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2016.02.01 21:28


 

 

2016년 1월의 어느날

 

 

 

 

 

 

예전에 점핑위드러브전에 가서 필립 힐스만 사진집을 사니까 같이 줬던 책인데 꽤 괜찮은 책인듯 하다.

혹시나 약간은 안드로메다 느낌이 있을까 싶어 염려했지만 참고 문헌들을 보고 신뢰할 만 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p. 38

 인간이 괴로움을 겪는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인간이 언어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괴로움을 낳을 수 있는 언어적 기술은 우리 인간에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중단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p. 39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과거로부터 엄청나게 축적되어온 생각이라는 잡음이 현실에서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정보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p. 42

 흔히 괴로움이나 나약함은 우리가 배워야 할 핵심적인 사실들을 알려준다.

 

 

p. 55

 다른 사람의 호흡을 관찰하는 방법은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특히 코칭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호흡을 관찰하면서 상대방과 같이 느끼고, 경우에 따라서는 호흡의 패턴을 같이 맞추는 페이싱 기법도 사용한다. 결국 나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상대방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면 소통이 잘될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에 있어 나와 상대방의 호흡을 관찰하는 것은 아주 유용하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손쉽게 적용해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p. 72

 생각으로부터 행동이 일어난다. 행동으로부터 모든 종류의 결과가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에 투자를 해야 할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들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어떤 생각에 행동을 취해야 하며 어떤 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p. 74-75

 성숙한 마음은 자신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과, 성장과 발달이 그 자체로 만족스럽고 즐겁다는 것을 안다. 성숙함이란 사람이 불확실성 앞에서 편안해지는 법을 배웠다는 것, 그리고 불확실성을 하나의 자연스러운 것으로 끌어안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 (중략) …

 예를 들어 상대방이 무지에 휩싸여 행동할 때 우리는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까? 이때에도 판단을 내려놓고 그냥 바라보자. 판단을 하는 심판관이 아니라 '알아차림'의 상태에 머물도록 하자. 이 상태에 머물면 우리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을 수 있다. 혹은 반응을 해도 상황을 차분히 지켜보면서 그 상황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p. 83-84

 지금 이 순간에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가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있는 그대로'에 무의식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부정적인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내재해 있다. 그런데 이렇게 불평을 하면 스스로를 희생자로 만들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쁜 기운을 전하게 된다.

 

 

p. 99

 감정은 우리의 성격, 행동, 욕구, 경험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행동하고 발전하며 배움을 지속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도 다름 아닌 감정이다. 더 나아가, 흔히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여기는 것조차 전체적인 기능 수행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고 유용한 조절 역할을 한다. 좌절감이나 조바심, 혐오감, 화의 감정이 생길 때 우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생산적인 행동에 나서는 경우가 있다. 불안감과 초조함이 들때 혹시 자신을 너무 심하게 몰아붙인 것은 아닌지 잠시 돌아보면서 속도를 조절하고 긴장을 늦추는 경우도 있다. 외로움은 자신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된다. 또 슬픔이 있기에 상실감을 딛고 일어서게 되며, 죄책감이 있기에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다.

 

 

p. 100

 직감은 머리가 아니라 위장이나 배 속에서 느끼는 것으로 (gut feeling),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맨 처음 생성된 뇌라고 한다. 뇌 속에 들어 있는 신경 전달 물질 수용체 중에서 몇 개는 위장에도 똑같이 들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원시 기관들은 위장을 통해 많은 세계를 느끼고 있다. 정말로 똑똑한 사람은 직관 능력을 계발하기도 한다. 신체 반응 등 뭔가 느낌이 오는 정보가 있으면 어떤 것이든 활용한다. 즉, 평소 의사결정을 잘했을 때의 몸의 반응이나 느낌을 기억했다가 의사결정이 잘되었는지 확인 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p. 104

 상황은 주어진 것이지만 그 상황에 대한 사고 또는 해석의 차이가 다른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고가 사실이 아니라는 중요한 개념으로 이끌어준다.

 

 

p. 105

 좋은 감정에 집착하면 욕심에 빠지게 된다. 반대로, 무엇을 보았을 때 싫은 감정이 들면 화내는 마음이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어떤 것을 보았을 때 무덤덤하다면 어리석은 감정이 일어난다. 무덤덤한 것은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태이다. 앞에서 알아차리기는 마음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음의 움직임을 보면 항상 감정을 동반한다. 결국 좋은 감정, 싫은 감정, 무덤덤한 감정, 그 감정들을 정확히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p. 107

 화를 비롯한 감정들을 알아차린다고 해서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 감정대로 잘 느끼지만 그 감정에 빠져 끌려다니지 않게 된다는 의미이다.

 살다 보면 때때로 불편하게 여기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슬픔에 빠졌다고 해보자. 이때는 일시적으로 슬픔을 덜어줄 해결책을 찾거나 슬픔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슬픈 감정 그대로 슬퍼할 수 있도록 해서 슬픔을 극복할 수도 있다. 이는 마치 슬픔을 느끼되 슬픔에 빠지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처럼, 슬픔을 있는 그대로 충분히 느끼는 것이다.

 

 

p. 109

 우리는 그것을 자유롭게 느끼면서 바람처럼 흘려보낼 수 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알아차린 그 감정에 재미있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이 자신을 얽어매는지, 무엇이 이야기를 쏟아내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자유로워지는지를 바라볼 수 있다.

 

 

p. 134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 제 3자의 위치로 이동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 과거나 미래로 이동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 공중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등은 대표적인 관조 기법이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는 그 문제에 푹 빠져 있기 때문에 그 문제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일럴 때는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 제대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관조이다.

 

 

p. 155-156

 물리학의 양자 이론에서는 모든 물질은 근본적으로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얘기한다. 입자란 돌멩이와 같은 물질의 작은 덩어리이며, 파동이란 물의 파도와 같이 흩어져 퍼질 수 있는 비물질적 떨림으로, 이 둘은 본질적으로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실험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것처럼, 모든 물질의 존재 모습은 그 자체로 고유하게 확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환경, 즉 그 존재를 관찰하기 위한 실험 상황 또는 인식 행위에 따라 입자로서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파동으로서의 특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입자의 성질을 보기 위해 실험을 하면 입자의 얼굴을 보여주고 파동의 특성을 보기 위해 실험을 하면 파동의 얼굴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관찰자는 이 두 가지 속성 가운데 어느 것을 관찰할 것인가를 먼저 선택해야 하고, 따라서 관찰자 스스로가 관찰 대상의 속성을 함께 지어낸다는 뜻이 된다. 즉, 궁극적으로 물질 현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이 출렁거리는 상호작용과 관계만이 존재하며 인간의 인식 행위도 필연적으로 그 관계 속에 개입된다는 것이다.

 주체와 객체와의 통합은 현대 물리학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통찰력 중 하나라고 흔히 말한다. 관찰되는 현상은 실험하는 자와 지켜보는 자가 분리될 수 없으며, 보는 방식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는 얘기이다.

 

 

p. 201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고 나면 스스로 설득되어 실행력이 엄청나게 높아진다.

 

 

p. 261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고 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p. 282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늘 알아차리면서 깨어 있어야 한다.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는데 스스로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알아차리면 된다. 쓸데없는 대화에 끌려다니지는 않는지 알아차리면 된다. 도움이 되지도 않고 오히려 해가 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 알아차리면 된다. 결국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p. 288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대접받고 싶은 바로 그만큼 다른 사람들을 존경과 위엄으로 대하는 것이 최고의 매너이며 인간관계의 황금률이다.

 

 

p. 289-290

 우리가 진정 변화하길 원한다면 진실을 말해야 한다. 즉,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평가해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어떤 부분이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어떤 부분이 그렇지 못한지 솔직해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성장할 준비가 된 것이다. 반면, 진실에서 멀어질 경우 부담스런 문제를 쉽게 무시해버리거나 가짜 해결책을 도입할 수 있다.

 진실을 말할 때 우리는 긍정적인 변화의 힘을 볼 수 있다. 

 

 

 

 

 

아 좋다 책.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다 정리하고 나니 더 좋다. ♡

이 말들을 자꾸 읽어서 내 몸 속에 완전히 각인 되었으면 좋겠다.

267,268 쪽에 나온 질문지를 날 잡아 정리해 봐야겠다. 꼭. +_+

 


Posted by 정아(正阿)
책 읽기2016.01.17 22:54

 

 


 

 

내 입맛대로 진행된 첫 초대:)

생각했던 만큼 편하지 않았고 조금은 경계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시도는 좋았다.

 

 

 

 

 

p.18

 귀 기울여 듣는 자세야말로 마음챙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챙김이란 정말로 소중하게 펼쳐지는 자기 삶과의 친밀감을 계발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삶은 실제로 정말 소중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당신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 이상으로 말입니다.

 

 

p.35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음챙김이란, 당신이 의도적으로 현재 순간에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그리고 당신의 목숨이 그것에 달린 것처럼 주의를 기울일 때 '생겨나는' 무엇이다. 이때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자각(알아차림) 자체이다.

 

 

p. 66-67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자동적 혹은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현실에 관해 생각으로부터 우리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들'을 더 이상 믿지 않을 때, 또 우리가 호기심을 가지고 생각을 자각(알아차림) 속에 담아 그것의 실체 없음과 한계, 부정확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닌 대단한 힘에 놀랄 때, 우리는 그 순간에 생각의 습관적 패턴에 사로잡히지 않고 생각을 있는 그대로의 '생각'으로 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p. 86

 이런 식으로 어떤 대상이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될 수 있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부드러운 애무와 햇빛의 유희, 누군가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드러난 표정, 몸의 일시적인 수축감, 한순간 마음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생각 등은 모두 우리가 지금 이곳에 온전히 현존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것들이다.

 

 

p.90

 놀랍게도 자각(알아차림)은 우리 경험의 안과 밖의 풍광 모두를 그 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각(알아차림) 할 때 안과 밖, 아는 자와 앎의 대상, 주체와 객체, 존재와 행위 사이에는 근본적인 구분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p. 119

 어쩌면 정말로 당신은 당신이 볼 수 있는 것만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우리가 곰곰이 생각하면서 뼛속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질문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삶을 인도하게 만들어야 하는 질문이다.

 

 

p. 150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지만 앗아갈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그의 마지막 자유, 다시 말해 특정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을 선택하는 자유이다." (참고: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p. 168

 이런 식으로 성냄을 마음챙김하는 것은 심오한 치유의 작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반응이라는, 자아가 부여한 무의식적인 구속을 해체시키는 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후라 해도 조금의 자각(알아차림)은 우리가 그 순간에 매우 실제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만약 우리가 방금 우리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성찰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에 감정적으로 반응한 것이 진정으로 잘한 일인지 성찰한다면 우리는 성냄의 영원한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것은 다음 기회에 (그것은 대개 바로 다음 순간에 뒤따라오는데)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일로부터 생기는 몸의 위축되는 에너지를 느끼도록 허용하고 그것을 더 분명히 볼 것을 기억할 수 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그 순간의 거친 에너지에 대해 그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또 강요를 통해 현재 일어나는 현상을 통제하지 않고도 그것이 스스로 일어나 자신의 복잡한 임무를 다한 뒤 사라지게 내버려두는 의도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마치 꺼진 촛불에서 올라오는 연기처럼 말이다.

 

 

p.175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은 불쾌함과 유쾌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성냄과 탐욕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집착과 자기 동일시에 우리가 느끼는 괴로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p.194

 애쓰지 않음의 태도는 결코 사소하게 보아 넘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이미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Posted by 정아(正阿)
책 읽기2012.06.29 10:36




예전에 텍스트큐브에서 블로그를 할때
수선재님(?)이 보내주신 책. 이제야 읽었다.
수선재라는 곳이 명상을 하는 단체 같던데,
그곳에서 활동하는 학생이 보내주셨다.
(그땐 나도 학생이었지 ㅋㅋ)

사실 이런 류의 책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죄송,,해요;)
갑자기 당겨서 읽었다. (고마워요:)

저마다 안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상처 없는 사람 없고,
상처를 줘본 적 없는 사람도 없고.
그러한 상처는 객관적인 원인이 있었다기 보다는
오해의 눈으로 껴안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항상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지
가해자라는 생각은 별로 못했다.
알게 모르게 줬던 상처들이 참 많을텐데...

미안합니다.


/
요즘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중이다.

/
명상이랑 요가랑 배워보고 싶다. 
사실 둘다 별로 엄두는 안난다 ㅋㅋ
요가는 너무 뻣뻣해서 그렇고
명상은 앉아있다보면 졸려서 말이지... -.-
<위빠사나 명상>이나 다시 읽어볼까?





 
Posted by 정아(正阿)
책 읽기2011.11.17 18:46




                                                                      김지연 色 밝히는 붓다 장지에 채색 2007

 

 

p. 75
 목표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는 그 고귀하고 온전한 온갖 자질들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 목표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다. 마음을 정화하고,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며,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고, 영원한 평화를 얻게 해줄 바른 길을 밟아가며, 그 길을 따르는 데서 행복을 얻는 것이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 목표를 마음에 깊이 새길 때, 우리는 그 목표에 도달하리라는 희망과 확신을 갖고 나아갈 수 있다.


p. 146
 알아차림은 모든 것을 아이의 눈으로, 경이로움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순간순간을 마치 우주 최초의 순간이며 유일한 순간인 듯이 본다. 그러니 다시 바라보라.


p.208 
 알아차림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냥 받아들인다. 당신이 알아차림을 키우고 싶다면, 참을성 있게 받아들이는 것반이 유일한 방법이다. 알아차림은 알아차림의 끊임없는 수행, 다시 말해 인내를 뜻하는, 그냥 알아차림 상태로 있고자 하는 단 한 가지 방법에 의해서만 성장한다. 이 과정은 강제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몰아붙인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제 나름의 속도로 진행된다.


p.219
 위빠사나 걷기 명상법은 다른 모든 것은 밀려나고 의식이 철저히 감각들로만 가득하도록 고안된 기법이다. 생각할 여지가 없으니, 감정이 개입될 여지도 없다. 개념을 파악할 시간도 없고, 활동을 개념으로 동결시킬 것도 없다. 자아감각이 있을 필요가 없다. 촉각과 근운동감각의 흐름만이, 끝없이 변화무쌍한, 생짜 체험의 홍수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실재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실재 속으로의 도피를 배운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모든 통찰은 관념 가득한 나머지 생활 영역에 직접 적용할 수 있다.


 


 * * *

교수님께서 선물로 주셨을때

'명상?'싶었다. 낯설기도 하고.

표지가 노랗고 디자인이 예뻐서 일단 거부감이 없기는 했지만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래도 한 장 한 장 읽다보니 지루하지도 않고 특별히 어려운 내용도 없었다.

지난 여름 학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흥미롭게 읽었다.

그렇게 거의 다 읽어놓고는 얼마 간 덮어두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마지막장이 인상깊네. 맺는말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숨쉬기와 자비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도 부지런히 알아차림과 집중 훈련을 해야겠다.

고요한 곳에서 따로 시간을 떼내어 하는 것이 더 쉽다는데

나는 그러기는 뭔가 귀찮은 기분이 들어서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싶다.

그래서 요즘 아침 운동을 할 때도 그럴려고 하고 있고. 흐

 

아 오늘은 남동생에게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화를 내는 순간에는 욱했는데 생각해보면 별로 화낼 일도 아니었다.

아직도 쉽게 화내는 습관이 남아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정말 미안하다.

화를 내고 나서 보니까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Posted by 정아(正阿)


                                                            (10/08/29, 부산에서)


*
어떤 사실에 대해서 몰랐을 땐, 그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오히려 지키기가(?) 쉬웠다.
그런데 알고 나니까 더 지키기가 어려운거야. 더 어기고 싶고. 이건 뭐지? 무슨 심보지? ? ?

*

그 속에 풍덩 빠져서 살때는 모르다가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보면 더 잘 알게 된다는것...

객관적인 입장이 되기 때문일까? 그런데 어떻게 그런 입장이 될수 있지 ?

모르겠'3' 

*
매트릭스 참 재미있다. 1편을 아주 흥미롭게 보고 2편은 쫌 지루하게 보고 이제 3편을 남겨두고 있다 +_+
뒷북 둥둥둥 ~

*
오쇼. 라즈니쉬 오쇼의 도마복음강의를 읽고 있다.
'또 다른 예수'를 읽을때는 그냥 다 알고 있는 걸 쉽게 넘기는 기분이었는데
오쇼는 '이게 뭐다'하고 확실히 이해를 시켜준다.
그래서 '아 그런거구나!'싶다.

아까는 오쇼가 죽음에 관해 언급한 글을 인터넷을 통해서 봤다.
아 그런데 나는 아무리 그런 걸 읽어도 알수가 없다.
머리랑 눈으로는 알아도, 몸으로는 알 수가 없다는거다. 
왜냐
나는 깨달은 사람이 아니니까. T_T
마음으로는 이미 그쪽으로 치우쳐있지만..

*
명상.. 이란 것도 배우고 싶고. 요가... 란 것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슬금슬금.
인도에 가서 배우고싶다.

*
'판단' 이란 건 해야하는 걸까 말아야 하는걸까?
응? ? ? ? ? ? ? ? 
안했다가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 같고
했다가는 오만방자해지는 것 같다.


Posted by 정아(正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