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5.21 천사는 오징어 춤을 춰도 천사 :) 4
  2. 2014.12.15 죽음 4
  3. 2014.11.23 저무는 계절 6
느낌과 기억의 기록2016. 5. 21. 20:52

 

 

 

 

혼자 다녀온 지리산 홍서원에서의 점심공양. 세계 최고의 밥상 ♡

엄청난 낯가림(?) 덕에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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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화를 내고, 질투를 하고, 욕심을 낸다.

이 모든 것이 무지무명에서 비롯된 일.

겹겹이 쌓인 두터운 업을 관조함으로 하여 서서히 녹여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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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엔 몇가지 옷들을 내다 버리고, 쌓여있던 짐들도 살짝 정리를 해봤고,

화장실 청소에 신지 않던 긴 장화를 잘라 장마철에 신고 다닐 수 있도록 바꾸어 놓았다.

야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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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의지해야지 만이 형상이 보이는 것들은 그림자가 있지만,

스스로 빛을 내는 밝음 그 자체는 그림자가 없다.

형상의 실체는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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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란 소리에 불과한 것인데 그를 통해 온갖 상을 지어내고 한치의 의심 없이 그대로 믿어버리고는

불안과 실망, 분노와 같은 고통 속에서 허덕이며 산다.

아이고 아무리 머리로 안다 한들, 실생활에서 마주쳤을때 얼마나 빨리 알아채느냐 이게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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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맨날 예쁘다고 해주고. 오징어 춤을 춰도 천사라고 해주고.

우리 꼬꼬마들은 내 어디를 보는 걸까.

마음이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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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등바등 모으는 것들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부질 없고 쓸모 없는가 하는 생각이

찰나에 들면서 갑자기 마음이 풍요로워졌으나, 그럼에도 실생활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부자 마음이 됐다고 기뻐하기도 잠시 쉴새 없이 집착하며 끄달리는 마음과 

이래 저래 핑계대며 가난한 마음을 내는 내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하고 죄송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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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에서 이따금씩 점심 메뉴로 '하이라이스'가 나오곤 했는데, 어영부영 먹다가 요번에

무엇이 들었나 확인을 한번 해봤다. 그 동안은 한번 보겠다는 말 한마디가 어려워 못하다가 용기를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 분말 안엔 '우유, 소고기분말, 양파 …' 등등이 들어 있었다. 채식을 한다더니 눈가리고 아웅이었구나.

 

우유는 비좁은 공간에서 강제로 임신을 당하며 새끼를 낳자마자 떠나보내야 하는 어미소의 눈물이요,

소고기분말은 말 그대로 살아있었던 소를 (한번도 생명답게 살지 못했던) 갈아 가루를 만들어 버린 것이며,

양파는 마음을 들뜨고 산란하게 하여 마음 지키기를 방해한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키고 싶다면, 동시에 다른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착한 마음을 내고 싶다면

먹지 않는게 당연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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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샵에서 판매되는 강아지들의 처참한 실상을 알고서는 그토록 마음아파 하면서 그런 일들이 채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니 어떤 공감이나 들어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답답함과 싫어하는 마음이 더 크게 일어났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생명들의 목숨을 구해낸 일은 틀림없이 가치 있는 행동이지만 본질적인 원인 (귀엽고 예쁜 동물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 동물을 맛있게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은 결코 끝나지 않는 것임을 모르는 걸까. 강아지도 닭도 돼지도 다 같은 생명이고 고통받아 마땅한 동물이 따로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채식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자비와 지혜의 실천행이다.

물론 나도 이전에는 육식을 했었고, 채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적어도 내 행동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 왔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일. 바르고 옳다고 믿는 길을 혼자라도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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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른 되서 만나요."

어디서?

"**동 치과 앞에서 만나요."

만나서 뭐하게?

"숨바꼭질 해요."

"나도 갈거야. 내가 차 태워줄게요."

 

어른이 되어서 만나 하자는 일이 고작 숨바꼭질이라니.

그 순수함에 마음이 즐거웠다.

그런데 나는 그때 쯤이면 여기에 없고 산에서 살것 같다고 했더니,

어디냐며 전화해서 물어보면 된단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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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적인 도덕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말만 있을 뿐 마음이 없기에. 마음이 없으면 행동도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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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폴더를 하나 만들었다.

꾸준히 공부해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_()_

 

 

 

Posted by 보리바라봄
느낌과 기억의 기록2014. 12. 15. 23:26

 

 

할머니의 죽음은 하얗게 바랜 할아버지의 손가락이었다.

하염없이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아빠의 뒷모습이었다.

 

누군가가 죽은 후에 일어나는 과정을 이토록 가까이에서 지켜보기는 처음이다.

으레껏 행해지는 절차를 보며 죽음에 대한 이해나 준비가 되어 있는 이는

나를 포함하여 아무도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땅 어딘가에서는 매일 사람이 죽고 장례식이 치러질 것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낯설은 죽음이라니.

 

망자를 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모든 의식은 살아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무거운 감정의 짐을 덜어내기 위한.

 

언젠가 찾아올 죽음 앞에서 이토록 무지해도 되는걸까.

 

 

모쪼록,

이곳에서 겪었던 모든 아픔으로부터 가벼워지시기를.

병들고 낡은 몸은 훌훌 털어버리고 또 다른 곳으로 밝은 여행을 떠나시길 빈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느낌과 기억의 기록2014. 11. 23. 21:23



 

20141123,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어떤 주말을 보낼까 고민하고 있을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전하는 엄마.
온 가족들이 모였다 한다.

살아가면서 마음을 참 무겁게 하고 외면하고 싶게 만드는 상황들이 몇 있는데,
이런 상황도 그 중에 하나이다.
지금은 그나마 병간호를 하지 않을 핑계라도 있다. '일'이라는.
취준생 시절엔 그마저도 없어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꼼짝 없이 병간호를 해야하는 신세.

나는 그게 왜 그리도 싫었을까.

우선 병원이라는 것 자체가 싫고, 병이 있게 한 그 모든 것이 싫었다.
무절제한 식습관과 폭력적인 풍경들.
주사 바늘, 피로한 간호사들, 한밤중에도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소리들,
그야말로 불친절한 불빛들. 환자들. 누군가의 울음소리.
죽음의 문턱에 있는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이 싫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죽이며 앉아있는 것이란 생각만 해도 싫었다.
오며 가는 사람들의 불필요한 조언과 이중적인 태도가 싫었다.
위로라고 챙겨오는 선물들이 싫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거부하는 마음 없이 병문안을 갈 수 있었다.
할머니는 급성백혈병이라고 하는데 항암치료를 해야한다는 둥, 정확한 병명과 치료법은 나도 잘 모르겠다.
연세가 있으셔서 섣불리 치료를 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일반병동에는 입원해봤자 무의미해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셔야 한단다.
할머니는 아무 것도 모르고 응급실에 누워계셨다.
숨을 고르게 쉬지 못하셨고, 손가락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참 오랜만이다.
이런 풍경들.


사실 요즘은 달고 부드러운 것에 취해 있었다.
그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아이들.
여리고 흰 아이들의 웃음, 얼굴, 어떤 밝음 같은 것들.
그 모든 것들과 이외의 외적인 요소들.
이를테면 듣기 좋은 음악, 맛이 좋은 커피, 예쁘게 보이려 치장하는 모든 것들.
그런 것들을 추구하고 바라보고 원하고 있던 차에
늙음과 병 그리고 죽음과 같은 어둠은 정말 오랜만이다.

사람들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삭막한 공간엔 울음소리와 신음소리가 가득하다.


나를 예민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가족이다.
그 누구에게 받은 상처보다도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가장 컸다.
삶과 밀접하게 관계된 것들을 가장 직접적으로 파고들었던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가족들을 만나는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의도적으로 피하기도 했다.
재미있고 따뜻했던 가족들은 어느샌가 불편하고 어색한 사람들이 되었다.
학업과 직장, 결혼 그리고 죽음까지.
가장 많은 관심을 두면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다.
 

내 나름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였다.
나름의 가치관과 기준을 세우고 나서도 이리저리 방황했던 시간들.
그때마다 어른들은 내게 이래라 저래라 자신들의 가치관을 내세웠다.
그들의 삶과 경험, 그들이 겪은 모든 어려움이 저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머리로는 인정하면서도
막상 대면하고 나면 내 마음은 늘 처참해졌다.
실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나 그들의 자녀를 향한 말이었다고 해도
나는 늘 울었다.


농사를 짓는다더니 어떻게 된거냐,
좋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해라.
이런 말들을 했다.


뭐.
그랬다.
별 일 없었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