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과 기억의 기록2011. 5. 30. 22:58




11/05/28, 흰 민들레 씨앗




귀농학교 수료글을 쓰는데 왜 이렇게 안써지는지... 별 수 없이 예전에 썼던 글을 토대로 (거의 그대로;) 조금 수정만 했다.
실은 완전 답답한 고집쟁이 같은 글을 썼다가 간밤에 생각이 달라져서 다 지워버렸다.





 산이나 바다 근처, 운치 있는 작은 집, 향기로운 나무들. 마당을 쓸고, 요리를 하고, 바삭바삭 빨래를 하고. 텃밭을 가꾸고, 꽃밭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산책을 나가고. 오후엔 따뜻한 차 한잔……. 어떻게 살아야 겠다는 가치관이 생기기 전에 나는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미래에 나는 저런 삶을 살 것이라고. 그땐 꼭 농사를 짓고 살아야 겠다는 결심이 서기 한참 전이었지만, 내 마음 속 한 구석에선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착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한지 3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물론 그 전에도 그런 마음이야  품었겠지만, 정말로 착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결심은 대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에나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사춘기 때 끝냈으면 좋으련만 그때서야 나는 늦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한때 나는 '왜 좋은 스승님을 만나지 못 하는가'라는 원망도 했었다. 그땐 TV에서 한참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김홍도(박신양)라는 스승님을 가진 신윤복(문근영)이 그렇게도 부러웠다. 지금 가만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상당히 의존적인 성향이었던 것 같다. 내 스스로 찾아낼 생각은 하지 않고 훌륭한 스승님이 없다며 한탄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아를 찾기 위해 내가 처음으로 골라 들었던 책은 스펜서 존슨의 <멘토>였다. 그 책은 나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를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해 가을 짝사랑이 시작되면서 나는 극심한 내면의 변화를 겪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설레기는 처음이었고 나는 그 모든 것을 운명이라 받아들였다. 내 지난 과거들이 신비로운 사슬처럼 여겨지면서 하루하루가 놀라웠다. 그때는 그 마음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 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마음은 그리 오래지 않아 쉽게 돌아섰다. 그런 과정에서 꿈에 관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고 결국에 내린 결론은 나만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공간은 우선 식물들이 많다. 나물 밭도 있고 약초밭도 있다. 단일재배는 하지 않는다. 제초를 하지도 않을 것이고, 비닐도 사용하지 않는다. 농약과 살충제는 당연히 안 된다. 순도 100% 유기농이다. (나 역시 유기농 농부이고.) 그리고 꽃과 나무가 가득하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나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나의 정원이다. 그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우고 직접 경험하면서 스스로 깨우친다. 내 정원에는 책도 많다. 넓은 탁자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장소다.


 나는 맑은 사람이 되고 싶다. 문정희 시인의 '늙은 꽃'처럼 향기를 내고 싶다. 겨우겨우 얻었던 내 자아를 이제는 넓게 확장시키려 한다. 쭉쭉 넓혀서 저 멀리 우주까지도! <무탄트 메시지>에 나오는 호주 원주민들처럼 살고 싶다. 그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라 믿는다. 사막별을 여행하는 이모하처럼 살고 싶기도 하다. 그들은 어린왕자를 이해한다. 요즘 나는 <오래된 미래>에 푹 빠져있다. 과거의 라다크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 나는 또 아마존 사람들처럼 살고 싶고, 타샤 튜더, 피에르 라비, 노자, 예수, 부처님처럼 살고 싶다. 그들을 닮아가는 것이 내가 선택한 귀농의 길이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