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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5 이제야 보이네 4
책 읽기2009. 7. 15. 20:28


*

나의 꿈은 어차피 꿈도 아니었다.

어릴 적 나의 꿈은 차마 말할 수 없네
이제는 말라버린 꽃이여
푸르른 하늘 위에 눈송이처럼 날던
흔적도 볼 수 없는 나비여
이 골목 저 골목 노랫소리
빠밤빠바 빠밤빠바
힘겨운 어깨에 떨어지네
.....

어른들이 아이를 볼 수 있는 눈은 뱁새눈의 반이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은 좁쌀 반쪽만하다. 어린 날 나의 꿈은 그렇게 마룻바닥 나무 판때기 이음새에 낀 참외 씨처럼 틀어 박혔다.


*

 "'자유'에 대하여 자유롭게 쓰세요"
 "그러면 '책상'에 관하여 책상같이 쓰라는 건데……. 야, 그거 골때린다. '자유'에 대하여 자유롭게 쓰라는 게 자유를 주는 거냐 뺏는거냐?"

(..)

 고장난 시계는 하루에 딱 두 번 이 세상 어느 시계보다도 정확하게 시간을 가리킨다. 자유를 찾아 떠도는 우리는 어쩌면 느리거나 빠른 시계처럼 언제나 틀린 시간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

 온 동네 아이들이 똑같은지라 귀가 소쿠리만해져서 뉘집 대문 열리는 소리만 나면 누구 나왔나보다 누구 나왔나보다 하면서 다들 기어나오기 바빴다. 그런 우리들을 보고 어른들은 "뻔질거리며 돌아친다."라든지 "눈이 빨개서 놀 궁리만 한다."든지 하는 모욕적인 언사를 개의치 않고 해댔다. 우리는 정순네 마루 밑에 농약 먹고 눈이 새파래져 들어가 있는 메리한테도 가봐야 하고 필성이네 초가지붕에 새끼 깐 참새가 쥐한테 안 잡혀먹었나도 확인해야 하고, 동칠이가 귀신 봤다는 변소도 가봐야 하는데 무심한 어른들은 불 끄고 자라고 악만 썼지 누구 하나 근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말이 좋아 어른 아이지 사실은 별개의 세상 사람이 한 동네에서 서로 부대끼며 사는 꼴이었다.




 김창완 산문집

 어디서 보고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야 보이네'라는 제목에서 '뭐'가 보이는지 궁금했던거 같다. 그물을 손질하며 꿈꾸던 물고기, 놓쳐버린 물고기, 그 꿈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여기 놓여있다. 근데 난 아직 '뭐'가 보이는지 잘 모르겠다.
 글쎄, 김창완씨의 노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쩜 들었어도 그게 '산울림'의 노래인 줄 몰랐을 것도 같고 . . 산울림이 삼형제로 이뤄진 팀인 줄도 몰랐다. 부록이 딸린 책인데 받아올 걸 후회가 된다. 노랠 들어보고 싶은데
 예전에 봤던 어떤 드라마에서 김창완씨가 '미친 왕' 역할을 했던 것이 엄청 인상 깊었다. 눈빛이 정말 미친 사람 같아서.. 무서울 정도로.
 외모만 보면 인상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데 그 속은 또 다르다. 산문집 곳곳에 실린 옛 사진들이 마치 내가 아는 이들의 사진인 것 마냥 정겹다. 오랜만에 가볍게(?) 술술 읽히는 책을 만나니 덩달아 기분마져 좋아진다.

 '이름을 얻기 전의 나무와 이름을 얻기 전의 하늘, 이름을 얻기 전의 어둠과 밝음을 보아야 한다. 달팽이가 부르는 노래는 제목이 없다. 되도록 그런 노래를 불러라.'

 어린이들에게 고하는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이름이 없을 적의 순수한 세상을, 덧씌워진 이미지가 아닌 본질적인 모습을 보라는 뜻인지..
 멀리서 찾아 헤맸던 나의 어른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이 나라 안에서도,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숨쉬며 살고 있다.  

언젠가 나도 이런 산문집을 써 낼수 있을까?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