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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8.02 하필이면 다정한 낯섦이라, 2

 


- 떠나오던 날의 딮 -

 

 

 

 

 

 길 것만 같았던 구일 간의 휴식이 오늘로 끝이 난다. 내일이면 다시 일상으로의 회귀.

 뭐, 일상이 있으니까 쉼에도 의미가 있는거겠지, 라고 생각은 해보는데 하필이면 그 휴식이 다정했던 바람에 약간의(?) 후유증이 남아버렸다.

 

 

 휴식을 위해 떠났던 장소는 경주, 영화 <경주>의 그 경주다.

 경주는 두어번 가봤기 때문에 아주 낯선 곳은 아님에도, 나 혼자 떠났다는 면에서, 혹은 지금 여기의 사건에 온전히 집중했다는 점에서 낯선 곳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선택하고 알아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홀로 떠나는 여행이기에 좀 더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집중하게 된다. 그런 주의는 이방인이기에 가능한 것이라 때로 더 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성격이 워낙 즉흥적인 편이라 (특히 혼자 하는 것에 있어서는 더더욱) 꼼꼼한 여행 계획은 세우지 못한다. 그렇다고 날로(대충) 다녀오고 싶은 건 아니였고, 자연스레 일어나는 상황에 맞춰 움직이고 싶었다.

 

 

 경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은 순간부터 지금 여기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었다. 차창 밖을 빠르게 스치는 수많은 풍경들, 그리고 머릿속 소음들 - 그런데 그 소음들이 자꾸 마음을 물렁하게 만들었다. 소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픈 마음이었고, 그게 찔끔 찔끔 눈물이 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층 더 가벼운 마음으로 경주 땅을 디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여행 날짜에 태풍이 온다고 해서 살짝은 긴장이 되기도 하여 연기를 해야하나 했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비오면 비맞으면 되고, 그게 안되면 게스트하우스에서만 머물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그런데 다행인지 3일 내내 날씨가 맑았다. 그것도 아주 '쨍' 하도록.

 

 

 첫날은 긴긴 버스 이동시간만으로 일정의 절반은 지나갔고, 숙소에 들러 짐을 맡긴 다음 곧바로 자전거를 빌려 경주 시내권을 돌았다. 자전거를 빌려 나오는데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인사가 "살아서 돌아오세요"였다. "네"하고 대답하면서도, '설마 죽겠냐' 싶었는데 얼마 후에 그 인사의 의미가 충분히 이해가 됐다. 불타는 듯한 더위 아래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나도 온 몸에서 땀이 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새삼스레 알게 됐으니까.

 아는게 없어서 방향만 얼추 정해 도착한 곳이 국립경주박물관이었다. 아 - 여행지로써의 박물관이라니. 천년의 유물들을 보며 '우오~!'싶은 마음이 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일단 너무 더웠다. 4시가 넘어서 얼른 숙소에 입실이 가능해지기만을 기다렸다. 바로 가까이에 있는 첨성대를 스쳐 지나며 '아 여기가 와보긴 했던 곳이구나'했다.

 

 

 4시 땡 입실 후 샤워먼저 하고 나와 1층 라운지로 내려갔다. 찬찬히 경주여행 계획을 짜볼 요량으로. 경주역 앞 관광안내소에서 가져온 지도와 게스트하우스 내에 비치된 책 두어권을 가지고 창가쪽 의자에 자리잡았다. 내 뒷쪽 넓은 테이블엔 사장님과 스텝님(역시 이 호칭은 영 어색하다.. 스텝님이라니.... ㅋㅋㅋ)이 계셨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낯설어하며 낯가림을 하느라 어울려 앉아있진 못했다.

 그런데 들려온 안타까운 소식. 저녁에 예정되었던 야간투어가 신청인원 미달로 취소가 됐다는거다. 엉엉. 이거라도 해야지 여행 첫날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쉬운 맘을 뒤로 하고 어떻게든 나 혼자라도 시간을 보내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짐을 다시 정리하고 내려와 밖으로 나가려는데 이번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다시 야간투어가 가능하게 됐다는 것. 그 소식에 내 얼굴에 웃음이 번졌는지, 나더러 표정이 밝아졌다고 했다.

 히. 이렇게 된거 그럼 어디 멀리 나갈 필요 없이 숙소 부근의 골목들을 산책하고 돌아왔다. 한 손에는 복숭아를 들고서 야금야금 베어먹으며. 그리고 하늘을 향해 복숭아를 들고는 사진을 찍었는데, 문득 난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걸 찍고 있는 걸까 싶었더랬다.

 

 

 숙소로 돌아와 사장님, 산이 스텝과 그리고 같이 야간투어를 할 여자분과 함께 복숭아를 깎아서 나눠먹었다. 평소엔 그다지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여행을 와서 보니까 과일 만큼 가볍게 나누기 편한 것도 없는 듯 싶다. 야간투어가 시작되기 전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지를 추천 받아 다음날 일정을 정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건데 무계획으로 여행을 떠나면 어떻게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홀로 떠나온 여행이지만 나 혼자만의 힘으론 순조로운 여행이 되기가 어렵다.

  

 

 야간 투어 코스는, 안압지 - 첨성대 - 월정교 - 서출지 순으로 이어졌다.

 안압지는 바다를 상징한다는데 어느 곳에서 보아도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넓다고 한다. 이곳은 조선시대 때 폐허가 된 곳에 오리와 기러기가 많아 찾아 '안압지'라 불리다가 후에, 신라시대 때의 지명을 되찾아 '동궁과 월지'란 이름으로 바뀌었단다. (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 근데 난 안압지엔 들어가지 않고 부근의 연꽃 구경만 했다. 예전에 한 번 다녀온 기억이 있어서 들어가지 않은거였는데,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래도 들어가는게 좋았겠다 싶다. :-)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다는 첨성대, 그리고 첨성대를 이루고 있는 돌들의 의미(요건 기억이 잘...), 월정교에 얽힌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 서출지의 일타 쌍피... 역시 한 번 들은 이야기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참 좋았다는 것. 아무리 오랜 유물이라도 아는 것이 없으면 온전히 느끼는 것이 어렵다는 걸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요번 기회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앎이란 것도 딱딱한 지식이 아니라 한 번 체화된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로 들으면 더 좋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친구끼리 여행을 온 대학생 두 명, 직장을 다닌다는 여자 친구들 두 명, 출장 나온 김에 왔다는 한 분, 그리고 산이스텝과 나까지 모두 일곱명이 한 밤 중의 경주를 거닐었다.

 

 

숙소로 돌아와 조금씩 가져온 술과 안주로 이야기를 채우고 이날 하루가 마무리 되었다.

 

 

둘째, 셋째날 이야기는 언제 어떻게 쓸지 모르니까 (안쓸지도) 지금 여기에 미리 적어야겠다.

 

 

낯선 곳에서의 여행자가 돌아올 곳 또한 낯선 곳이었지만, 그 낯선 곳에 다정함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섬세한 장소가 주는 특유의 안정감과 그 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따뜻함이, 여행을 끝난 후에도 자꾸 그곳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휴 =3

담에 찾을땐 찻잎을 조금 싸가지고 가야겠다. 귀한거니까, 귀한 사람들이랑 나눠먹을 수 있도록.

다른 계절의 모습들이 궁금해지는 장소가 생겨서 참 다행이다.

 

 

( 뭔가.. 게스트하우스 이름은 비밀로 하고 싶은데 넓은 맘으로 공개해야지. 같은 곳에 다녀오신 다른 분들을 보니까 대부분 게스트하우스 후기를 사진으로 채우셨던데 그건 딮블로그에 많이 올라왔으니, 나는 무형의 것들을 -이를테면 '느낌'같은- 글로 남긴거라 위로를 삼아본다. ㅋㅋㅋ 담에 또 가면 디테일하게 사진을 찍어서 다시 후기 도전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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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