가peintre가 모든 것을 발견했으며, 그 이후의 회화는 그가 이룩해놓은 것으로 살 수 있을 만큼 우리가 빚지고 있는 화가가 있는데, 그가 바로 반 데르 바이던Van der Weyden이라고 밝혔기 때문이지요. 다른 화가들에게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에게 내 자신이 보는 것보다 실재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세상사 속에서 나를 감동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나의 지각과 인식 능력을 보조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혹은 한때는 실재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초현실 세계로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지요. 나는 막스 에른스트에 감탄하는 글을 쓰기도 했어요. 이런 사실은 내가 현대화에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대담 디디에 에리봉,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송태현 옮김, 강, 2003, pp.265~266.




  

 나는 화가를 바라보는 레비스트로스의 시각에 동의한다. 언젠가 나는 화가의 역할이란 '사람들이 세상을 더욱 사랑하도록 돕는 것'이라 여겼던 적이 있다. 화가의 역할이 그림에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진기로 대체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일반 사람들은 인식하기 어려운 실존하는 것들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평가하는 대표적인 화가로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를 들 수 있다. 그의 생애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그는 색채를 통해서 연인의 사랑, 마음의 떨림, 사상, 희망, 열정등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이를 눈속임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밖에 인식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초현실의 세계로 초대하는 화가들로는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세라핀 루이(Séraphine Louis, 1864~1942), 파블로 아마링고(Pablo Amaringo, 1943~2009) 등을 들 수 있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