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2012. 7. 17. 10:45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2. 7. 8. 15:18

 

2012/07/07, 우리집 자두 ♥



운명이란 정해져있을까? 아니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일까? 내가 보기엔 둘 다인 것 같다. 확실히 어느정도 정해져있는 운명이 있고, 그 운명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변화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절대적인 운명은 없는 것.

미즈노 남보쿠는 불우한 어린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다. 그는 18세에 감옥에 들어가 반 년동안 있으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밖에서 본 사람들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관상가를 찾아가 자신의 운명을 묻는다. 그런데 관상가 曰:

"1년안에 칼에 맞아 죽을 관상이니, 이 길로 속히 절에 가서 출가하기를 청하시오."

충격을 받은 그는 그 길로 가까운 절에 가서 출가를 청하였으나, 주지 스님께선 쉽게 맞아주시지 않는다. 대신 1년 동안 보리와 흰콩으로만 식사를 하면 그때 받아주겠다고 하신다. 그는 스님의 말씀대로 보리와 흰콩만을 먹으며 1년을 버텨낸다. 
1년 후 그는 다시 관상가에게 찾아가는데, 그 관상가는 깜짝 놀란다. 관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하며 어디서 큰 덕을 쌓았느냐고 물으니, 그는 흰콩과 보리만을 먹고 1년을 살았다고 답한다. 

"식사를 절제한 것이 큰 음덕을 쌓았구려. 그것이 당신을 구했소.!"

운명이 바뀐 남보쿠는 출가 대신 관상가가 되기를 결심한다. 그는 사람의 얼굴 모양 3년, 몸 3년, 죽은 사람의 골격 3년, 총 9년의 연구를 마치고 관상가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이 책은 운명이나 관상에 대한 책일 것 같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음식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것도 음식의 절제에 관한 이야기로!

초반의 그는 관상에 초점을 맞추어 운명을 알아보았으나, 후에는 음식의 중요성을 깨달아 음식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관상가로서 자신의 견해가 틀렸을 때 그 원인을 연구한 결과 음식에서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책에는 이미 흰콩과 보리쌀로 운명이 변한 사실이 나와 있으나, 관상이 바뀌었을 당시에 그는 음식보다는 관상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나 보다.


p. 19
 사소한 일 하나를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성공의 길이오.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문장이다.
'사소한 일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다' 와 비슷한 문장을 어제 내 블로그에서 봤는데,
헤르만 헤세가 했던 말인지, 에머슨이 했던 말인지... 도무지 기억이 안난다. 검색을 해봐도 못찾겠고.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이와 비슷한 말들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 

Q.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직업에서 크게 성공하는 길을 알려주십시오.
: 항상 선배나 윗사람을 공경으로 대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선배의 덕을 중히 여기는 것이 정도(正道)입니다. 새로 시작한 사람은 열심히 배우는 것이 본분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일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 당연한 것들을 쉽게 생각하는 바람에 자꾸 엇나가는게 아닐까?


p.32
 부귀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미천함을 근본으로 합니다. 


부귀란 사방의 가난이 모여서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가난이 근본이라고...

이 문장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p.46 
백성을 자식같이 사랑하는 것이 임금의 도리입니다. 자신에게 속한 물건은 자신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걸인이라 할지라도 밥그릇이나 누더기가 자신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을 거느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들,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소중히 아끼고 보살펴야 하는 거구나. 지금 있는 곳에서 주변을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것.


p.51
착한 일을 한다는 것은 오직 그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섬긴다는 것이지, 남들이 보기에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오. 


p.65
과식하는 것은 밥을 그대로 변소에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많이 먹고 싶을 때, 밥을 변소에 버리는 상상을 해보세요. 만약 그런 상상을 해도 진짜 음식을 참기 힘들면 진짜 변소의 똥 위에 밥을 한번 버려보세요. 만약 당신이 사람이라면 차마 그런 짓은 못할 것입니다.  


아... 부끄럽다. 사실 나는 음식을 남기고 버리는 것만 흉인 줄 알았지, 음식에 대한 욕심을 이렇게까지 생각해보진 못했다. 


p.70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하늘과 부모로부터 받은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기르고 지키는 것이 음식입니다. 어찌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겠습니까? 


T.T... 교수님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 이제야 더 와닿는다. 

귀한 생명. 귀한 생명을 유지시켜주므로 귀한 음식. 그리고 그 음식의 재료가 되는 식물들. 식물을 가꾸고 길러주는 햇살, 바람, 비. 그리고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자연의 모든 존재들. 그래서 아끼고 아껴야 한다.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가 주는 메세지와도 일맥상통한다.

p.73
큰일이 닥쳐서 마음이 흐트러지면 식사가 자연스럽게 난잡해집니다. 마음에 여러 번민이 있으면 식사를 하지 않거나, 한꺼번에 많이 먹게 됩니다. 


이건 누구나 다 경험해봤을 듯 싶다.


p.144
귀천을 떠나 식사를 절제하지 않고는 운명이 제대로 자리잡기 힘들어집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만물의 법칙을 아는 것이 삶의 근본입니다. 그러나 알기만 해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행동에 옮겨야만 합니다. 




짧고 단순한 책이지만 그 속에 삶의 지혜가 오묘하게 어울어진 멋진 책이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가장 근본이 되는 음식에서부터 시작하기를!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2. 7. 6. 23:09




이 책은 에드가 케이시라는 사람이 최면술을 통해 자신의 병을 고쳐내고, 후에는 다른 사람들의 병의 원인을 찾아 치유 법을 알려주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인과의 법칙에 따라 전생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이것을 단순히 알려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나 사실적인 기록을 통해 증거를 제시한다. 케이시는 대상자를 만나지 않고 단지 어디에 사는 누구 라는 것만 알려주면 뭐든 정확하게 알아내곤 했다. 단, 최면 상태에서만. 그리고 그 최면은 개인적인 이익이나 욕심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럴 경우에는 에너지가 많이 쓰여 몸이 몹시 피곤해졌고, 자신의 능력을 오로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에 써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경에 깊은 감명을 받은 기독교인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전생'이나 '윤회'에 대한 것이 자신의 신념에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그가 최면을 통해 진리를 밝혀내는 것을 적극 권고했던 라머스의 의견에 동의한다. 
왜 성서, 예수는 윤회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라는 물음에,
라머스 曰 : "글쎄요, 예수는 아마도 말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요."라고 답한다.

p.60-61
 성서에는 한 군데, 그가 제자에게 세레 요한이 엘리야의 재생임을 말하고 있다. (마테복음 17장 12~13절). 예수는 윤회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엘리야는 이미 왔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제자들도 그이가 세례 요한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또한 제자들이 예수에게 앞 못보는 장님에 대해 "주여, 이 사람이 장님으로 태어난 것은 이 사람 자신의 죄입니까, 또는 부모의 죄입니까?"하고 묻고 있는 대목도 주목해야 한다. 그 밖에도 분명히 윤회를 암시했거나 또는 지적한 곳이 있다. 묵시록 13장 10절에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로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고 했다. 이 구절에는 윤리적 응보의 법칙이 대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케이시의 리딩(투시를 통해 읽어내는 것)은 일반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기록되어 남겨졌다. 그는 전생에 대한 심리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을 통해 과학과 종교의 중간 다리를 잇는다. 

p.81
 케이시 리딩의 바탕이 되는 이 생각을 이해하려면 '카르마'라는 말의 뜻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이 말이 죄와 괴로움의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유일한 말이기 때문이다. 카르마는 산스크리트어로 원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철학적 개념으로서는 모든 인간의 행위를 지배하고 있는 인과율 또는 작용·반작용을 의미한다. 인도의 브라만 철학을 따랐던 에머슨은 이 개념을 '보상의 법칙'이라고 했다. 예수가 '뿌린 대로 거두리라'라고 한 말이 단적으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뉴턴의 '운동의 제3법칙' - 모든 작용에는 그와 동등한 반작용이 따른다 - 은 물리 현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도덕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p.367
모든 행위, 즉 운동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카르마의 작용 또한 에너지의 운동이다. 인간의 의식에 의하여 어떤 외계의 대상에 부딪치도록 이끌린 에너지는 고체를 관통하는 X선처럼 그 대상을 곧바로 꿰뚫는데, 그리고 나서도 그것은 여전히 원운동을 계속하여 전혀 에너지의 감소 없이 마침내 출발점으로 되돌아 온다.
(...)
 카르마의 개념은 참으로 중요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종교에서 내세우는 권선징악의 가르침에 과학적 근거를 주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와 종교간의 사이도 잇는다.

p.133
 '나는 영'이라는 의식이 자리잡으면 케이시 리딩이나 그 밖의 신비주의자들이 일컫는 그리스도 의식에 도달할 수가 있다. 앞에서 본 실례뿐만 아니라 다른 육체적 카르마의 거의 모든 경우에도 케이시 리딩은 한결같이 그 치유를 위해서는 당사자가 적어도 어떤 방법으로든 그리스도 의식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 의식이란 그리스도교 신자에게만 국한되는 특전이 아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란 예수라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며 그 말뜻은 '기름이 부어진 자'라는 것이며, 그 신비적 내지 심리적 의미는 '해탈 의식' 또는 '영적 의식'이다. 크리슈나나 붓다도 말하자면 그리스도 의식을 지닌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 스승이 누구든 또는 그 영적 자각을 무어라 부르든 다 이 그리스도 의식에 이르려고 더듬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모든 병의 원인이 전생이나 심리적 요인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p.139
 정신 지체 의학에서 인정되어 왔듯이 병의 원인이 마음에 있지 않은 경우도 흔히 있으며, 또 그 원인이 어떤 것이든 정신 요법보다는 물질적 치료로 낫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전생에 지은 인이 현생에서 과로 나타난다면, 운명이란 정해져 있는 것이라 받아들이고 수동적인 자세로 삶을 살아갈 위험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윤회론은 자유 의지를 확실히 인정하며 모든 일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보는 생각을 부정한다. 카르마의 숙명론적 해석을 받아들이는 힌두교도들의 무기력한 태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p.368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지만, 다른 면에서 본다면 인간은 스스로의 창조자이다. 카르마는 인간의 자기 설계와 자기 창조의 한계를 나타낸다. 그런 동시에 카르마는 인간의 해방자이며 벗이다.
 이것을 알았기에 붓다는 인생의 변화 유전 속에서 고요히 말한다. "나는 법(法) 속으로 피난한다." 모든 법칙 속에 들어 있는 광대무변한 자비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이 말이 설령 아무리 비인간적으로 보일지라도 "나는 주에게서 피난처를 찾는다."는 그리스도의 말처럼 감동과 위안과 격려에 넘치는 말이다. 왜냐하면 계율은 주요, 주는 계율이기 때문이다.


그의 리딩은 점성학, 정신의학, 심리학, 종교, 과학 등 다방면의 분야에 걸쳐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밝혀 지지 않은 의문들을 연구하는 이들에겐 어쩌면 이것이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모든 고통은 자신의 성장을 위한 것임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배움을 찾고, 결국엔 진정한 사랑과 행복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인 것 같다. 

p.382
 어떠한 경험에 있어서든 개인의 의지보다 더 큰 충동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창조성은 자기 내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창조성이 외부의 거룩한 힘과 어울려 어떤 삶의 길을 선택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에 '내 안에 있다'고 대답하는 그들의 견해를 이제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ㅎㅎ) 신성함은 나를 비롯하여 우주 만물에 비롯되어 있는 것이므로. 절대적인 사랑, 즉 진리, 법(法)을 향한 믿음에 대한 보상은, 자신을 밀고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과 정서적 안정감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경험을 통해서 증명해 내야 한다. 뚜렷한 목표를 세워야 겠다. 그리고 나를 발전하게 하는 욕심을 내고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남 탓을 하지 않는 것. 능동적으로 인내하는 것. 적극적으로 참고 견뎌내는 것. 이것은 결국엔 다 지나갈 것이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남을 것이다.   

의문 가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굉장히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2. 6. 29. 10:36




예전에 텍스트큐브에서 블로그를 할때
수선재님(?)이 보내주신 책. 이제야 읽었다.
수선재라는 곳이 명상을 하는 단체 같던데,
그곳에서 활동하는 학생이 보내주셨다.
(그땐 나도 학생이었지 ㅋㅋ)

사실 이런 류의 책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죄송,,해요;)
갑자기 당겨서 읽었다. (고마워요:)

저마다 안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상처 없는 사람 없고,
상처를 줘본 적 없는 사람도 없고.
그러한 상처는 객관적인 원인이 있었다기 보다는
오해의 눈으로 껴안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항상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지
가해자라는 생각은 별로 못했다.
알게 모르게 줬던 상처들이 참 많을텐데...

미안합니다.


/
요즘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중이다.

/
명상이랑 요가랑 배워보고 싶다. 
사실 둘다 별로 엄두는 안난다 ㅋㅋ
요가는 너무 뻣뻣해서 그렇고
명상은 앉아있다보면 졸려서 말이지... -.-
<위빠사나 명상>이나 다시 읽어볼까?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2. 6. 26. 16:46




이런 글을 쓰려면은…!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