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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12 불교의 무아론 - 한자경
책 읽기2016.06.12 13:26

 

 

 

 

 

밤하늘 소녀 #19
2015_ pencil on paper & digital

아주 오랜만에 마니(☜ 링크)님 그림. 싸이월드 시절 알게 되었던 그림작가님. :)

정적이면서 식물스런 감수성이 참 좋았던 그림들 -

 

 

 

 

 

 

읽어보라고 주신 책 :)

아함경을 먼저 읽기 시작했었는데 아직도 덜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어서 아함경도 읽어야지 싶다.

큰스님 말씀으론 부처님 가르침은 참 쉽다고 하셨는데, 불교 관련 서적들을 읽다보면

학창시절 이해할수 없었던 지적 정보에 대한 그 어려운 느낌들이 다시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이게 싫다는 건 아니고... 공부에 대한 갈망 같은게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여서 오히려 잘됐다 싶다.

열공해야지. ㅋㅋㅋㅋ

 

 

 

 

p. 9

 왜 우리는 상대와 차이에 머무르지 못하고 절대에로 나아가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운명적으로 형이상학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형이하의 세계 속에 살면서도 죽음을 의식하고 공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본래 보여진 세계에 속한 자가 아니라 세계를 보는 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보여진 세계의 상대성을 말하지만, 그 말이 참이 될 수 있는 것은 말하는 자가 그 말 밖에 있기 때문이다.

 

 

p. 35

 관념은 단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 관념이며,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단지 그런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과 관념이 그에 상응하는 실재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불교의 통찰이다.

 

 

p. 53

 그래도 무상하게 항상 변화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서 연속되는 그런 자아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석가가 인정하는 자아, 즉 연기의 자아이며 업의 자아인 오온이다.

 

 

p. 115

 이런 관점 하에서만 우리는 인과 과, 업과 보의 각 순간을 동일성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찰나 생멸의 연속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이 멸하고 과가 생하는 순간, 그 찰나 자체는 이전 찰나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찰나 이므로 새로운 힘의 작용, 새로운 업의 시작이 또한 가능한 것이다. 한 순간은 그 이전 순간의 업의 결과이지만, 바로 그 순간이 그 다음 순간을 결정하는 원인이 되는데, 그 순간의 현재적 작용력은 단지 과거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새롭게 발휘되는 힘이다. 따라서 매순간은 이전 순간에 의해 규정받는 수동성과 더불어 바로 그 순간에 새롭게 작용하는 능동성이 함께 한다. 바로 그 능동적 작용이 있기에 새로운 조업 작용이 가능하며, 그 새로운 업에 의해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업의 흐름이 새로운 지향점을 향해 방향을 바꿔 나갈 수 있는 것이다.

 

 

p. 124

 이렇게 보면 불교는 선악의 근본, 업의 근본을 행위 자체에 두지 않고 어디까지나 마음에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정한 의도가 없어도 신업이 성립하게 되는 것은 그 행위가 주변을 돌아보는 주의나 배려의 마음 또는 상황에 대한 앎이 없는 부주의 또는 무지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p. 155

 존재하면서 업과 보의 관계로 연결되는 것은 단지 오온일 뿐이며, 그 오온에 대해서는 같다 다르다라고 말하는 것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전생의 오온과 후생의 오온은 전자가 지은 업력에 의해 후자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채, 인과 과, 업과 보로서 연속성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를 설한다. 자아란 오온 자체도 아니고 오온 너머에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 188-189

 즉 삼매를 수행하지 않는 일반 범부에 있어 색 등으로 나타나는 영상도 삼매에서의 영상과 마찬가지로 마음과 다르지 않은 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수행자들에게 삼매 중에 떠오른 영상뿐 아니라 우리 일반 범부들의 일상적인 지각 의식에 떠오르는 현상 세계의 영상까지도 모두 마음이 그린 영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일체가 식일 뿐이라는 '유식(唯識)'이 성립한다. 결국 범부들이 지각하는 대상 세계의 영상도 요가 수행자들이 수행을 통해 보게 된 영상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p. 215

 다시 말해 현상 세계는 식에 의거하여 발생한 것이며, 식을 떠나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상 세계는 식을 떠난 객관 실유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비실유(非實有)의 가(假)이다. 유식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하면서, 현상 세계를 성립시키는 연기를 의타기성으로 해석하고 의타기성을 다시 유식성으로 해명한다. 식의 삼성에서 의타기성은 바로 유식성이다. 유식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아와 세계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이 사실은 우리 자신의 마음이 그린 영상이라는 것, 마음을 떠난 객관 실재가 아니라는 것, 자아와 세계는 실아와 실법이 아니고 마음이 그린 영상이며 아뢰야식의 전변 결과라는 것, 아뢰야식의 견분과 상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Posted by 정아(正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