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화엄사엘 다녀왔다.
그리고 화엄사에서부터 지리산 '노고단고개'까지 등산을 다녀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거리가 그정도 인줄 알았으면 아마 못 올랐을 것 같은데.
아무것도 몰랐기에 가능했던 등반.
처음엔 지리산은 참 넓어서 좋다고, 오르기도 완만(?)하다며 기쁨에 들떠 있었다.
나는,
이리 저리 둘러보고 머무르며 오랫동안 보고 있는 걸 좋아하는데
(애초에 등산 같은 건 관심이 없달까...)
엄만,
해찰(딴짓)하지 않고 끝까지 오르는 것, 그것이 중요한 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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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화엄사.
고즈넉한 풍경. 사람도 얼마 없고...
이런게 화엄 세계일까, 싶을 정도로 화려하게 장엄된 풍경에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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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가을 산.
가을의 산이 이제야 처음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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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을 향해 오르다 보면 화엄사의 원찰인 연기암이 있고,
그곳엔 문수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맑고 깨끗하고 쨍-하니, 참 좋았던 풍경. 마음 속 먼지 찌꺼기들이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겨 나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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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고개.
오르는 동안 군말 없이 떨어져있는 작은 쓰레기들을 주워 모았는데,
(스님께서 법문 중에 깨끗한 곳에 쓰레기가 떨어진 걸 알아차리고 줍는 사람을 칭찬하신 후론 더욱 열심히)
이쯤 오르게 되자 떨어진 쓰레기들을 보니 화가 올라왔다.
이런 곳까지 와서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의 심리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처)먹었을까.
궁시렁 궁시렁...
그러고는 곧바로 참회. _()_
이렇게 생색낼 거면 줍질 말든지.
상 없이 줍는 것은 되지도 않으니,
차라리 선업을 쌓으려 줍는거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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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여기까지 왔으니 저 위쪽 노고단까지 가자고 했지만,
나는 더 못올라 간다며 밥을 먹자고 떼를 썼다. 벌써 한시 반인데! 다리도 아파 죽겠는데!!
그래서 결국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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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재료를 준비해 두고 아침 다섯시 반에 일어나 말아 온 채식 김밥.
그리고 엄마가 말려온 감과 고구마, 찐 밤.
새로 담가주신 무오신채 채식 김치.
더할나위 없이 맛있고 풍요롭지만,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 어느 것 하나 내가 공감하거나 나눌 수 있는 풍경이 없다.
이럴 땐 참 세상과 나 사이에서 큰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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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해가 벌써 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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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엔 다리가 아려서 가만히 누워 있어도 아팠다.
매일 뒷산으로 운동을 다니는 엄마는 나보다 나았다.
엄마 다리좀 주물러 드릴까 마음을 먹었었는데,
내 몸 하나 뒤치닥거리 하는 것도 힘든 걸 보고 그만두었다. 또 그만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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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오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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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오늘 점심. 바삭바삭 통밀가루로 만든 김치전.
혼자 있을땐 언제까지고 혼자 있을 수 있을 만큼 잘 있는데.
누구라도 함께 있다보면 계-속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엄마랑 겨우 이틀 같이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 또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들다니.
TV를 켜는 일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당연히 코드는 뽑혀있었고,
엄마는 코드를 꽂아 TV를 본다.
그러면 나는 그게 싫은게 아니고 또 같이 옆에서 열심히 본다.
(이런걸 보면 좀 웃기고 창피하기도 하고.)
드라마도 재미있고, 뉴스도 흥미롭다.
나라가 온통 시끄러운 가운데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 '대통령 하야'를 외친다.
엄마도 그들을 욕하고, 관련 소식들을 스마트폰을 통해 '밴드'씩이나 하며 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도 알려주었다.
동생은 직장 동료들과 그 자리에 참여해서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온다.
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의 분노가 고조되어 촛불이라도 들고 거리로 나가 행동해야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이런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이상하게도 화가 안난다.
사람들이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건 그렇게 화가 나면서도 어째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른다.
독재자의 딸에게 애초에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않기도 했고, (생각했던 수준보다 더 이하이긴 했지만..)
저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을 보며 '사람 보는 눈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됐던 걸 누구 탓을 하냐'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하야를 외치더라도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스스로를 지극히 반성하는 것부터 우선해야하지 않나 싶은.
또 이런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란 사람도 저토록 보잘것 없구나. 그렇게 강해보이고 잘나보이는 사람마저도
나약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구나. 열심히 뛰어서 만들어낸 결과가 고작 저런 것이라니. 부질없어라.'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느덧 '나'라는 틀에 같혀 폐쇄적인 마음으로 치닫게 된다.
'알아차렸으니 그정돈 아니야'하고 위안해 보지만,
어쩔 수 없이 철저히 혼자인 것만 같은 상념에 빠져든다.
이쪽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회색인간이 된듯 한.
깨끗하게 살고 싶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무지무명으로 지었던 지난 과거의 모든 잘못들을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앞으로는 부처님 가르침 따라 세세생생 대자비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겠습니다.
옴아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