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5.05 서쪽 마녀가 죽었다 - 나시키 가호 2
  2. 2016.04.30 금수 (錦繡) - 미야모토 테루
책 읽기2016. 5. 5. 11:06

 

 

 

영화 <서쪽 마녀가 죽었다> 중 산딸기 잼 :-)

 

 

 

 

p. 12

 뭐라고 할까, 감수성이 너무 예민해서. 뭔가 상처를 받은 게 분명한데....... 어렸을 때부터 좀 다루기 힘든 아이였잖아요.

 

p. 13

 '다루기 힘든 아이', '살아가기 힘든 타입'이라는 말이 가시처럼 아프게 걸렸다.

 

p. 14

 내 전부를 알고 나면 할머니가 실망하지 않을까?

 

p. 15

 마이는 때때로 지독한 향수병에 걸리곤 했다. 집에 있을 때조차 향수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으니 향수병이라고 하는 건 좀 이상하지만, 마이에게는 역시 향수병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가슴이 막막해지는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p. 18

 마이는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다시 눈을 떴다. 이 조그마한 파란 꽃은 왜 이리 예쁠까? 마치 존재 자체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같았다. 마이는 두 손으로 꽃을 감쌌다.

 

p. 39

 마이는 속으로는 뛸 듯이 기뻤지만 심드렁하게 말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도와주지 뭐."

 

p. 50

 마늘은 알뿌리처럼 땅을 파고 수확한단다. 장미 옆에 심으면 장미에 벌레가 안 생기고 향기가 좋아지지.

 

p. 57

 "먼저 아침 일찍 일어날 것. 밥도 잘 먹고 운동도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것."

 

p. 57-58

 "그럼, 막을 수 있고말고. 악마를 막기 위해서도 마녀가 되기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의지력이야.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힘, 자신이 결정한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 말이다. 그 힘이 강하면 악마도 그렇게 쉽게 들어오지 못할 거야. 그리고 그렇게 간단한 훈련이 마이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잖니, 안그래?"

 

 "장하다. 우리 마이, 아주 훌륭하구나. 그럼 네 스스로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정해 봐라. 그리고 그걸 종이에 적어 벽에 걸어 놓으렴."

 

p. 60

 "할머니, 의지라는 것은 나중에 강해지는 거야? 아니면 타고 나는 거야?"

 마이가 물었다.

 "다행스럽게도 타고난 의지가 약해도 조금씩 강해질 수 있는 거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키워 나간다면 말이지. 태어나면서부터 체력이 약했던 사람이 체력을 키워 튼튼해지는 것처럼 말야. 처음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을 거야. 그러면 점점 의심스러운 마음이 생겨 게으름을 피우고 포기해 버리고 싶어지지. 하지만 꾸준히 계속하는 거야. 죽어도 변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고 포기하려는 찰나, 전과는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는 사건이 생길 테니까. 그리고 다시 꾸준히 노력하고 또다시 힘든 나날을 겪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이러한 과정이 계속 반복되는 거란다."

 

p. 65

 마이는 할머니의 작은 동작까지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무엇을 위해서? 언젠가는 할머니를 돕기 위해서. 마이는 정말로 할머니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p. 69

 차가운 물이 발목 근처에서 물결치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러고는 시트를 펴서 반듯하게 접어 파팡 두드린 다음 다시 펼쳐 라벤다 꽃밭에 활짝 펴서 말렸다.

 "더러워지잖아."

 "아까 물을 뿌려 둬서 깨끗해. 이렇게 하면 시트에 라벤다 향기가 배어서 푹 잘 수가 있단다."

 

p. 79

 늘 사용하여 익숙한 컵인데도 마이는 세세한 부분까지 도저히 그릴 수가 없었다.

 "할 수 있어. 그 비법은 말이지. 아침에 눈을 뜨기 직전의 꿈과 현실의 경계를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거에 있어. 이제부터는 매일 아침 그 순간을 의식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봐. 그리고 내가 보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훈련하는 거야. 처음에는 컵이든 사과든 상관없단다."

 

p. 81

 정원은 매일 변하는 거야. 그리고 일을 하지. 난 그런 매일 이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변화를 미리 안다는 것은 나에게 서프라이즈(surprise)의 즐거움을 빼앗는 거야. 그래서 필요가 없단다."

 

p. 87

 민트 티를 마시면서 마이는 언제나 차는 내 편이라고 느꼈다. 위로해 주고 차분하게 하고 자기를 격려하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p. 97

 "그래. 충분히 살기 위해서 죽는 연습을 해야 하는 거란다."

 

p. 113-114

 "잘 들어. 이건 마녀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레슨 중 하나야. 마녀는 자신의 직관을 소중하게 여겨야 해. 그러나 그 직관에 사로잡히면 안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지독한 편견, 망상이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되는 거란다. 직관은 직관으로 가슴속에 담아 둬라. 언젠가 진실인지 아닌지 알 때가 올 거야. 그리고 그런 경험을 몇 번이고 하면서 진짜 직관의 느낌을 깨달아 가는 거야."

 

p. 114-115

 "마이, 잘 들어 봐.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야. 할머니는 마이가 하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비난하는 게 아니야. 마이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 아닐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와서 따져 봐야 소용없는 사실이 아니라, 지금 마이의 마음이 의혹과 증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거야."

 "난......, 진상이 밝혀졌을 때, 내 마음속의 의혹과 증오에서 해방되는 거라고 생각해."

 마이가 반박했다.

 "그럴까? 난 새로운 원한과 증오가 쌓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할머니는 마이의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런 생각들이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니?"

 

p. 132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다니 마이 같은 신참 마녀에게는 무리야. 게다가 이번 경우의 근본적인 문제는 반 전체의 불안이니까. 반 아이들 하나하나 모두가 다 불안한 거야."

 

p. 133

 "할머니는 언제나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지만, 나는 왠지 할머니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만 같아."

 할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허공을 보며 시치미를 뗐다.

 

p. 145

 마이는 은룡초를 바라보았다. 광물의 요정. 빛이 없는 지하 세계의 아름다움.

 

p. 155-156

 할머니는, 할머니는, 할머니는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그 약속.

 마이는 그 순간 할머니의 넘치는 사랑을 내리쏟아지는 빛처럼 온몸으로 실감했다. 찬란한 빛이 고치를 녹이고 봉인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동시에 할머니가 확실히 죽었다는 사실도.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이는 눈을 감았다. 싸울 듯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크게 외쳤다.

 "할머니가 정말 좋아!"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마이는 분병히 들었다.

 마이가 지금 마은속 깊이 절실하게 듣고 싶은 그 소리가 마이의 가슴과 부엌 가득히 따뜻한 미소처럼 울려 퍼지는 것을.

 "I know."

라고.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6. 4. 30. 18:23

 

 

 

 

 

 

소설 속에 나오는 <모차르트 39번 심포니>

 

 

 

 

p. 19

 아아, 별들이 어쩌면 그렇게 쓸쓸하던지요.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별들이 어쩌면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던지요. 저는 당신과 10년 만에 도호쿠의 산속에서 뜻밖에 재회한 것이 어쩐 일인지 무척 슬픈 사건처럼 느껴져 견디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것이 슬픈 일이었던 걸까요? 저는 얼굴을 들어 별을 바라보면서 슬프다, 슬프다,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한층 슬픔이 더해지더니 10년 전의 그 사건이 스크린에 비치듯이 되살아났습니다.

 

 

 

p. 86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어쩌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주 불가사의한 것을 모차르트의 부드러운 음악이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슬픔과 기쁨의 공존을 사람들에게 전해 줄 수 있었다, 그걸 묘한 음악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선율로 싸서 아주 간단히, 게다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면서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이 모차르트라는 사람의 기적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인의 눈에 꼼짝 못하고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표현으로 대답했습니다. 어쩌면 조금 점에 갑자기 제 머릿속에 떠오른 '죽음'이라는 말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서 저는 그 말에 조종되어 실제로 생각하지도 않은 말을 해 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p. 100

 저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습니다. 어느덧 마음속에서는 불길도, 나무가 튀는 소리도, 주인의 모습도 사라지고 당신과 처음 만났던 대학 시절의 여름날 나무 그늘 아래의 시원함, 당신과 손을 잡고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던 미도스지 국도의 자동차 후미등의 그 어렴풋한 빛, 아버지에게 당신과의 결혼 승낙을 받아 내고 너무 기쁜 나머지 갈 곳도 정하지 않고 한신전철을 탄 날 차창으로 보였던 고베 앞바다의 개개풀린 반짝임등이 <39번> 심포니와 한 덩어리로 어울려 어떤 아련한, 말이 되지 못한 생각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주인이 말한 우주의 불가사의한 구조, 생명의 구조라는 말이 간직하고 있는 어떤 것을 저는 아주 한순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과 한순간의 일이었습니다.

 

 

p. 116

 아가씨한테는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게 주인의 의견이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가씨가 여성으로서 아마 크고 깊은 슬픔을 겪은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으로서, 게다가 그 젊은 나이에 모차르트의 음악이 가진 비밀을 한순간에 저보다 선명하게 읽어 낼 리가 없거든요.

 

 

p. 148

 저는 조금 전에 자신이 행한 악과 선의 청산을 격렬한 고통과 함께 강요받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고 썼습니다. 그건 잘못된 말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쓰면서 기억을 깊이 파헤쳐 보니 자신이 행한, 아니 행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속에 품은 악과 선의 청산을 강요받고 정신이 이상해질 만큼의 고뇌와 적요감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회환에 심한 가책을 받았던 것은 죽어가는 자신을 보고 있는 또 하나의 저였습니다. 저는 아마 그때 아주 짧은 순간 죽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저는 뭐였을까요? 저의 육체에서 벗어난, 저의 목숨 자체였던 건 아닐까요?

 

 

p. 149

 그런데 당신의 편지에 쓰여 있던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어쩌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구절을 본 순간 저는 이상한 흥분과 오랜 생각에 빠졌습니다. 죽음에 의해 그 생명의 모든 것이 사라져 없어진다는 사고는 어쩌면 인간의 오만한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 큰 착각이 아닐까?

 

 

p.155

 당신의 편지를 읽으면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아, 당신이 돗코누마 옆에 있던 그 산막 2층에서 저희가 지나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니요…… . 그뿐 아니라 다시 돗코누마를 따라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는 길로 돌아오는 저희를 몇 시간이나 계속 창가에서 서서 기다렸다니요…… . 저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p. 269

 제가 35년간 잃은 것 중에서 특별히 소중한 것이라면 어머니와 당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p. 276

 이 편지를 쓰면서 저는 당신에게서 받은 모든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것들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어느 것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저만의 마음의 무늬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딱 하나 글로 전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라는 것을 본 당신은 그것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무서워졌다고 썼지요. 하지만 사실은 짧다고 하면 짧다고 할 수 있고 또 길다고 하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강력한 양식이 되는 것을 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이 편지를 대체 어떻게 맺어야 좋을지 저는 펜을 쥔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는 왜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그런 말을 생각해 낸 것일까요?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어쩌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마치 어딘가에서 떨어져 솟아난 것 같은 뜻밖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말을 편지에 툭 써 넣은 일이 당신에게서 제가 몰랐던 많은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결코 말하지 않았을 말. '모차르트'의 주인이 마치 저에게서 들은 것으로만 착각했던 말. 우주의 불가사의한 구조, 생명의 불가사의한 구조라는 말이 저에게 깊은 전율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 * *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쓰인 문장들이 감동을 준다. 어쩌면 이미 지나가버린 일에 대한 미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풀리지 않았던 마음 속 응어리를 담담하면서도 극적인 표현으로 풀어낸다.

서로 주고 받은 편지는 당사자들에게 어떤 위로가 되었을까. 그럼에도 변함 없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안타까운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기 위해서 이런 작업들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모쪼록 행복하기를.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 내가 좋아했던 일을 오랜만에 한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누군가에게 공감을 구하는 일. 하지만 같은 책이 같은 문장을 읽는다고 해서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땐 조금 외로웠다. 어쨌거나 내가 해야할 일은 보다 선명하게 내 마음을 읽어내는 것.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