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2015. 6. 27. 23:35

 

 

 

백은하. 책과 춤. 2015
A dance & A book

 

 

 

 

마지막에 조금 남겨둔 부분을 드디어 다 읽었다. 2월 중순에 이 책이 너무 좋다고 얘기해 놓고선 유월 말이 되어서야 마무리를 짓는다.

좋아하는 마음이 꾸준하지 못하고 바뀌어버리는 건 실상을 보지 못하고 상상으로 기대를 해버린 탓일까?

(하지만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주면서 꾸준히 좋아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어쨌거나 이 책은 신형철이라는 사람이 타인을 쉽게 미워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사고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그가 대놓고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고르거나 해석하는 관점을 보면 그가 그런 사람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게가다 그는 섬세한 사람이 아닌가.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한동안 내 블로그에 달아두었던 문장. 이 한줄의 문장이 정말이지 좋았다.

정확한 사랑이란 건 나와 타인을 구분짓는 개별적인 특성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인정되어야지 이뤄질 수 있는 것일테다.

그런 특별함 때문에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 같았다. 바로 저 정확한 사랑을 통해서.

 

 

 

 

*

 

p.27

 문학(글쓰기)의 근원적인 욕망 중 하나는 정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쓴다. 문법적으로 틀린 데가 없는 문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문장을 말한다. 그러나 삶의 진실은 수학적 진리와는 달라서 100퍼센트 정확한 문장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문학은 언제나 '근사치'로만 존재하는 것이리라. ('근사하다'라는 칭찬의 취지가 거기에 있다. '근사近似'는 꽤 비슷한 상태를 가리킨다.) 어떤 문장도 삶의 진실을 완전히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어떤 사람도 상대방을 완전히 정확하게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이것은 장승리의 두 번째 시집 『무표정』(문예중앙, 2012)에 수록돼 있는 시 「말」의 한 구절인데, 나는 이 한 문장 속에 담겨 있는 고통을 자주 생각한다.

 

 

p. 31, 35

 그의 이름은 '로렌스 무엇이건(Laurence Anyway)'이다. 이 이름은, 우리가 자기 자신으로 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떤 길(any way)'를 택해서라도 그래야 한다고 말해준다.

(...)

로렌스는 '본래 여자로 태어났으므로 여자가 되기를 원하는 남자'라고, 아델은 '여자를 사랑할 때만 진실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여자'라고 말하면 되는 것일까.

 

 

p. 65

 세상 사람들이 '외도를 하다 자살한 여자'라고 요약할 어떤 이의 진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톨스토이는 2000쪽이 넘는 소설을 썼다. 그것이 『안나 카레니나』다.

 

 

p.200-201

 물론 이 에피소드 역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 같은 파이의 믿음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 물음이 그를 살게 했고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어떤 논리적 역전이 발생하면서 다음과 같은 명제가 도출된다. 믿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면, 살기 위해 믿어야 한다는 것. 이성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고통이 닥쳤을 때, 이성으로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것은 이성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초월적인 것을 믿기로 결정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해야 한다. 이 판단은, 이성을 믿으라는 아버지의 말, 마음속의 일들은 이성이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어머니의 말 중 어느 것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맹목적인 근본주의자들을 화나게 할 만한 소리지만, 어쩌면 이것을 실용주의적 신앙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필요하니까 믿는다는 것. 여기서 신의 존재 여부를 둘러싼 유구한 논쟁은 별로 의미가 없다. 존재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p. 221

 그러므로 나를 인정해줘야 할 사람은, 무엇보다도 내가 인정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인정할 만한 존재로부터 인정받아야 진정한 인정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상호인정을 통해 진정한 자기의식에 도달하는 관계를 상상해볼 수 있겠는데 그런 관계를 '사랑'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p. 234

 이 감정에 가장 적절한 이름이 passion(열정, 수난)이 아니고 무엇일까. 수난을 부르는 열정, 즉 passion은 선도 악도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그것은 그토록 위험하다는 것, 인간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고 그래서 인간을 파멸로 이끌기도 하는 그 열정이 인간의 가장 심오한 본질 중 하나라는 것 등은 이 서사의 마지막에 돌연히 제출되는, 이 시리즈 전체의 보수적인 교훈보다 더 중요한, 은밀하고 강렬한 메시지다.

 

 

 

 

음 - 정리해놓고 보니 같이 사두었던 <느낌의 공동체>도 다시 보고싶어졌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느낌과 기억의 기록2015. 2. 15. 23:20

 

 

 

 

 

 

 

 

노래나 뮤비나, 언제나 신선하고 기발한 장기하:D

정말 비타민 같은 뮤지션이다.

 

'새해 복만으로는 안돼. 니가 잘해야지. 노력을 해야지. 열심히 해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고소해 ㅋㅋㅋㅋㅋㅋ

뭐 이런 고소한 노래가 다 있나 ˘-˘

 

근데 뒤는 반전이다.

 

'새해 복 만으로도 돼. 절대 잘하지마. 노력을 하지마'

'니가 잘 하지마. 열심히 하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속 시원해 ㅠㅠㅠㅠ

뭐 이런 시원한 노래가.

 

해질 무렵에 바다에서 혼자 한복입고 춤추는 컨셉도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기다.

 

 

 

 

 

 

 

남동생 옷을 사러 나갔다가 내것도 사고 그림 구경도 했다. 책도 사고 구경도 했다.

 

남동생을 만나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청소와 빨래를 하고 책을 읽으려는 계획. 즉 온전히 일요일을 나만을 위한 휴식으로 누리려는 생각에 가득차 있는데

카톡이 왔다. 

'누나 오늘 시간 많냐'

이 말에 어찌나 화가 나던지.

이게 얼핏 보면 화낼 일이 아닌데 나 같은 사람은 화가 난다.

 

시간이라는 건 늘 있는거다. 단지 어떤 행위가 갖는 가치에 따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 달라질 뿐이다.

저렇게 두루뭉술한 표현을 하면 나는 다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냐고!!!!

결론은 옷을 사러 갈건데 내가 같이 갈 수 있느냐는 거였다.

나는 '그렇다'고 했고 '앞으론 본론부터 말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동생이 하는 말, '왤케 까칠하다냐'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러면 내가 급 미안해진다.

대체 나는 왜 이럴까.

 

아까까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이 글을 쓰면서 떠오른건데,

내가 원하는 것과 상관 없이 타인의 강제로 인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 때문이다.

 

그렇네?

 

금요일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일을 마치고 샘들이랑 신나게 차를 마시고 수다파티를 열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훈련을 다녀온 남동생 얘길 하려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선인지 소개팅인지를 하라는 연락이었다.

나는 딱 잘라 '싫다'고 했고, 그에 엄마는 감정적으로 반응했다.

무조건 잘 해보라는게 아니고 한번 만나보라는 건데 왜 그러느냐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을 줄줄 늘어 놓는데...

'엄만 어쩜 나에 대해 그렇게도 몰라'하는 생각에 머리고 마음이고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찌 되었건 '싫다'는 내 표현을 하기는 했지만 상대의 반응이 이런 식이면 나는 마음이 영 불편하다.

상처 주고 싶지 않고, 상처 받고 싶지 않다.

이런 기분을 유지한 채로 어제 오늘을 맞이했다.

 

그러니 남동생의 문자에 열이 받을 수 밖에 없었겠지.

비슷한 맥락이다.

엄마 때문에 억지로 만남을 갖는 것이나,

동생 때문에 내 소중한 휴일을 빼앗기는 것이나.

(동생의 요구는 결론부터 미리 말했더라면 충분히 내 휴식과 교환할 수 있는 가치였기에 열받진 않았을거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리 열받아 할 일이 아니다.

엄마 말마따나 부담 없이 만나고 가볍게 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남동생과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사이좋게 구경하고 사고 먹고 놀았다.

 

 

 

최근에 구입한 책이 두 권 있는데 모두 신형철의 책이다.

진짜 - 간만에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찾았다.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진실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정확하게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이 한 문장에 꽂혀 2주 전부터 주문을 해야하나 어쩌나 생각 하다가 결국 서점에서 샀다.

 

근데 내 의지와는 다르게 책이 참 어렵다. 우선 단어들이 낯설다. 모르는 말이 너무 많다.

그래서 술술 읽을 수가 없다. 하나씩 다 찾으며 읽다가는 제 풀에 지칠 것 같아서 일단 모르더라도 스윽 읽어보려 한다.

그리고 하나씩 천천히 반복해서 읽을 것이다.

 

서문만 읽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정확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가 '멋있다'는 사실이다. 멋있다 완전.

 

차가운 이성을 표상하는 듯한 논리와 비평이 이렇게도 따뜻할 수가 있다니.

그의 섬세한 지성에 매료되어 나도 그처럼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표현이라는 말이 다시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오래 전부터 표현하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시작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나를 가두고 남을 보는 것에 익숙하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에게 '편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 말은 때론 '만만하다'는 뜻이 되고, 어떤 때는 타인을 힘들게 하는 '참을성'이 된다.

 

늘 그랬느냐면 그건 아니다.

한때나마 표현력이나 내 생각을 능동적으로 꽃피우던 때가 있었는데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말을 하던 시기다.

 

그 시기가 있고 부터 내 삶은 그 전과 후로 나뉜다고 줄곧 생각해 왔다.

 

하지만 교정으로 인해 고르게 옮겨진 이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하듯,

내 습성도 쉽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시 예전처럼 꼭꼭 숨기고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금이야 말로 변화할 시기임을 절감할 수 있다.

그때의 시발점이 연금술사 였다면, 이번에는 신형철이 아닐까.

 

표현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편함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로인해 나는 아프다.

말을 안하니까 이 사람들이 내 몫까지 자기들이 정해주려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은 못 참겠다.

그렇다고 상처를 주면서까지 표현하는 것은 싫다. 그런 과정에서 신형철을 만났다.

따뜻한 이성과 정확한 논리로 감정에 섬세하게 다가가는 일. 표현하는 일.

 

책 두 권에 배가 부르다.

 

나는 장기하의 노래처럼 절대 잘하지 않을 것이고 노력하지 않을테다.

열심히도 안한다.

다만 하고 싶은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 정확하게.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