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2012. 8. 11. 11:57

The Milky Way at Mercedes
The Milky Way at Mercedes by lrargerich 저작자 표시비영리



p.50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은 결벽증이 아니다. 그 사람이 무안할까봐, 또는 분위기에 압도당해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해도 결국 책임은 나에게 돌아온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은 결벽증이 아니라 책임감이라고 해야 옳다. '있는 그대로'는 책임지는 자세이다.
: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했을 때, '나는 융통성이 있는거야, 남들을 배려하는거야'라는 말로 자기 합리화를 시키곤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불편했었다. 이게 정말 옳은 걸까 싶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 얘기를 했을때 돌아오는 말은 '이기적이다, 고집이 세다, 꽉 막혔다' 등의 부정적인 말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자기의 생각을 거침 없이 말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혜로웠으면 좋겠다... 


p.57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자세, 적극성이 인생을 가른다.
: 능력은 없지만 말은 할 수 있으니 '말이라도 한다'는 부분을 보면서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나는 항상 말이 행동보다 앞설 뿐만 아니라 말뿐일 때도 많다. 하지만 의욕을 가지고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내던지는 말과, 나는 '이런 생각도 가지고 있어' 라며 자신을 추켜세우는 듯한 말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아 반성해야지... 뭐든 '쓸데 없어 보이는 일'은 피하고 보는 나에겐 적극성이 필요하다.


p.70
 그러나 겁먹지 마라. 겁을 먹으면 수양버들이 귀신의 산발머리로 보이듯이 두려움의 실체는 겁먹은 나 자신일 뿐이다. 사과 한 알이 떨어지는 소리에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고 겁을 주어도 '나는 솟아난다'는 믿음으로 돌파해야 한다. 
: 요즘 부쩍 소심해진데다가 겁이 많아졌다. 그래서 말이 더 많아진 것 같다. 핑계대기나 좋아하고...쩝. 두려움의 실체는 겁먹은 나 자신일 뿐이라는 말이 많은 힘이 된다. 건전한 의심과 믿음을 가져야지!


p.100
 결국 인생은 독립을 기본으로 한다. 혼자 살 수 있는 사람만이 더불어 살 수 있다. 독립의 기본은 자아존중이고 공존의 기본은 상호존중이다. 
: 나는 독립을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은 착각이었다.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짧은 문구지만 핵심적이다.


p.100~102
 조선시대에도 여성들은 자아존중감을 가지고 남편과 대등한 관계를 견지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선조 때의 여성시인 송덕봉이다. 그의 남편은 대학자이자 높은 벼슬을 지낸 미암 유희춘으로 여덟살 연상이었다. 그럼에도 덕봉은 남편에게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했고 때로는 남편에게 비판적인 충고도 서슴지 않았다.
 남편 유희춘이 서울에 발령을 받아 홀로 사는 동안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며 아내에게 "보답하기 어려운 은혜를 입은 줄 알라"고 편지를 보내자 덕봉은 답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사실은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자기 입으로 그걸 알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또한 육십 가까운 나이에 기를 보전하는 데 좋은 일입니다."
 한마디로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을 왜 생생내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편이 귀양 간 동안 지성으로 시모의 삼년상을 마쳐 친아들이라도 이보다 더 잘할 수 없다고 칭찬을 들었는데 수개월 홀로 지낸 공로와 나의 몇 가지 일을 비교하면 어느 것이 가볍고 어느 것이 무겁겠냐"고 반문한다. 끝에는 "영원히 잡념을 끊어 기를 보전하고 수명을 연장하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 글을 받은 미암은 이렇게 답장했다.
 "부인의 말과 뜻이 모두 좋으니 탄복함을 이길 수 없다."
 아내의 비판을 달게 수용하는 대학자의 면모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성이 반듯한 견해를 또렷이 밝히면 남자들도 쉽게 무시하지 못하는 법이다. 이것이 대등한 부부관계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는 자기 생각이 아주 강력한 페미니스트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신의 삶에 진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모든 생각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있는 그대로 멋있다. 조선시대 여성시인 '송덕봉' 이분도 멋지다:D  




/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은,
나는 정말 속좁고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지인이나 친구들, 가족들에게.
ㅠㅠ
죄송합니다. 반성하고 달라질게요. ㅜㅜ 

뭔가 좀 용기를 충전한 듯한 기분이 든다.
열심히!!!;;; 해봐야지!!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2. 8. 8. 11:30

The Wizard
The Wizard by seanmcgrath 저작자 표시



p.177 
 몸으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는 그 자체가 자신을 비우는 일과 같다.


p.232
 점占이 누군가를 위로한다고 할 때 그 중 가장 큰 위로는 무엇일까? 점은 지금까지 자신을 비우라 했고, 철 지난 합리주의에 치이지 말라고도 했다. 모든 비교는 헛일에 불과하다는 말도 들려주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6개월만 참으면 적어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는 메시지도 전해 주었다.
그러나 마지막 위로가 남아 있다. 점은 원래 운명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숙명적인 운명이 있어야, 그 운명을 예측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니까. 그러나 점은 이제 그 전제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운명이라는게 숙명적이 아닐 수도 있다고 천명하는 것이다.
점은 자신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위로한다.


p.243
 이른바 '적선지가 필유여경 積善之家 必有餘慶' 이라는 말은 바로 적선이야말로 사주의 한계를 깨고 운명을 바꾸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고 보겠다.
 '적선지가 필유여경'은 착한 일을 쌓아 나가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넘쳐난다는 뜻으로 주역에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땅이 위 아래로 겹친 모양새의 '중지重地' 괘의 해설 중에 등장하는 말이다.


p.245
 절제라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모두 다 절제할 줄 알면 모두 다 자신의 사주와 운명을 뛰어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이기고 자신의 나쁜 성격이나 불리한 상황으로 인한 억울함을 참아낼 수 있게 되면, 사주에 나타난 운명의 파행을 큰 일 없이 넘길 수 있다. 누구를 탓할 필요도, 상황을 비난할 필요도 없다. '나 하나가 바뀌면, 온 우주가 바뀐다'는 것이 양의 동서에 걸친 고금古今의 진리다.


p.248
 그것은 그들의 영성 때문이다. 앞서 말하나 대로 사주라는 게 원래 하늘의 뜻을 품고 있는 것인데, 수시로 하늘의 뜻을 묻고 하늘과 교감을 하는 사람들인지라 태어나면서 만들어진 사주의 모양새가 의미 없는 경우가 많다.


p.260
 점의 가장 큰 위로는 바로 그것이다.
 정해진 운명이 분명히 있다는 것,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운명이 아무리 잔혹하고 뛰어넘을 수 없다 해도 그 상황을 견디고 꿋꿋하게 살아남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
 점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이 확인하고 또 확인한 사실이다. 
사람은 그렇게 운명보다 강하다.
 의 마지막 말이다.



/
주역에 대한 언급을 잠깐 하고 전반적으로는 사주에 관한 이야기다. 
사주를 중심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엮어가며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점을 보는 것이 비합리적인 측면이라고 생각한다면
소명에 관한 것도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점을 '자연'을 해석하기 위한 하나의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소명을 찾기 위해서 사주팔자를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ㅋㅋ
(좀 뜬금없나-.-)

책들은 결국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2. 8. 8. 08:29

Milky Way / Via Láctea
Milky Way / Via Láctea by Chaval Brasil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만일 일을 하면서 내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삶의 폭과 깊이가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은다면,
그리고 맡은 업무가 활력의 원천이 되지 않는다면, 그곳은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
-오리스 스웨트 마든- 


p.13
"도대체 어떻게 길을 찾았답니까?"
나는 데릭에게 물었다.
"그거야 알 수 없죠. 나는 마사이족이 아니니까."
"그래도 뭔가 비결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글쎄요. 내가 알기로 여기 원주민들에게는 '길'이란 개념이 없는 것 같더군요. 길이 없으니 길을 잃을 수도 없지요. 저들은 다만 나무와 숲과 바람이 가야할 곳을 알려줄 때까지 귀를 기울일 뿐입니다."

p.55
어디서 무엇을 하든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소명, 즉 내면의 부름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그 부름에 딱 들어맞는 직업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아 보이는 직업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일이든 자시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일에 대한 만족-궁극적으로는 삶에서의 만족-은 일정 부분 우리가 이러한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택시 기사에게 '택시를 모는 것'은 분명 현재의 직업이지만, 할머니를 돕는 것은 내면의 부름에 따라 자기만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그런 기회를 더 많이 얻기 위해 더 열심히 움직이다 보면 훨씬 큰 기회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면의 부름에 귀 기울이고, 그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깊은 사고를 통해 문제의 근원에 다가서려고 하며 연결고리를 통해 변화를 유도한다.
- 책에 나온 소명카드 리스트를 보고 한번 적어본 것 ㅋㅋ
첨엔 엄청 집중해서 재미있게 읽었는데, 나중엔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얻은건, '너를 믿고 가면 된다' 정도의 위로? :)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2. 7. 21. 15:11

NYC - MoMA: Pablo Picasso's Girl Before a Mirror
NYC - MoMA: Pablo Picasso's Girl Before a Mirror by wallyg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p.136
 아픈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감각을 몽롱하게 만들며 애도 작업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각을 마비시킨다니...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서 무뚝뚝하고 둔한게 아니라, 깊게 입은 상처를 어쩔 줄 몰라 그렇게 행동하는구나 싶었다.
섬세한 사람들이 세상을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며 쉽게 감동받고, 행복해하고, 슬퍼하는 반면, 
둔감한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닫힌 태도로 일관한다. 때문에 밝은(긍정적인) 사람들은 상처를 받아들이고 극복하고 나오려는 의지가 강하지만, 어두운(부정적인, 우울한) 사람들은 진정한 기쁨/슬픔을 느끼는 일을 어려워 한다. 하지만 그들 또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치유를 위한 정당한 행동들을 하게 된다. 


p.165
 바로 그 지점에서 나도 자살에 관한 책들을 읽은 진정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자살을 꿈꾸며, 자살을 실행가기 위해 그 책들을 읽었던 게 아니었다. 그런 책들을 읽음으로써 자살에 관한 욕구를 간접적으로 충족시키고 조절해왔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심리적으로 거듭 강물에 뛰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욕구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수 있었다. 책들 속에서 자살을 꿈꾸고, 자살 방법을 상상하며 진저리 치는 것으로 자기 파괴적인 욕망들을 충족시키거나 해소하고 있었다. 



p.211
 오늘날에도 문학은 동시대인의 울음을 반걸음쯤 앞서 우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시, 그림, 음악 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며 내면을 치유하는 예술가들을 통해, 우리는 간접적인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아파하지도 슬퍼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내면에 분노를 품은 채로 살아간다. 


p.213
 슬픔은 나약함이나 병이 아니라 애도 작업의 핵심이다. 

:애도란 상처를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는 작업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한걸음 더 성장할 수 있다.


p.234
 "통찰은 마술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통찰과 해석으로 삶의 문제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바로 그 순간 모든 문제가 눈 녹듯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통찰로 알아낸 문제를 스스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용기와 인내의 시간이 뒤따라야 한다. 낡은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법들을 습득해나가고, 예전의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몸에 밸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그것을 '훈습'이라 일컫는다.





나는 친구들이 울때면 따라서 곧잘 울곤 했다. 그러면 친구들은 그런 내 모습에 감동을 받곤 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친구가 어떤 심정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면서 그저 우는 모습에 따라 울었던 것 같다. 안쓰러웠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순간부터는 친구가 우는 모습을 보면 당황하게 됐다.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라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그 마음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 속내는 하나도 알지 못하면서 언니 혹은 어른스러운 흉내를 내곤 했던 것 같다. '왜 저래'라는 마음을 품고서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막연하게나마 타인을 이해하는 열쇠를 찾은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다 다르고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글이나 문자로는 이해를 해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언제나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위로보다는 비판을, 이해보다는 판단을 먼저 했으니까.
나 자신을 이해하는데 썼던 모든 관심들을 이제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쓰도록 노력해봐야겠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2. 7. 19. 22:49

NYC - Metropolitan Museum of Art: Pablo Picasso's Girl Reading at a Table
NYC - Metropolitan Museum of Art: Pablo Picasso's Girl Reading at a Table by wallyg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p.82
미국 여행을 함께 했던 할머니 한 분은 여행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고 했다. 살림하는 사람이, 나만을 위해 이런 돈을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따라다녔다. 그런데 워싱턴의 한 미술관에서 피카소 그림을 보고 나온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피카소를 보고 나니 가슴이 뻥 뚫리면서 여행 경비가 아깝다는 마음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나는 피카소의 '피'자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가이드가 피카소가 초현실주의자여서 앞, 뒤, 옆얼굴을 한면에 그렸다는 얘기를 듣자 그게 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p.83-84
마음을 비우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무의식에서 억압하고 회피해 둔 것들을 끄집어내어 자기 것으로 인정하고 의식 속의로 통합하라는 뜻이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마음을 비우는 게 아니라 외면해 온 마음을 끌어안는 일일 것이다. 무의식 속 결핍, 결함, 결점들을 내 것으로 인정하자 내면이 가볍고, 환하고, 편안해졌다. 간혹 불편이 느껴지는 일을 만나더라도 이렇게 생각하면 금세 답이 나왔다.
 '지금 불편을 느끼는 내 마음은 무엇이지?'  

p.126
무력한 채 머물며 외부에서 오는 어떤 감정적 힘에도 대응하지 않을 때, 그렇게 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역전이 혹은 투사적 동일시 작용 때문이었다. 상대의 감정에 대응하는 순간, 고스란히 그와 똑같은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타인의 분노에 감염되어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일보다 허망하고 어리석은 일은 없었다.

p.132-133
공감이나 공명도 내면을 비워 내면 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지만 내면을 비우면 타인의 지혜와도 곧바로 소통할 수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저 마음이 네 마음이다."라는 요가 여행 지도 교수의 말씀이나, 
"온 인류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라고 하는 불교적 가치나,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이 다 같은 의미였음을 비로소 이해할 것 같았다. 모든 타인은 존중하거나 배우는 대상일 뿐이었다.



: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작가 자신의 경험을 풀어낸 책이다. 분명히 깊이가 있고 배울 점이 많은 듯 싶기는 한데, 선뜻 이해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아마도 용어들이 낯설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책의 목차는 네 부분인데, 그중 마지막 제목은 '정신분석을 넘어서'이다. 이 부분은 종교적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마무리를 이렇게 이끌어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돌아가셨을때 한 일간지에 기고한 추모의 글이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감동을 감사의 마음으로 배우는 모습이 아름답다.
(추모글 보기☞ 클릭!)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어한 부분이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인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를 작가가 정신분석 용어로 깨우치는 장면이다. 나는 여기서 '탐진치..'라고 중얼거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랫부분에선 작가 역시도 그런 언급을 한다.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나 역시 정신분석을 받고 훈습 과정을 밟아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작가와 나는 표현 방식만 다를 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