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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10 왕피리, 유기농 마음으로 살다 15
카테고리 없음2010. 9. 10. 13:12

이정아







 음식은 중요하다. 내가 먹는 음식이 피와 세포를 만든다. 이를 통해 생각을 하고 마음까지 움직인다.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려면 그 음식물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것을 취했을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알아야 한다. 이를 깨닫게 되면서부터 채식에 관심이 생겼다. 채식은 사람과 자연을 건강하게 한다. 채식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한농마을 생태캠프! 생태와 숲에 관한 체험을 꼭 한번 하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발견하자 마자 지원서를 받아 참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도착한 합격 메일. 마음이 설렜다.


 그로부터 한 달 여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캠프를 시작하기 하루 전날이다. 캠프지 까지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으므로 하루 전에 대구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가려고 하니 가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미 자연을 사랑하고 있는데 가서 얼마나 배우고 올 수 있을까? 마음 속은 귀찮음과 낯선 환경에 대한 걱정으로 그늘이 졌다.


 대구에서 하룻 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영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간밤에 잠을 설쳤지만 캠프에 대한 설레임과 걱정으로 잠도 오지 않았다. 터미널에 도착한 후 에코 캠프 버스를 찾았다. 일찍 온 탓에 버스 안에는 사람이 몇 없다. 버스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출발 예정 시간이 다가오니 캠프에 참가하기 위한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터미널에서 만나 미리 인사를 나누며 오는 친구들, 머쓱하게 혼자 타는 학생들, 친구와 함께 오는 학생 등 가지각색이다. 내 옆자리에는 여대생 다솜이가 앉았는데, 쾌활한 미소로 내게 먼저 말을 건네주었다.


 



 영주에서 조금만 더 지나면 캠프지가 나올 줄 알았는데 휴게소를 하나 거치고 꼬불꼬불 산길을 한 시간 정도 더 타고서야 간신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더위에 익어가는 버스로 인해 지칠법도 했지만 친절한 버스기사 아저씨 덕분에 짜증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가 3박 4일 동안 묵을 곳은 2층짜리 통나무집이다. 외부에는 톱밥변기 화장실이 있다. 반바지와 조끼, 티셔츠, 다이어리와 볼펜, 모자를 배부받아 2층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나서는 배고픈 배를 움켜쥐고 유기농 점심 식사를 먹으러 향했다. 잔뜩 기대가 된다! 평소에 먹던 채식 반찬은 기껏해야 두부, 된장찌개, 부침개 정도 인데 이곳에서는 어떤 음식들이 나올지 말이다. 기쁜 마음으로 각종 채소와 과일, 나물 등을 한 접시 가득 담아 하나도 남김 없이 깨끗하게 먹었다.

 즐거운 점심 식사를 마치고 이동한 곳은 오리엔테이션 장소다. 그곳에서 교관님들 소개와 노래 몇 곡을 배우고, 4개조 배정이 이루어졌다. 조별로 앞으로 나가 캠프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인사를 나눴다.





 첫 프로그램은 숯가마 체험이다. 숯이 구워지는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숯 향기가 기분 좋게 진동한다. 숯은 강력한 해독작용을 하기 때문에 물과 함께 먹어도 좋고 피부에도 좋다고 한다. 또한 물에 넣어두면 정수 역할을 하고 방에 두면 세균을 없애는 데도 효과적이다. 

  숯가마 견학을 마친 다음 공동발효 퇴비장에 방문했다. 분뇨와 각종 음식 찌꺼기, 풀 등으로 퇴비로 만드는 곳인데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거름 비슷한 냄새가 코를 찌르긴 했지만 그런데로 견딜만 했다. 발효중이라 냄새가 덜한가 보다. 땅으로부터 자라나 사람과 동물의 먹이가 되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원형 순환 농법은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지구를 살린다.

 저녁에는 학생들과 교관님 모두가 모여앉아 레크레이션 시간을 가졌다. 건강에 유익한 웃음치료와 음식의 중요성을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기상시간은 여섯시다. 평소 나 같으면 한참 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다. 누구 하나 강제로 깨우는 사람 없이, 먼저 일어난 사람끼리 모여 앉아 노래로 아침을 연다. 모두가 모여서 화음을 이루고 나면 그날 일정이 시작된다. 원래 일정은 삼림을 거닐며 약초교실을 체험하는 것 이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소규모 약초교실을 체험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또 그 나름의 멋이 있다. 비를 맞으며 걸어본지가 언제였더라... ... . 교관님 한 분은 비의 자상함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구름은 대지를 어루만지기라도 하듯 자상하게 물을 뿌린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만약 하늘에서 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다면 사람과 나무와 풀 모두는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조별로 형형색색의 비옷을 입고 길가에 피어있는 야생초에 귀를 기울이며 걷는다. 약초 교관님으로 부터 약초의 효능에 대해 듣고 수첩에 기록한다. 천연 약재를 이렇게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무심코 지나쳤던 풀들이 사실은 약이고 음식이었다. 그렇게 풀들은 묵묵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풍성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유기농 토마토를 재배했다. 붉게 물든 토마토와 아직 푸른 빛을 간직한 토마토를 손수 따서 종이 상자에 넣는다. 한개 따서 맛을 보니 그 맛이 예술이다. 멀리 가족에게 토마토와 함께 보내기 위한 편지도 썼다. 사랑과 건강을 듬뿍 담아서!





 점심을 먹고 난 오후, 모두가 발토시와 아쿠아슈즈를 신은 체로 생태습지체험에 나섰다. 습지라니!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곳이다. 흙색의 물에 발을 담그니 온 몸에 차가운 기운이 퍼진다. 다닥다닥 붙어 자란 미나리를 방석 삼아 밟으며 습지에 관한 수업을 듣는다. 습지는 다양한 동․식물이 공존하는 최적의 장소라고 한다. 습지의 역할이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습지의 식물들은 뿌리를 서로 끈끈하게 얽어매어 흙이 쓸려 내려가는 것을 막는다. 또한 물을 정화시키고, 대기의 습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설명을 듣고 나니 습지가 왜 중요하고 보존해야만 하는지 이해가 된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졌다. 습지에는 부들이 많다. 얼핏 보면 소세지 같기도 한 부들을 꺽어 냄새를 맡아보니 그 향기가 은은하다. 껍질을 한줄기 좍 떼어 잠시 두고 보니 부들이 다시 서로 엉겨 붙어 있었다. 상처 입은 일이 없었던 것 처럼. 자연의 치유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하늘은 우리를 축복하기라도 하듯 말끔히 비구름을 걷어냈다. 대신 하늘을 수놓은 것은 무수히 많은 별들이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별들은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셀 수도 없이 수많은 별이 모여 행성을 이루고 또 그 행성은 별의 수 만큼 많다고 하니, 사람의 머리로는 감히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하다.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신비로움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밤 하늘의 별은 숙소의 불빛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불을 켜니 금새 별빛이 희미해지는 것이다. 도시의 별은 매연 뿐만 아니라 수많은 광고 불빛 때문에도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됐다.

 뿌옇게 보이는 것 중에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밤 하늘의 은하수다. 먼지처럼 모여 반짝이는 것이 하늘과 산을 잇듯 주욱 펼쳐진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장관이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별자리를 찾으며 어둠의 선물에 전율했다. 그리고 우리의 소망을 담은 홍등불은 하늘의 별이 되어 마음 속 깊이 박혔다.


 셋째날은 삼림트래킹과 왕피천 트래킹 코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서 교관님의 안내에 따라 길을 걷는다. 들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 손을 흔들어주시는 동네 할머니 덕분에 마음이 더욱 조화로워진다. 저마다 특별한 식물의 세계와 그들의 생존 방식은 그동안 나의 시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일깨워 준다. 살아있는 작은 생명 하나하나는 개개의 고유한 존배장식을 통해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상생과 공존이 가능한 자연은 내 귓가에 대고 '우리처럼 살아봐'라며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인간 역시 자연이므로.





 적송나무 숲에 들러 땅을 침대삼아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있으니 이곳이 천국인가 싶다. 살랑이는 잎새 사이로 스며드는 빛들은 간밤의 은하수와 닮은 모습이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니 바람에 실려온 향기가 온 몸에 퍼진다. 어느 한 가지의 향기가 아니라 숲 전체가 함께 만들어 낸 호흡이리라. 숲의 향기를 느끼며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가보았다. 맑고 시원한 느낌이 피로를 싹 풀어준다. 그러고 잠시 앉아 있으니 교관님들이 발을 씻겨주신단다. 발을!?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기는 했지만 발을 씻겨주시는 교관님들의 마음을 느끼며 '섬김의 자세'를 배웠다. 서로의 만남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오후에는 캠프의 꽃, 왕피천트래킹을 만끽했다. 이틀간 내린 비 덕분에 넘치는 물을 맞으며 보트 레프팅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내 몸이 물을 따라 흐르니 내가 흐르는지 물이 흐르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멈추고 오직 자연과 나만 존재하는 느낌이다. 중간 중간에 멈추어 숯팩과 황토팩을 서로의 얼굴에 바른다. 보기에는 우스운 모습이지만 까만 얼굴과 노란 얼굴의 피부가 개운한 숨을 쉰다.


 마지막 밤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바로 한농마을 대안학교에 다니는 초등학생 어린이들의 공연이다. 아기자기한 율동과 함께 웃는 얼굴로 공연 하는 아이들을 보고있자니 내 마음까지 순수해지는 기분이다. 어릴적부터 자연과 더불어 그 소중함을 배우며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받은 것이 있으니 바로 유기농 아이스크림이다. 말만 들었지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는데, 그 맛을 보니 새콤 달콤 쌉싸름 한 것이 시중에 판매되는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담백하고 좋다.


 끝으로 캠프를 시작한 첫날부터 지금까지의 체험들을 사진으로 감상하고 서로가 느낀 것들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여느 날 밤과 다르게 밤을 새워가며 게임을 하고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랬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쉬움을 뒤로한 체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또 하나의 선물 유기농 도시락과 과자를 안고서. 캠프에서 받은 선물은 이 뿐만이 아니다. 자연의 소중함과 사람됨의 의미까지도 받아서 돌아왔다. 자연도 감동이었지만 사람은 더 큰 감동이었다. 교관님들은 손수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시며 강요가 아니라 바라봄으로써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셨다. 캠프 내내 좋은 것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는 몸짓이 내 마음과 맞닿아 울림을 만들어 냈다.


 '자연의 언어를 읽으라'는 말이 있다. 예전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잎사귀에 글자가 새겨진 것도 아니고 꽃 한 송이가 문장을 이루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읽으라는 걸까? 그런데 캠프를 마치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것은 서로 다른 생명들이 어떻게 의존하고 상생하며 공존하는지, 어떻게 순환하고 조화를 이루는지를 배우라는 뜻이 아닐까? 사람도 자연이니 말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길가에 풀 한 포기조차도 제 역할을 하고 있듯 모든 사람은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 것이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