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누웠던 바질이 오늘 모두 다 일어났다.
무슨 말이냐면,
어제 아침 나는 바질에게 물을 주면서 생각했다.
'자꾸 창가쪽으로 기우네.. 해를 좋아하나봐'라고.
그래서 물을 준 다음 화분을 밖으로 내놓았다.
'햇살을 듬뿍 받아라!'하고.
그런데 집에 돌아와보니 바질들이 기운 없이 모두 누워있었다.
두 개의 싹 외에는 모두 허리가 꺾인채였다.
'내가 이렇게 만들었구나.'
해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을까? 아니면 물을 아침에 줘서 더 바싹 말라버린걸까?
다시 살아나라는 마음으로 물을 주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몇분, 혹은 몇시간 안에 바질들이 다시 일어섰다.
두 개의 싹은 내가 잠들기 전까지 끝내 일어서지 못했지만,
오늘 아침에 보니 바질들은 모두 꼳꼳히 일어나 있었다.
접혔던 흔적이 살짝 남아있는 듯도 하다. '꼬부랑'하고.
아 다행이다.

그런데 난 왜 누워있는 바질들의 사진은 찍지 않았을까?
'찍을까'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바질들이 죽은 것이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던지,
또는 알리고 싶지 않았던지,
어쨌든 인정하지 않고 숨기려는 마음에서 찍지 않았다.

죽을 수도 있는 건데, 받아들일 수도 있는 건데.

암튼 정말 다행이다.




드디어 스톡 씨앗의 싹이 터졌다.
스톡 = 비단향꽃무!
킥. 내 방에 있는 건 여섯개나 나왔는데, 모종판에 심은건 딱 하나 나왔다.
아부틸론벨라는 아직인 것 같고 전부 스톡이다.
씨앗이 나오기만을 기다렸지만, 정말 나오니까 신기하다.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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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부여하는 건 주는 쪽이지 받는 쪽이 아니다.
의미를 부여하고 아름다운 세상에 사는 것도 주는 쪽,
의미를 부여하고 괴로움에 시달리는 것도 주는 쪽이다.
'고통을 받는다, 당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기쁜 마음도 준 것에서 부터 비롯된다.
기쁨과 괴로움은 함께 간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