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2014. 12. 21. 22:50

 

 

 

 

 

 

p.19

 '만물 속에 편재해 있는 그것'은 자연의 소리말고 우리와 대화할 다른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 눈 내리는 소리로, 빗소리로, 지금도 창밖에 스쳐지나가는 저 바람소리로, 그리고 개구리 울음소리로 그것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때로는 이 책장 위에 떨어져 죽으면서 내는 날벌레들의 소리로. 그리고 때로는 소리 없는 소리로. 침묵으로.

 

 

p.73

 나비는 갑자기 따뜻해진 기운을 받아 얼른 고치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비는 나오자마자 그의 손바닥 위에서 죽고 말았다. 나비가 고치집을 빠져나오는 그 짧은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 카잔차키스의 성급함이 나비를 죽게 만든 것이다.

 시간은 필요하다. 때로 그것이 어둠 같고 길 없는 길 같아도 이 삶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급함은 나비를 죽게 만든다. 나비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비의 삶을 사는 것이 애벌레의 길인 것이다.

 

 

 

 

 

*

자려다가.. 갑자기 눈이 떠져서 뭐라도 끄적이고 싶다는 마음에 쓴다.

 

눈 내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엄청 큰 함박눈의 소리였는데, '눈에서도 소리가 나는구나' 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소리. 사락사락. 사그락. 이정도로 표현이 되려나. 류시화는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최초의 명상 경험을 고백한다. 아무 의도 없이 마주했던 기도의 순간. 명상과 기도는 다른 이름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금 여기에 살면 그만인 것을, 앞으로의 계획 때문에 혼란스러워질 때가 많다. 계획이란 개념은 대체 언제부터 생겨난건지. 고등학교때 까지만 해도 별 계획 없이 살았던 것 같은데. 스무살 이후부터 갑자기 세상에 내던져진 기분이다. 뭔가 가치 있는 것을 알아내겠다고 나름 고군분투 했던 시간들... 그 속에서 인생의 방향과 답을 구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변하지 않을거라 여겼던 확신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흔들리고, 변하고, 색이 바랬다. 어느것 하나 계획 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는대도 나는 여전히 미래를 계획하려 든다. 이런 이상한 강박증에 끄달리며 남들의 질문에 '계획 없음'을 부끄러워 한다.

 

뚜렷한 목표를 두고 그를 향해 한발자욱씩 차근차근 다가가는 태도가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나는, 너무 쉽게 변한다. 어둠 속에서 스위치를 찾듯 벽을 더듬어 보지만, '이건가' 싶었던 것이, '이것'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가볍자고 쓴건데 머리만 더 무거워진다. 조금만 더 여기에 집중하고 싶다.

아 나는. 서로 다른 것들끼리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고 싶다. 미워하지 않는 법을.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