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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3.18 대긍정일기 659, 자비를 담은 눈은
대긍정일기2018.03.18 21:49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노란 쿠키와 녹차맛 빵.

보편적인 식감은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 좋다. :)




잡곡이랑 강낭콩을 사다가 밥에 넣어 지어봤다.




요즘​ 한창인 딸기도 맛있게 먹고.





연근, 표고, 양송이버섯 전. 스텐 프라이팬에 익힌 음식은 천천히 달궈져서 그런가 좀 더 정갈하고 보기 좋게 익는다. 시원하고 향긋한 미나리랑 구수하고 따듯한 청국장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 



그리고 서울 법회때 참 좋았던 사진이 보리심의 새싹 홈피에 올라와서 나도 따라서 올려본다. 헤헷.

스승님과 거사님들께서 함께 서 계시는데 그 모습이 참 경건하면서도 멋있었다. 

나도 한쪽에 같이 서서 사진을 찍는 영광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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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름 딴짓을 별로 안한 것 같은데 벌써 이 시간이 되버렸다.

시간은 너무도 잘 흘러가는구나... T_T

어서 마저 할 일을 끝내 놓고 <미라래빠의 십만송 2>을 봐야겠다!


1권 중에 좋았던 부분이 여러 곳 있었지만, 그 중에 오늘 특히 좋았던 대목을 올려본다.

오랜만에 타이핑해서!


p. 359

동이 트고 태양이 솟아오를 때, 미라래빠는 외투를 날개처럼 걸치고 손가락을 '딱!' 튕기며 띠셰 설산 봉우리를 향해 날았다. 그 순간 그는 설산 정상에 이르렀다. 아침 햇살이 산봉우리에 비칠 때였다. 뎀촉불과 시자들도 모두 화현하여 환대하였다. 미라래빠는 본질적으로 만물이 평등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함없는 기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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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열렸던 서울 법회 법문을 다시 듣다가 문득 '보는 것이 자비'라는 생각이 든다.

안, 이, 비, 설, 신, 의 육근을 이용해 보는 모든 것이 공하지만,

그러한 바라봄은 결국 일체 중생의 소리를 듣는 일이기도 하다.


관여나 강제의 참견이 아닌, 수용과 기다림의 의미로 '바라봄'이란 닉네임을 지어 사용했었다.

바라보는 속에 따듯한 애정이 깃들어 있기를 바라며... _()_

어떤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나는 너를 이해해', '나는 너를 본다'는 말로 대신한다.

깊이 봐야지 알고, 알아야지 이해하며, 이해는 수용하는 마음, 곧 자비로운 마음이다.

 

좋아하는 분들께서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시던 눈빛 만으로도 마음 속에 든든한 자양분이 되어

힘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기억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완전히 각인되어 머릿 속에 남아있다.


자비를 담은 눈은 반짝 반짝 빛이 난다.


상대가 하는 말을 자세히 듣기 위해 몸을 가까이 기대는 몸짓이나,

조심스럽게 달래듯 두드리던 손길에서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그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렇게 잘 보고 들으려는 마음은... 몸의 경계를 허물어서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나와 너의 둘이 아닌 하나된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자비로운 마음은 비어있기 때문에 하나이다.

_()_

 


* 참회, 감사, 원력, 회향의 마음

오염된 견해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어리석음을 참회합니다. _()_

거룩하고 위대하신 선지식 스승님과 맺은 인연에 감사합니다. _()_

세세생생 이 인연을 이어 받아, 

무량한 세월동안 거룩하고 위대하신 부처님 진리의 길을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_()_

모든 선근공덕을 일체 중생들이 함께 진리의 길을 걸어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회향하겠습니다. _()_

Posted by 정아(正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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