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긍정일기2016. 5. 25. 23:38

 

 

 

 

 

지난 4월 지리산에서 만들었던 발효차. 이런 귀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_()_

 

 

 

 

* 참회

: 배가 아프다고 내 몸과 마음만 생각한 어리석음을 참회합니다. 짐짓 내는 화가 아니라

배가 아픈 것 때문에 짜증 섞인 화를 낸 것을 참회합니다. T_T

아 정말. 이 쪼금 배 아픈 것 가지고도 이 난리인데, 앞으로 찾아올 고통

마음 뿐만 아니라 몸의 고통 앞에서도 두려움이 앞선다. 어떻게 감당해 낼수 있을까? 

 

목소리가 커지다 보면 처음에는 화가 아니었던 감정마저도 진짜 화처럼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나의 언성에 아이들이 깜짝 놀랄 때이다. 그런 얼굴을 보면 '내가 그 정도로 목소리가 컸나' 싶기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가 컸던 것 같아 또 미안한 마음.  

매일매일 일기를 쓰지 않았던 것은 틈틈이 기록해둔 몇 줄의 글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는데,

의식적으로 글을 쓰다보니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는 점이 있다. 이렇게 반성할 거리가 많았다니.

그간 더 많았을텐데 손가락 사이로 바람이 빠져 나가듯, 그렇게 다 새어 보내며 살았구나.

요것도 참회합니다...

 

 

 

 

* 감사

: 배가 아프다고 남은 54배를 빼먹으려고 하고, 훈습 일기를 쓰는 것 마저 귀찮은 마음이 들고.

뭐 이건 누구와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의무적으로 정해 놓은 바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내어 이렇게 꾸준히 이어감에 감사합니다. 그럴 수 있게 비추어 보아준 시선에 감사합니다.

배가 아프다고 먼저 마음 써서 쉬게 해준 동료에게 감사합니다.

누구에게 도움 받는걸 어색해 하고 불편해 하는 나를 장난치듯 도와주며

도움을 받는게 편한 부분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 원력

: 내 몸 어디가 불편하더라도 충분히 감내하며 다른 사람의 불편함도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몸이 아프다고 순식간에 까칠해지는 사람이 아니기를.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그다지도 쉽게 목소리가 작아지는 사람이 아니기를. 몸 앞에 쩔쩔매는 사람이 아니기를. 이보다 더 큰 본래의 자리를 한시도 잊지 않는 사람이기를. 어리석은 자리에 동일시 하지 않겠습니다. (아 이런것도 원력인가 =_=) 구래부동명위불 _()_

 

 

 

 

* 회향

: 싫증을 극복하고 이어나간 꾸준함의 힘으로

오늘 나 때문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평안하고 안녕한 밤을 보내기를.

 

 

 

 

Posted by 보리바라봄
대긍정일기2016. 5. 24. 20:59

 

 

 

 

 

 

 

 

 

 

* 참회 일기

: 크게 거짓말 한 적도 없는 것 같고, '솔직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 편이라

마음 만큼은 진실하다고 나름의 자부(?)를 하고 있었는데

<거짓말을 하면 안되는 이유>에 대한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서는 눈물이 찔끔 나면서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남을 해하는 거짓말 뿐만 아니라, 나의 진실을 덮어 가리는 것 또한 마음을 속이는 거짓이었음을.

포장된 당당함은 너무도 쉽게 흔들려버렸다. 

한편으로는 나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게 하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니, 기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늘 바른 길을 일러주시는 스님께 머리 숙여 감사하는 마음이다.

 

 

 

 

* 감사 일기

: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문득

"선생님 왜 삼촌의 날, 할머니의 날은 없어요?" 하는 꼬마.

그러게, 할머니의 날이랑 삼촌의 날은 없네. 하니

"스승의 날도 있고, 어린이 날도 있고, 어버이 날도 있는데." 한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느냐고 물어보니

그런 날이 없으니 "씁쓸하잖아요. 안타깝잖아요." 하고는

"사랑을 더 받아야 되잖아요." 란다.

하하. 참. 기특하고 예쁜 마음이다.

직접 날을 정해서 달력에 표시하고 그 날에는 선물이랑 편지랑 드리면 정말 기뻐하시겠다고 얘기해 주었더니,

수줍게 웃는다.

저런 날들을 단순히 선물을 주고 받는 날이라 여기지 않고, 사랑을 주고 받는 날이라 여기는 마음이 참 사랑스럽다.

고운 말들을 주고 받을 수 있었던 오늘에 감사하는 마음.

 

 

 

 

* 원력 일기

: 하루에 한번 일일 자성기도문 읽기

틈틈이 읽어보려고 아침에 사진으로 찍어두었는데 결국 스쳐보기만 할뿐 제대로 읽어 보지 못했다.

맘만 먹으면 짬을 내서 1분 안에도 충분히 읽을 수가 있는건데. 내일부턴 꼭 실천해 보아야지. ^^

 

 

 

 

* 회향 일기

: 나날이 나의 마음이 조금씩 맑고 밝아져서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기를.

하여 그들의 마음에도 평화와 안정, 기쁨이 오기를. _()_

 

 

 

Posted by 보리바라봄
대긍정일기2016. 5. 23. 21:27

 


 

 

 

<지리산 스님들의 못 말리는 행복이야기>

 

2010년부터 시작해 일곱번째 읽은 책.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색색이 곱게도 칠해놨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이제야 좀 알아 듣는 귀가 생긴 것 같다. 보는 눈이 생긴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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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 중에 아이 하나가 빨간 용액이 든 병을 엎지르는 바람에 실험이 멈춰졌다. 실험 전 내가 주의를 주었던 부분은 오차가 있게 되면 실험을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은 아이가 실수하기가 무섭게 '실패다' '실패야'하고 이야기 했다. 실수를 저지른 아이는 평소의 성향과는 다르게 스스로 잘못했다 여겼는지 잔뜩 긴장한듯 보였고, 나는 아이에게 손에 묻은 용액을 씻고 오라 일렀다.

 

 쏟아진 액체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조심성 없이!', '걸레 가져와서 닦기 귀찮다' 였는데 대놓고 티를 내진 않았어도 '불쾌함'의 감정이 들었던 것은 분명했다. 예전 같았으면 "조심해야지요"하면서 다그쳤을 것도 같은데 이번에는 그러지는 않았다.

 

 손을 씻고 온 아이는 그제서야 조금 마음이 괜찮아 졌는지 "친구들아 미안해", "선생님 죄송합니다."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사과를 했다. 그때 순간적으로 느꼈던 것이, 아이 스스로도 충분히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있는데 그간 내가 먼저 말을 내뱉음으로 하여 아이들의 죄책감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더 키워온건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이다. 오늘도 내 생각을 먼저 뱉어버렸다면 분명히 아이의 태도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고, 곧바로 '조심성 없는 아이'로 낙인을 찍어버렸을 텐데 차분히 걸레질을 하고 보니 아이는 너무도 미안해 하고 있는 것이었다. "괜찮아"하고 말은 해주었지만, 다른 아이들이 "실패야"라고 했을 때 '그럴 수도 있다, 다시 하면 된다'는 말을 진심으로 해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리고 실험을 실패한다는 표현을 써서 미리 겁을 준것 자체가 어리석었음을, 저 한마디 말로 인해 아이들에게 부정의 마음을 심어준 것에 죄책감이 든다. 틀리면 다시 하면 되는 건데. 심혈을 기울이는게 중요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쓴 표현이 이토록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말았다.

 

 물론 실험은 계속 진행되었고 몇번의 시행착오가 있기는 했지만 성공적으로 맺을 수가 있었다. 아이는 조금 후에 배가 아프다는 얘기를 했는데 아마도 긴장한 마음에서 비롯된 신경통이 아니었을까 싶다. 말이 끝나기가 무색하게 점심 밥도 맛있게 잘 먹고 큰 탈은 없었기에 다행이었만, 후에라도 좀 더 따뜻하게 위로해주지 못한 내 좁은 마음 때문에 참 미안해진다.  

 

 앞으로는 나 자신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 말 한마디, 행동 하나라도 경솔하게 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순간을 깨우쳤으니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그간 깊게 길들여 놓은 부정적인 습관으로부터 멀어지고 새롭운 긍정의 길을 닦아 나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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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하루중에 가장 기뻤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떠올려 보니, 깔깔 웃는 아이를 바라보면 나도 깔깔 거리며 따라서 웃던 순간이었다. 가장 기쁜 순간은 이런 것이구나. 이토록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데. 이런게 비어있으면서도 그대로 원만한 마음인걸까. 이런 순간을 선물해준 오늘에게 감사하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이치를 받아들여, 나의 상을 내려놓으니 수용하는 폭이 좀 더 커졌다. 그로 인해 한뼘 쯤은 더 행복해진 마음에 감사하다. 기쁨도 괴로움도 수용하는 대긍정의 마음이 나를 항상 기쁜 존재로, 문제 없이 충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놓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이런 큰 믿음으로 조바심을 내지 않으며 차분히 나 자신만을 바꿔 나가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이루어진다. 바른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과 지금의 길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애를 써준 온 우주에 머리 숙여 감사하는 마음... 옴아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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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깨우침을 주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귀한 존재로 알고 함부로 얕보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가식적인 정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자비심으로 대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 어떤 것 앞에서도 떳떳한 삶이기를 바래본다.

또한

 일할 땐 일,  공부할 땐 공부. 꾸준히 게으름 피우지 않으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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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품은 긍정의 마음이 온 존재계에 영향을 미쳐 다함께 행복해지기를.

 

 

 

  

Posted by 보리바라봄
대긍정일기2016. 5. 15. 21:14

 


 

 

몸소 자비행을 실천하고 계시는 거사님들.

2016년 5월 15일. 부처님 오신날. 지리산 홍서원에서.

 

 

 

 

 

 믿음이란 뭘까? 의심하지 않는 마음? 믿음의 대상을 온전히 수용해 버리는 것? 하지만 이 믿음은 명확한 앎 없이도 가능함과 동시에 믿고자 하는 '의지'만으로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해지는 걸까?

 

 어떤 가르침에 대해서 스스로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믿음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틱낫한 스님의 <귀향>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하여 믿음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책을 토대로 믿음을 일반적인 믿음(잘못된 믿음)과 참다운 믿음 으로 구분해서 보다 진실된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귀향>, 틱낫한, p. 70,71

 

 우리는 무엇을 보거나 들으면 그것이 사실이고 좋고 아름다운 것이라 확신하게 됩니다. 갑자기 그 무엇에 대해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대상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면, 또는 며칠이 지나면, 우리는 처음의 믿음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보거나 들은 것이 잘못 보거나 잘못 들은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은 참다운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잘못된 믿음은 곧 잃게 되는 것으로 하나의 '관념'에 해당된다. '~은 ~이다'라는 식의 고정된 생각이 자리 잡히면 하나의 믿음으로써 기능하게 되는데, 이는 또 다른 사실이나 그보다 더 좋고 아름다운 것이 나타나게 되면 즉각적으로 대체되어 버리는 것으로 참된 믿음과는 거리가 멀다. 믿음이라기 보다는 '착각', '망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참다운 믿음은 어떤 것일까?

 

 

<귀향>, 틱낫한, p. 70,71

 

불교에서는 믿음을 에너지의 근원이라 봅니다. 믿음과 믿음의 에너지가 있으면, 우리는 더 활기를 띠게 됩니다.

(중략…)

믿음이란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자라나야 합니다. 만일 믿음이 관념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어떤 관념을 가지고 그것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거기에 집착하면, 나중에 자신의 믿음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은 이해와 지식에 관계됩니다.

 

 

 참다운 믿음이란 고정된 관념이 아니라 끊임 없이 변화하는 것, 현재의 이해가 최상의 상태이지만 더 깊은 이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앎이 바로 진정한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은 깊이 있게 사유하고 스스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라나게 되며 그로인해 믿음은 더욱 견고해진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믿음을 강화시키는 과정에서는 이해 뿐 아니라 지식을 얻게 되는데, 이런 지식에 집착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면 이는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것에 장애가 된다. 때문에 다음 가르침을 배우기에 앞서 자기가 가진 앎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믿음은 에너지의 근원이기에 중요하다. 생명력을 잃은 삶이 아닌 생명력이 넘치는 삶. 한발 한발 나아가며 성장해 나가는 삶을 살아야지만이 비로소 믿음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한여름의 나무가 푸른 잎사귀로 하늘을 가득 메우는 것처럼. 믿음은 점점 더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게 하는데 그것을 알게 되면 그 자체로 자비로운 마음이 살아 숨쉬게 된다. 쨍한 햇살 아래 시원한 그늘이 드러나 오고 가는 많은 생명들을 쉬게 하는 것처럼.

 

 이러한 참된 믿음이 자리했다면, 그 다음은 실천행이 중요하다. 지식과 사유로 끝낼 것이 아니라 몸소 행동으로 나타내어 본바탕 그대로의 자비를 증명해내야 한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