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2012. 8. 30. 21:29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팍팍 깨주는 책!
 

1. 똥거름이 채소에게 좋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보다. 저자는 오랜기간 숙성되지 않은 가축 등의 분뇨가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농사짓는 사람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사다가 농사를 지으니까. 대신 집에서 직접 만든 제대로 숙성된 똥거름은 괜찮을 것 같다. 동물성 비료보다는 식물성 비료가 낫다고 한다.


2. 벌레가 끓는 이유는 없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치유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헐... 우리집 채소들도 많이 아픈거였구나 ㅠㅠ 출처도 모르고 썼던 비료들 때문에... 벌레가 먹으면 건강한 채소인 증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였다! 
사람이 아픈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없어야 할 것이 몸에 있기 때문에 내보내기 위해서라고 …  그러니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고.

- p.15 자연재배의 개념은 이렇다. '불순물'이 들어 있지 않은 채소는 병에 걸리지 않고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벌레는 채소에 병의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존재이며, 병은 '불순물'을 내보내려는 정화 작용이다.

  p.26 비료나 농약은 분명 효과가 좋다. 하지만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비료를 주었기 때문에 벌레가 꼬이고, 그러고 나면 벌레를 없애기 위해 살충제가 필요해진다. 


3. 진짜 좋은 흙에는 지렁이가 살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렁이가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렁이가 흙을 기름지게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흙에는 지렁이가 살지 않는다. 헉.

- p.24 풀은 땅을 진화시키기 위해 나는 것입니다. 작물에 적합한 땅이 만들어졌다면 잡초는 자연히 없어지는 법이지요.

  p.83 흙은 자연에 가까울수록 따뜻하고 부드럽다. 더불어 자연재배로 바꾼 생산자는 한 가지 사실을 더 실감할 수 있다. 바로 벌레가 줄었다는 점이다. (…)
  흙이 진화할 때 지렁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렁이가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흙이야말로 농작물을 기르기에 적합한 흙이다. 


4. 제 스스로 클 수 있는 씨앗에 미리부터 온갖 약과 비료를 뿌리는 탓에 채소는 제대로 크지 못한다. 겉보기엔 굵직하고 때깔 고와보일지 몰라도 맛과 영양은 예전같지 못하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 두면 되는 것을. 더 달고, 크고, 예쁜 결실을 얻기 위해 욕심을 부렸다가 벌레가 꼬이게 되고 결국 약을 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과 청년들처럼 말이지...   
한번 망가진 흙을 되돌리는데는 최소 3년이 걸리는 듯 하다. 이제 독이 다 빠졌나 싶었는데 10년 후에 또 나오기도 하고.

- p.120 씨앗의 참모습을 되찾으려면 농가에서 직접 씨앗을 받는 수밖에 없다. 농약과 비료를 빼낸 흙에서 자란 채소에서 생산자가 씨앗을 받고 그 씨앗으로 다시 채소를 기르는 것이다. 이 과정을 반복해서 씨앗에 포함되어 있는 비료 성분을 빼내고 스스로 자랄 수 있는 힘을 되살린다. 


5. 채소는 원래 썩지 않는다. 시들기만 할 뿐. 약을 치고 키운 채소가 썩으면 고약한 화약약품냄새가 나고, 똥거름(제대로 발효되지 않은)을 주고 키운 채소에선 똥냄새가 난다고 한다... 반면에 자연재배 채소는 썩지 않고 발효가 된다. 상큼 달달한 향기를 남기며…

 왼쪽부터 자연재배, 유기재배, 일반 재배한 오이.


6. 균에 대해서도 조금 관심이 생겼다. 요즘은 천연 균을 이용한 발효식품을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보통 슈퍼는 물론이고 대형마트에서도 못 찾을 것이다. 감칠맛이란 균의 오묘한 조화에서 나오는 것이라 한다. 인공 조미료가 아니라!


 p.32
 자연재배 농법의 창시자가 일찍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먹을 것은 산처럼 쌓여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당장 먹을 수 없는 시대가 온다."
: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 


 p.195
 "그 사람이 싫은 소리를 하니까 나도 할 마음이 안 생겨."
 정말로 '그 사람' 때문일까?
 자신이 끔찍하게 여기는 것에 고마워하기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억지로 감사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자연을 둘러보면 그토록 싫어하던 것도 사실은 싫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고마워할 수 있다. 

 

:: 책을 읽다 보면 의문 가는 부분도 있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고, 분노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누구한테 배우지 않아도 혼자 잘 할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들을 알려주시는 분들 책 몇 권만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몇년간 수확도 못하고 벌레가 들끓어도 당장 굶어 죽을 상황만 아니라면 참고 기다릴 수 있다. 자연의 힘을 믿을 수 있다.

채식, 농사, 질병, 음식 등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먹거리는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므로 이런건 정규 교육 과정에서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그럼 이것도 그냥 달달 외우는 지식이 돼버리려나... T-T 경험으로 배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2. 8. 20. 16:41


카미유 클로델 - 사쿤달라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한들, 결혼 후에도 반드시 행복해지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다. 누가 봐도 훌륭한 남편에 자신 또한 뛰어난 재능을 겸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인생이라니.
사실 나는 여자로 태어나서 차별을 받는다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른들이 딸보다는 아들을 좋아하는 것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오히려 여성스러운 것이 남성스러운 것보다 좋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이 세상은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관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뛰어난 위인들 중에는 남자들이 많을까?'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것은 여자들의 재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였다. 
결혼을 하고 나면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가 되어버리는 여자들은 그림자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는 그들의 남편 역시도 결혼 전과 초반에는 아내에게 자신과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지만
끝내는 모르는 척 하거나 자신이 유명하고 유능해지는 것에 대한 희생을 요구하게 되면서, 서로 불행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그녀들에 대한 기록은 충분하지도 못하며 누군가 의도적으로 없애버린 것 같다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사실 이 책은 끝까지 읽지 못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읽어나갔지만 책을 읽을수록 머리가 아파오고 지루해졌다. 그럼에도 이런 흔적을 남기는 이유는 이 책에서 받은 인상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그녀들의 삶을 재조명 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 하지만 결국 그런 삶을 선택했던 것은 그녀들 자신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나는 요즘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때로는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하나 명확하게 알아채지 못하는 내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위로가 됐다.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는 그녀들처럼 뛰어난 재능이 없기에 오히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만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희생적 사랑이나, 끊임 없이 인정받고자 하는 의존적 사랑은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내 삶의 중심은 언제나 나에게 있어야 한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2. 8. 20. 16:09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2. 8. 13. 08:54

p.20
 부처님께서 걸식을 하시고, 발을 씻으시고, 자리를 펴고 앉으신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무상, 무주, 묘행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고 계십니다. 일체 상이 없어야 반야가 빛납니다. 부처님께서는 걸식을 통해 네 가지 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소멸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서 발을 씻으셨고, 더욱 철저히 보여주기 위해 다시 자리를 펴고 앉으신 것입니다.  

: 여기에서 반야를 보아야 한다고 한다. 만인의 일상 속에 금강경의 진리가 있다고.
걸식은 '나'라는 상이 없기에 가능한 것이고, 발을 씻는다는 것은 마음의 때를 씻었다는 말이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2. 8. 12. 22:34

L'Angelus - Jean-François Millet
L'Angelus - Jean-François Millet by il_baro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p.25
 베지테리안의 번역어로서 '채식주의자'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과연 적절한 것일까? 채식주의자가 '식물성 식품만을 먹는 것'과 베지테리안이 '고기와 생선 등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것' 사이에는 언뜻 보기에 똑같아 보이지만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실제로는 베지테리안이 먹고 있는 것은 식물성 식품만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계란이며 유제품을 먹는다. (때로는 약간의 생선을 먹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베지테리안'으로 호칭하는 것은 '생명을 직접 파괴함으로써 얻어지는 음식물을 취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의미에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베지테리안이란 "베지테리안의 어원인 '건강'의 의미를 인간의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건강이자 동·식물에 대한 사랑이며 또 사회와 지구의 건강으로 확장시켜 이를 실천하기 위해 자신들의 식생활에 육류를 포함시키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p.62
 생각하면 남자들은 몇 십만년 동안 동물의 고기를 획득하기 위하여 쓸데없는 노동을 소비하고 불필요한 싸움을 벌여왔다. 거기에서 생긴 지배욕과 독점욕은 먼저 여성에 대해, 나아가 점차 토지와 다른 민족과 나라들로 확대되어 나갔다. 마지막 도착점은 언제나 전쟁과 살상이었다. 그리고 그 희생물이 된 것은 여성과 어린이들이었다.
 여성은 2개의 유방을 갖고 태어난다. 하나는 페미니즘이며 또 하나는 베지테리아니즘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이 부드럽고 따뜻한 유방에서 흘러나오는 젖으로 키워져 온 것은 아닐까.


p.67
 비육식의 사상과 동물애호사상이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다. 동물을 굉장히 좋아하고 애완동물을 기르며, 파리와 모기를 잡는 일조차 망설이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알고 보면 육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 나처럼 파리나 모기를 싫어하면서 때로는 자기 손으로 잡아 죽이기조차 하는 베지테리안이 있는가 하면 동물의 고기뿐 아니라 동물 그 자체를 싫어하는 베지테리안도 있다.


p.73
 "… 제군들은 바그너가 현대의 수많은 문화적 퇴폐현상이 육식문화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본다는 걸 알고 있나?…. 나 자신이 오늘날 육식을 거부하는 것은 주로 바그너가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한 발언에 근거하고 있지. 그리고 난 그의 발언이 전적으로 옳다고 보네. 현대의 수많은 문화적 퇴폐는 아랫배에서 오는 거야. 만성 변비, 고기 중독, 폭음 때문이지. 육류, 알코올, 담배 피우는 불결한 습관을 자제하고 있는 것은 건강상의 이유에서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신념의 문제라네. "
-H. 라우슈닝『히틀러의 대화』


p.113
 현대 과학자는 종교(힌두교 계율)와 과학(물리학 열역학 제2법칙)이 통합된 견해에 근접하고 있다. 사실 엔트로피(☜)는 2천년 전의 먼 옛날부터 이미 지적되어 왔다. 기원전 4세기, 플라톤은 미래사회에는 엔트로피가 끊임없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의 저서 『국가』를 요약해 보자.
 사람이 생존하고 생활하기 위한 모든 식량을 개인이 자급자족하는 방법은 언젠가는 반드시 한계에 직면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동작업'의 필요성애 대두되고 이에 따라 국가와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평화롭고 건전한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의 식탁에는, 보리가루로 만든 빵과 밀가루 과자, 소금과 올리브와 치즈를 사용해서 쪄낸 근채류와 야채, 무화과와 완두콩이 올라간다.
 그러나 국가가 사치스러워지면 이 같은 소박한 식사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고 동물의 고기를 요구하게 된다. 이어서 사냥꾼이 등장하고 돼지를 사육하는 사람이 생겨나면서 본격적으로 가축사육이 시작된다. 인간의 욕망과 사치에 비례하여, 국가와 사회가 커지고 마침내 물욕으로 인한 인간과 인간간의 전쟁이 터진다.
 이런 나라를 플라톤은 한마디로 '염병에 걸려 괴로워하는 국가'라고 이름 붙였다. 역사는 플라톤의 예언대로 진행되었다. 지금 선진 여러 나라에서는 육식의 비중이 매년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동물 사료를 둘러싸고 '곡물전쟁'까지 일어나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동물의 사료에 불과한 옥수수 한 알조차 구하지 못해 굶어 죽는 수만 명의 기아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p. 175
 원주민 사람들은 대지를 대지라고 말하지 않고, 어머니라 말하고 푸른 안개에 감싸인 할머니로 표현한다. 죽은 사람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결코 대지를 파 헤지는 일따위를 하지 않았다. 포피족과 디네족이 3천년 전부터 살고 있던 땅, 미국 정부가 그곳에서 그들을 강제 이주시킨 이유는 그들의 채굴사업때문이었다. 예로부터 광물질과 더불어 석탄, 석유, 우라늄은 현대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에너지 자원이다. 이로 인해 땅 속은 더욱더 깊이 파헤쳐진다.


p.206
 과연 먹거리로 인해 죽거나 병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먹는 행위는 생명을 유지하고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보전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첨가물을 체내로 받아들이는 것은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뒤집어놓는 것과 같다.


p.214
 우리들은 당연한 것을 원하는 것이다. 안전한 먹거리를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그 때문에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도록 요구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원이 더 보편적인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 이 작은 소원을 '이기심'이라고 말한다면 모두가 나서서 이기심을 발휘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안전한 먹거리는 우리 손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p.238~239
 아이들은 하나같이 인간만이 잘 난 존재가 아님을 느꼈다. 인간에게는 동물을 '죽여서' 먹을 수밖에 달리 살아갈 방도가 없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른 생명을 빼앗아 먹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도축된 돼지(아니면 앞서 이야기한 닭(를 보면 누구나가 한번쯤 "불쌍하다" "기분 나쁘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 고기와 내장과 간장을 먹어보니 하나같이 아이들은 "맛있다"며 좋아들 했다. 아무도 동물을 '잡아' 먹는 것은 나쁘다, 불쌍하고 잔혹하니까 먹지 말자 라는 도식적인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인간이 살아 있는 것을 잡아서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면 그것에 감사하자. 생명의 소중함, 그것을 쓸데없는 것으로 만들지 말자는 것을 배운 것이다.
 잡아 먹히는 동물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도 솔직한 기분이고 동시에 그것을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엄연한 진실이다.
 이 수업을 체험한 아이들은 돼지와 완전히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들 인간과 똑같은 동료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앞으로 그들이 먹는 돼지고기는 그냥 돼지고기가 아니고 그들의 친구의 고기인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어린아이들에게 생각하게 만들고, 살아 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이들에게 인식시킨 '돼지수업'의 효과는 굉장했다. 물론 이 수업에서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아이들이 나타나길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수업을 끝낸 다음 인터뷰에서 한 남자 어린이가 말했다.
 "살아 있는 동물을 안 먹더라도 식물을 먹으면 되요."
 그러자 또 한 명의 남자 어린이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식물도 살아 있잖아?"
 결론과 잘잘못이 가려지지 않는 논쟁의 불이 10살 어린이들에게 불붙은 것이다. 이 토론의 불이 꺼지질 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란다.

 



: 다양한 책과 인물들을 인용하면서 육식이 인류의 문명에 미친 영향을 풀어낸 책이다, 라고만 설명하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엮어서 이런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멋진 책이다. 

중도(中道)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지극히 바르고 선한 길을 뜻하는 것이라면, 베지테리안이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채식을 한다고 하면 내편, 혹은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채식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동물애호가는 아니며, 동물애호가라고 해서 반드시 채식을 하는 것도 아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한다.


p.29
농민을 비롯해 가난한 서민들은 육식을 하지 않았지만(아마 육식을 할 여유가 없어서였겠지만) 여유있는 계급에서도 육식을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우리의 시선을 끈다. 피타고라스, 플라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다윈, 랄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벤자민 프랭클린, 존 밀턴, 아이작 뉴턴, 토마스 모어, 장 자크 루소, 볼테르, 바그너, 셀리, 세익스피어, 버나드 쇼, 안나 킹스포드, 애니 베전트, 톨스토이, 간디… 그리고 그들과 역사적 정신적으로 이어져 있는 무수한 베지테리안들이 있었다. 


또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엔 존 레논, 마이클 잭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고흐, 톨스토이 등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세고 보니까 채식인들이 꽤 많은 것 처럼 느껴진다. ㅋㅋ
흥미로운 것은 히틀러가 채식을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은하철도999(은하 철도의 밤)의 작가 미야자와 겐지 또한 지극한 베지테리안이었다.

이런 책은 사야햇!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