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11.23 저무는 계절 (6)



 

20141123,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어떤 주말을 보낼까 고민하고 있을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전하는 엄마.
온 가족들이 모였다 한다.

살아가면서 마음을 참 무겁게 하고 외면하고 싶게 만드는 상황들이 몇 있는데,
이런 상황도 그 중에 하나이다.
지금은 그나마 병간호를 하지 않을 핑계라도 있다. '일'이라는.
취준생 시절엔 그마저도 없어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꼼짝 없이 병간호를 해야하는 신세.

나는 그게 왜 그리도 싫었을까.

우선 병원이라는 것 자체가 싫고, 병이 있게 한 그 모든 것이 싫었다.
무절제한 식습관과 폭력적인 풍경들.
주사 바늘, 피로한 간호사들, 한밤중에도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소리들,
그야말로 불친절한 불빛들. 환자들. 누군가의 울음소리.
죽음의 문턱에 있는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이 싫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죽이며 앉아있는 것이란 생각만 해도 싫었다.
오며 가는 사람들의 불필요한 조언과 이중적인 태도가 싫었다.
위로라고 챙겨오는 선물들이 싫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거부하는 마음 없이 병문안을 갈 수 있었다.
할머니는 급성백혈병이라고 하는데 항암치료를 해야한다는 둥, 정확한 병명과 치료법은 나도 잘 모르겠다.
연세가 있으셔서 섣불리 치료를 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일반병동에는 입원해봤자 무의미해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셔야 한단다.
할머니는 아무 것도 모르고 응급실에 누워계셨다.
숨을 고르게 쉬지 못하셨고, 손가락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참 오랜만이다.
이런 풍경들.


사실 요즘은 달고 부드러운 것에 취해 있었다.
그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아이들.
여리고 흰 아이들의 웃음, 얼굴, 어떤 밝음 같은 것들.
그 모든 것들과 이외의 외적인 요소들.
이를테면 듣기 좋은 음악, 맛이 좋은 커피, 예쁘게 보이려 치장하는 모든 것들.
그런 것들을 추구하고 바라보고 원하고 있던 차에
늙음과 병 그리고 죽음과 같은 어둠은 정말 오랜만이다.

사람들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삭막한 공간엔 울음소리와 신음소리가 가득하다.


나를 예민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가족이다.
그 누구에게 받은 상처보다도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가장 컸다.
삶과 밀접하게 관계된 것들을 가장 직접적으로 파고들었던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가족들을 만나는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의도적으로 피하기도 했다.
재미있고 따뜻했던 가족들은 어느샌가 불편하고 어색한 사람들이 되었다.
학업과 직장, 결혼 그리고 죽음까지.
가장 많은 관심을 두면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다.
 

내 나름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였다.
나름의 가치관과 기준을 세우고 나서도 이리저리 방황했던 시간들.
그때마다 어른들은 내게 이래라 저래라 자신들의 가치관을 내세웠다.
그들의 삶과 경험, 그들이 겪은 모든 어려움이 저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머리로는 인정하면서도
막상 대면하고 나면 내 마음은 늘 처참해졌다.
실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나 그들의 자녀를 향한 말이었다고 해도
나는 늘 울었다.


농사를 짓는다더니 어떻게 된거냐,
좋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해라.
이런 말들을 했다.


뭐.
그랬다.
별 일 없었다.




Posted by 정아(正阿)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사진의 잎들은 마치 색종이로 오리거나 구겨서 만든것처럼 생동감이 있네요 아직 질 때가 아닌데 져버린 듯한 느낌

    병, 신음과 고통, 죽음이란걸 마주하기에는 그 나이때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게 어떤 마음인지 몰라서 그 어두운, 두려운 이미지는 더욱 왜곡되어서 싫은게 부각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게 아니라면 죽음이나 고통, 이런것들의 실체가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니 어떻게 마주해야할지 몰랐거나요.

    가족이라는 편안함과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오해, 지나친 배려와 선을 넘어선 충고는 때로는 날이 서서 마음을 할퀴는 때가 있죠. 그게 싫어 점점 더 마음을 닫게 되고. 그런거보면 우리는 아직 어른아이인 셈이죠 :) 힘내요

    2014.11.24 19: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밟으면 완전 바스락거릴 것 같죠?
      이날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그래서 저렇게 다 떨어져버렸나봐요.

      그랬을까요...
      지금 한다면 좀 더 부드러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병원이란 곳 자체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 달라지지 않은 듯 해요.
      죽음이란게 참 가까우면서도 먼-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 엄청 궁금한데 잘 모르겠어요.

      명절때마다 찔질 울고 그러면 아빠랑 엄마는 속상해 하시고 그랬네요 ㅋㅋㅋ 그러면서 전 속으로 '우리 아빠 딸이라 정말 다행이다'했어요. 아빠는 안그렇다고 생각하면서요. ㅎㅎㅎ
      휴 - 모든 문제는 나한테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잘 안돼요. 그나마 조금은 편해진 마음으로 어른들을 뵙긴 하지만 여전히 움츠려들게 되더라구요. 걸핏하면 속에서 욱 올라올고요.
      네 어른아이. 언제나 위소보루님 글을 읽으면서 힘내고 있답니다. 알고 계시죠? '-'*

      2014.11.24 21:21 신고 [ ADDR : EDIT/ DEL ]
  2. 남일 같지 않네요
    저희 할아버지도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삼 개월만에 돌아가셨어요
    병원의 그 특유의 냄새 주사와 기계소리들과 한숨소리 우는 사람들 다 싫었죠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저도 병이 있어 어릴 때부터 병원을 다녔지만 싫었거든요
    그런데 받아들이지 않으면 않을수록 저 자신만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되어야 나도 온전히 지키고 할아버지도 즐거운 마음으로 보러 갈 수 있었기 때문에요
    어쩔 수 없었네요
    내게 오는 그대로 삶이 주는 그대로 받아드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내가 싫기도 했지만 이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니 살만 하더라고요
    더군다나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겪는 일인데요
    솔직한 글을 읽고 있으니 감정동화가 많이 일어나네요
    동시대를 걷고 있는 청춘이라 그런지도...
    힘내요 흰돌님 항상 응원하고 있느니까요 :)

    2014.11.26 13: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셨구나..
      죽음이라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죽음이 오기까지의 과정이 갈수록 비인간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게 힘든 것 같아요. 물론 병원의 역할은 치유에 있겠지만, 의심이 드는 부분도 조금 있구요.
      전 또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테지만, 이런 순간들은 또 다시 찾아오겠죠.
      개인적으론 감정을 잘 들어내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말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ㅋㅋ) 이번 글은 무지 감정적이지요? ㅎㅎ
      넵 응원 감사해요. 아톱님도 늘 화이팅입니다 *

      2014.11.26 20:38 신고 [ ADDR : EDIT/ DEL ]
  3. 친척들은 항상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안되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기 싫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쩔 수 없어서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왜 안했냐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대답을 하라고 하는데 대답할 수 없는 것들만 그들은 요구하죠.
    그것이 그들의 나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자 애정이라고 생각하시지요.

    2014.11.28 17:03 [ ADDR : EDIT/ DEL : REPLY ]
    • ㅠㅠ
      네, 저에 대한 아쉬움과 애정의 표현.
      원망스러운 마음도 있고 서운한 마음도 들지만,
      한편으론 죄송하고 면목 없는 느낌도 들어요.
      한뼘만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어요.

      2014.11.28 19:2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