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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05.15 자라나는 믿음 2
대긍정일기2017. 1. 6. 22:54

 

 

약콩을 넣어 지은 현미밥. 그리고 포항초(포항에서 자라는 재래종 시금치)를 넣어 볶은 시금치김치볶음!

그리고 무청시레기국! 맛있져용... :P

 

 

 

 

 

 

일이 끝나고 요가를 하러 가기 전에 1시간 이상의 여유가 있는 날엔, 카페에 들러 책을 읽는다.

이런 시간을 위해 항상 가방에는 책을 넣고 다닐 것!

틈틈이 남는 시간을 잘 쓰기 위해 작은 수첩도 잊지 말것!

 

 

 

어린 부처님들이 내게 깨달음을 주셨다.

내 탓이 아닌 걸 내 탓이라고 하는 건, 착한게 아니라 어리석은 것일 뿐이라는 가르침을 통해서... '-'

각자 자기가 본것을 믿으며 사실과 관계 없는 착각으로 인해 잘못이 아닌데도 잘못이라 여긴다.

너무도 쉽게 어리석은 착각으로 쑥 빠져버리는 모습을 보고 좀 놀랐다.

나 또한 어리석었던 어린시절부터, 주욱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런 착각들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아아...

 

 

'나'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감정적인 요소는 '질투'다.

그리고 질투의 이면에는 '사랑받지 못하는 자'가 숨어있다.

이 '사랑받지 못하는 자'는 때때로 '분노'의 감정 뒤에 숨어 있기도 하는데,

작년 가을 경부터 때때로 튀어나와 나를 좌절시키는 감정은 '질투'였다.

이런 감정을 가만히 알아차리며 있는 그대로 지켜볼 수만 있다면 참 좋을텐데.

나름 그러려고 애는 써봤지만,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려 도무지 마음이 다잡아지질 않았다.

그러던 중 어제는 요가를 하다가 갑작스레 눈물이 나려고 하더니, 중간에 뛰쳐 나가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었다.

내가 알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적어도 감정적인 이유로 이렇게까지 자제력이 흔들리지는 않을거라 여겼는데.

다행히도 그런 마음을 실행에 옮긴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감정에 눌려 또다시 뒷걸음질을 치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런 마음을 털어놓는 것 자체가 보통의 인간관계에서는 힘들 뿐더러,

털어놓는다고 해도 별다른 조언을 구하기가 어렵다.

또 털어놓았을 때, 왠지 비난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모든게 비어있다는데 바보같이, 개아에 집착하지 말고 전체의 자리에 머물러야지,

그대로 알아차리고 거부하지 말고 수용해야지, 그 정도 노력으로 벌써 흔들림이 없을 줄 알았나?

믿음이 부족해서 그래!'

이런 비판들이 끊임 없이 떠오르면서 의지할 용기를 내는 것도 참 어려웠다. 

하지만 알면서도 마음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였기에,

이럴 때마다 힘이 들고 좌절감이 생겼다.

이 경계를 버텨내고 넘어서지 못하면,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리라는 예감...

 

그래서 이번에는 스님께 이런 마음을 털어 놓았고, 혼나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해 하며

(혼나더라도 감당할만한 배짱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이번의 상태로는 상처만 받을 것 같았다... ㅜㅜ)

어떻게 법을 전해 주실까 기다렸다.

 

 

말씀을 드릴때도 눈물이 났고, 주신 말씀에 다시 답장을 드릴 때도 눈물이 났다.

이렇게 작고 부족한데도... 그렇게도 귀한 큰 마음을 낼 수 있다는게, 참 감사했다.

  

아 진정으로 자비로우신 스님 ... _()_

내 에고가 얘기할 땐 힘이 나질 않았는데,

스님께서 말씀해주시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지고 밝아졌다.

  

그래서인지,

오늘 요가는 눈에 띄게 평소보다 유연하고, 가볍고, 힘들지 않았다.

힉. :)

 

어쩌면 이렇게 반복되는 감정 상태에 또 빠져들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스님 말씀처럼 슬픔과 질투가 얼마나 오래 가겠나?

그냥 가만히 지켜보고 내버려 두어야지.

그리고 진리의 자비가 꽃피워질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지...

 

나무 불법승 _()_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삼보와, 은혜로우신 선지식 스승님께 귀의합니다. _()_

무지무명으로 지었던 지난 과거의 모든 잘못들을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_()_

귀한 진리의 인연을 맺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_()_

세세생생 대자비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겠습니다. _()_

모든 선근공덕을 일체 중생께 회향합니다. 일체 부처님께 회향합니다. _()_

 

 

Posted by 보리바라봄
대긍정일기2016. 5. 15. 21:14

 


 

 

몸소 자비행을 실천하고 계시는 거사님들.

2016년 5월 15일. 부처님 오신날. 지리산 홍서원에서.

 

 

 

 

 

 믿음이란 뭘까? 의심하지 않는 마음? 믿음의 대상을 온전히 수용해 버리는 것? 하지만 이 믿음은 명확한 앎 없이도 가능함과 동시에 믿고자 하는 '의지'만으로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해지는 걸까?

 

 어떤 가르침에 대해서 스스로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믿음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틱낫한 스님의 <귀향>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하여 믿음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책을 토대로 믿음을 일반적인 믿음(잘못된 믿음)과 참다운 믿음 으로 구분해서 보다 진실된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귀향>, 틱낫한, p. 70,71

 

 우리는 무엇을 보거나 들으면 그것이 사실이고 좋고 아름다운 것이라 확신하게 됩니다. 갑자기 그 무엇에 대해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대상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면, 또는 며칠이 지나면, 우리는 처음의 믿음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보거나 들은 것이 잘못 보거나 잘못 들은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은 참다운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잘못된 믿음은 곧 잃게 되는 것으로 하나의 '관념'에 해당된다. '~은 ~이다'라는 식의 고정된 생각이 자리 잡히면 하나의 믿음으로써 기능하게 되는데, 이는 또 다른 사실이나 그보다 더 좋고 아름다운 것이 나타나게 되면 즉각적으로 대체되어 버리는 것으로 참된 믿음과는 거리가 멀다. 믿음이라기 보다는 '착각', '망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참다운 믿음은 어떤 것일까?

 

 

<귀향>, 틱낫한, p. 70,71

 

불교에서는 믿음을 에너지의 근원이라 봅니다. 믿음과 믿음의 에너지가 있으면, 우리는 더 활기를 띠게 됩니다.

(중략…)

믿음이란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자라나야 합니다. 만일 믿음이 관념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어떤 관념을 가지고 그것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거기에 집착하면, 나중에 자신의 믿음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은 이해와 지식에 관계됩니다.

 

 

 참다운 믿음이란 고정된 관념이 아니라 끊임 없이 변화하는 것, 현재의 이해가 최상의 상태이지만 더 깊은 이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앎이 바로 진정한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은 깊이 있게 사유하고 스스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라나게 되며 그로인해 믿음은 더욱 견고해진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믿음을 강화시키는 과정에서는 이해 뿐 아니라 지식을 얻게 되는데, 이런 지식에 집착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면 이는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것에 장애가 된다. 때문에 다음 가르침을 배우기에 앞서 자기가 가진 앎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믿음은 에너지의 근원이기에 중요하다. 생명력을 잃은 삶이 아닌 생명력이 넘치는 삶. 한발 한발 나아가며 성장해 나가는 삶을 살아야지만이 비로소 믿음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한여름의 나무가 푸른 잎사귀로 하늘을 가득 메우는 것처럼. 믿음은 점점 더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게 하는데 그것을 알게 되면 그 자체로 자비로운 마음이 살아 숨쉬게 된다. 쨍한 햇살 아래 시원한 그늘이 드러나 오고 가는 많은 생명들을 쉬게 하는 것처럼.

 

 이러한 참된 믿음이 자리했다면, 그 다음은 실천행이 중요하다. 지식과 사유로 끝낼 것이 아니라 몸소 행동으로 나타내어 본바탕 그대로의 자비를 증명해내야 한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