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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23 당근 6
느낌과 기억의 기록2015. 1. 23. 21:14

 

 

경계하며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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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로 1주일 정도를 아침 저녁에 밥 대신 먹었더니 확실히 위가 줄어들었다.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이 조금 줄었고, 그만큼 마음도 편해진 듯 하다.

의식적인 노력이 빛을 발하기는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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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접어들면서 아이들과의 관계가 잠잠했던 것 같다. 내 자신과도 그랬고.

이번주는 간만에 아가들의 천진함에 기분이 좋았다.

쏙 뽑힌 애기 당근을 보고 "우와아~! 고구마다!!!!!"하질 않나, (틀리든 말든 열렬히 반응하는 모습ㅋㅋㅋㅋ)

"이 채소는 한 글자에요. 자 따라해보세요, " 하고는 다음 순간 채소 이름을 말하려는데

"한글자!!"하고 다같이 합창하는 꼬맹이들.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더니 코를 잔뜩 파묻고는 얼굴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냄새를 맡는 모습.

눈을 찡긋 감고 냄새에 집중하는 모습.

아이들은 언제나 이 순간에 온 마음을 다한다.

 

근데 내가 진짜 깜짝 놀랐던 건 당근의 맛이었다.

작년 가을에 심어 베란다에서 키우던 당근을 가져다가 수업시간에 쓰고는 잘라서 먹어봤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 손에 쥐어주다가 나도 한 입 먹어봤더니 …

어찌나 아삭하고 달콤하던지!

이렇게 맛있는 당근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다.

시중에 파는 당근과는 비교도 안되는 맛.

비료와 약으로 키워진 당근은 크기는 크지만 쓴맛과 맹맛이 나고 뿌리를 잘랐을 때 단면의 무늬가 고르지 않다. 

이런 당근은 먹을 때는 맛있지가 않아서 아이들에게 먹어보라고 권하면서도 찝찝한 감이 있었다.

채소는 맛이 없다는 괜한 선입관이 심어지는 것 같기도 했고.

하지만 요 당근은 안 먹겠다는 아이 없이 다같이 맛있게 먹었다. 오히려 더 달라고 아우성이었지.

 

아이들 손으로 직접 뽑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관심과 집중력이 배가 되고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면 자신감이 샘솟고 내가 믿는 가치에 대해서 확인을 받는듯 한 느낌이 든다.

천천히 자라는 당근과 천천히 자라는 아이들이 달콤하게 웃는다.  

맛있게 오물오물 먹어주는 입을 보니 행복해졌다.

 

봄이 오려나보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