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9.24 대긍정일기 125, 마음의 단상들 2
  2. 2016.05.29 훈습 일기 7, 조금 이른 시간에 쓰는 일기 4
대긍정일기2016. 9. 24. 20:12

 

 

 

 

내 마음 속을 좀 더 세밀히 들여다 보기 위해 책을 읽는다.

 

 

 

 

 

* 피로

피곤함 싫다. 사람들을 만나면 힘들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피곤'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얼굴좀 보자며 만난 친구는 막상 얼굴을 보았을때

반가워 하거나, 만남에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거나, 편하게 보인다거나,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한다거나...

싶은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시시때때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잡다한 주변 일들에 대해서 말하거나, TV프로그램이나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 친구를 보면서 '이럴 거면 왜 보자고 하는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만남 속에서는 어떤 의무감 같은게 느껴진다. 의무적으로 보지 않으면 친구 관계가 깨어질까 두려운 마음에 보게 되는 것. 그게 아니라면 정말 내가 보고싶기는 했던걸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뭣보다 힘든 것은 피로에 휩싸인 모습을 보는 그 자체이다.

예전에 알았던 또 다른 친구는 주말마다 피곤해하며 어디로 나가는 것도 싫어하고 오직 잠을 자거나 TV를 보는 것, 그리고 게임에만 몰두했다. 정말이지 그 피로감이 싫었다. 뭘 위해 그토록 피곤하게 사는 걸까?

이렇게 느끼는 이상 내 피로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내가 '피곤하다' 느끼는 때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야할때 (마음이 수용하지 못할수록 더 피곤해진다), 일을 마치고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차 한잔을 하는 것이 좋은 듯 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을 때, 몸을 심하게 움직이고 난 후(눈싸움 같은 격한 놀이나 역동적인? 율동을 했을때  -아이들과- ), 뭔가를 바꾸려 노력했지만 전혀 바뀌지 않을 때 등등... 분명 더 많은 순간들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을테지만 지금은 이정도만 떠오른다.

'피로'를 조심해야지. 모든 사람이 피곤하니까 나도 피곤한게 당연하게 되는 것을 주의해야한다. 

어린 아이들이나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 또 꽃, 나무, 바람, 하늘은 피곤하지 않다. 

 

 

 

* 쓰레기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쓰레기를 보는 일이다.

버려진 쓰레기는 말할 것도 없고, 매일매일 내가 만들어내는 쓰레기들도 마찬가지이다.

'버려진 쓰레기들을 모-두 다 주워 담을 수는 없잖아', '적어도 나는 길바닥에 버리진 않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보기도 하지만, 예전에 학교에 다니실때 교정의 쓰레기를 매일 주워 버리셨다는 스님의 이야기를 읽고 난 후론 자꾸 그것이 떠올라서, 그러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아주 간혹, 때때로 길가의 쓰레기를 주워다 버리는 일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느끼는 이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 살면서 음식을 하나 해먹더라도 쓰레기가 생긴다. 버섯이 담겨 있던 플라스틱 상자, 고추가 들어있는 스티커가 붙은 비닐봉지, 두부 팩 등등등... 아무리 분리수거를 한다고 해도 (정확한 분리수거 또한 어렵다) 이 쓰레기들이 정말 잘 버려지고 있는 건지 정확히 확인을 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내가 먹을 것들을 농사를 지어 먹는다면 이럴 일은 없을텐데.

사람이 살면서 쓰레기를 전혀 만들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최소화 할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게 내가 해야할 일처럼 여겨진다.

 

 

 

* 사회악

TV나 신문을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이슈나 세상 흘러가는 일에 좀 둔감한 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세상이 갈수록 흉흉해지고, 차갑고 더러우며, '이게 아닌데' 싶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몇일 전에 이런 말을 들었다.

" ... 그런 것들이 죽어야 되는데 그런 것들은 죽지도 않고. 사회악이야."

그 말을 들었을 때 순간 놀랬던 것은 그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말을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 사람이 이전과는 달리 보이기도 했다. '저렇게 무서운 사람이었나' 하고.

세상에 정말 '죽어야 할'사람이 있을까? 죽어야 하는 건, 어떤 누군가는 죽어도 괜찮다고 여기는 마음. 

아무리 돌팔매질을 당할 만한 일을 저질렀다고 한들, 그 사람 또한 고통 속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정당화 된다고 여긴다거나, 그래도 괜찮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죄를 묻고, 판단하고, 결론짓는 것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몇일이 흐른 오늘, 문득 그런 말을 했던 그 사람의 내면이 들여다 보였다.

그가 표출했던 적개심 속에는, '나도 그런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와, '그런 죽임은 옳지 않아'하고 느끼는 선한 마음이 들어 있었던 것.

어쩌면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보다 깊은 연민의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 같다. 

 

 

 

* 무지무명으로 지었던 지난 과거의 모든 잘못들과,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단지 관념으로써만 분별하는 어리석음들을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_()_

 

*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지혜로운 선배들, 스승들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_()_ 

 

* 언어로 표현되는 이면의 것에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_()_

 

* 모든 선근공덕을 일체 중생들께 회향합니다. _()_

 

 

Posted by 보리바라봄
대긍정일기2016. 5. 29. 15:56

 

 

주말이라 특별한 일도 없고,

이미 충분히 느낀 바가 많은 것 같아서 조금 이른 시간에 일기를 쓴다.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 ost,  케빈 오 - Baby Blue

 

 

 

 

* 참회

 

어리석음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참회 합니다.

나와 남을 구분하고, 열등감 아니면 우월감 밖에 모르는 어리석음을 참회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함을 모르고, 또 모든 생명이 똑같이 소중한 줄 모르고,

사람으로 태어나 귀한 생명을 가진 기회를 모르고, 허투루 낭비한 어리석음을 참회합니다.

 

집을 오고 가며 널려있는 쓰레기를 보고

'어떤 나쁜 사람이 버리는 거야', '저걸 내가 왜 주워야 해', '저 쓰레기들을 다 줍다간 시간이 다 가버리고 말걸', '나처럼 안버리면 얼마나 좋아?'하고 온갖 잡생각은 다 하면서, 직접 주워 쓰레기통에 버릴 자유는 없었음을 참회합니다.

 

 

 

 

* 감사

 

쓰레기를 주워 버릴 자유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많이(?) 주웠다. 오고 가는 길에 한 두개쯤 주워 버린 적이 있고, 다같이 의무적으로 한걸 빼면 처음이다. 오 맙소사. 진짜로 처음이구나.

 

쓰레기를 주워야겠다는 마음이 든 경위는 이렇다.

 

<참회, 감사, 원력, 회향>의 훈습일기를 쓰는데

다른 부분 보다도 '회향'에서 딱 걸리는 거다. '회향은 어떻게 하는 걸까'. '뭘 해야하는 걸까' 싶기도 하거니와, 회향을 한다는 건 내가 뭔가 잘한 부분, 선한 부분을 실천한 것이 있어야지 할 수가 있는건데, 그게 떠오르질 않으니 할 거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착한 일을 해볼까 하는 마음에 20L 짜리 쓰레기 봉지와 집게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평소에 눈여겨 본 것은 큼직 큼직한 쓰레기들이었다. 그런데 이 쓰레기들이 한 두개가 아니였기 때문에 맨손으로는 다 주워버릴 엄두는 안나고 해서 '내가 버린 것도 아닌데 뭐'하고는 그냥 지나치곤 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몇개일 뿐이니 비닐봉지 정도면 충분히 다 주워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가면서도 '몇개 안될 거 같은데 그냥 10L 짜리로 할까?' 하다가 혹시나 싶어 20L 짜리를 챙겼다.

 

그 런 데

 

문제는 그런 쓰레기들이 아니였다. 길 가장자리에 쌓여있던 수많은 담배꽁초들. 그동안은 눈에 걸리는 쓰레기만 보느라 그렇게 작은 쓰레기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쓰레기를 주우려고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니 이렇게나 많을수가! 대충 보고 멀리서 보니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주워도 주워도 계속해서 꽁초들이 보이고. 또 하나 줍기가 난감했던 쓰레기들은 묵은 쓰레기들이었다. 얼마나 오래된건지 색이 바래고, 곰팡이가 슬고, 흙과 엉겨붙어 눅눅해진 쓰레기들. 이 쓰레기들은 진짜 줍기도 싫은 기분이 들었다. 제일 싫었던 것은 페트병에 약간의 물(?)과 함께 담겨있는 담배꽁초들.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그냥 버려두었으면 주울 수나 있는 것을, 그렇게 섞어 놓으니 물 따로, 꽁초 따로, 재활용품 따로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쓰레기들은 어디서 왔을까? 쓰레기를 버리고자 하는 사람들 마음 속에서 왔겠지.

진짜 쓰레기는 이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다.

쓰레기는 떨어져 있으니 주울수 있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 숨어 있는,

드러나지 않는 진짜 쓰레기는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주울 수도 없다.

진짜 버려야 할 쓰레기는 마음 속에 있는 것.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 마음 속의 쓰레기는 무엇일까?

큼직큼직하고 이제 막 만들어진 쓰레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반면에 담배꽁초처럼 작은 쓰레기들은 무엇이 있을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쓰레기들.

오래된 쓰레기는 무엇일까? 만지기도 싫어 외면하고 묻어두기만 했던 묵은 습관의 쓰레기들.

 

 

이런 생각에 미치다 보니 끝이 없는 쓰레기들을 보며 '누가 누굴 욕하겠나' 싶어졌다. 내 쓰레기도 버리지 못해 이렇게 끌어 안고 사는데. 요 근방을 줍는 것 뿐인데도 20L 쓰레기봉투는 다 들어 찼고, 눈에 보이는 모든 쓰레기를 줍다가는 짜증이 날 것만 같아서 오늘은 이정도만 하는 마음으로 그만 두었다. 착한 마음 내려다가 되려 성질을 부린다면 에고만 강화시킬 뿐이겠지 싶었다. 아주 깨끗하게는 못했지만 그래도 쓰레기봉투를 채워 묶어두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쓰레기를 주워 버릴 자유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 원력

드라마는 눈으로 보는 것 뿐이라 간접적인 경험에 불과하지만, 모든 상황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이라 여긴다. 집에 있으면서도 TV는 아예 틀지를 않을 정도로 흥미가 없지만, 최근에 알게된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에 결국 빠져들고 말았다. 드라마 속 세상은 아름답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훨씬 간절함이 묻어나는 그런 세상.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내가 가졌던 미련들을 떨쳐내기를 바래본다. 어떤 아름다운 것들도, 진실된 사랑들도... 그 순간, 가까이에 있을 때는 행복인 듯 보이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하여 조금만 멀어지고 나면 곧 슬픔이 되버리고 만다. 이왕 빠진 드라마 재미나게 볼테지만, 기왕이면 세상 일에 미련을 떨쳐 버리고, 보다 자비심을 키울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드라마 하나를 보더라도 자비심을 키우는 생각을 하겠습니다. 마음 속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힘은 자비심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연금술은 오직 사랑 그 뿐임을. 늘 되새기며 잊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_()_ 

 

 

 

 

* 회향

겨우 쓰레기봉투 하나 채운 선근 공덕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믿음으로 회향합니다. 이 회향으로 온 존재의 마음 속에서 눈꼽 만큼의 쓰레기라도 버려 보다 자유로울 수 있기를!

 

 

 

 

 

 

 

/

초파일에 홍서원에서 받아 온 <열려있는 참된 깨달음> 두 번째 이야기를, 오늘까지 해서 두 번 읽었다.

겨우 일주일 사이에 다시 읽는 것인데도 전과는 다른 부분에 밑줄을 긋게 된다.

 

마음에 힘이 되는 글귀를 옮겨본다.

 

 

p. 44

 

경망스럽게 행동했던 누군가가

후에 조심스럽고 주의 깊어진다면,

구름을 벗어난 밝은 달처럼,

아름다운 것이다.

 

 

경망스럽게 날뛰는 나의 마음이,

언젠가 완전히 조복되어 아름다워 지기를.

 

옴 아 훔.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