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2018. 3. 25. 19:13




일체진중역역시 (一切塵中亦如是) - 한 일, 모두 체, 티끌 진, 가운데 중, 또 역, 같을 여, 이 시

: 낱낱의 티끌마다 시방세계가 들어 있다.


황금으로 이루어진 섬에는 똥도, 돌도, 나무도 전부 황금일 뿐.

모두가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황금이기에 버릴 것이 무엇도 없다.

시방세계의 모든 것이 이와 같아서,

작은 티끌 하나 마저도 전부 하나의 재료인 황금과 같다.

티끌 속에 전체가, 온 우주가 담겨 있다.

오직 하나의 전체의식일 뿐, 분리되어 있거나 예외인 것은 무엇도 없다.


하나의 티끌이 바로 시방세계 이기에,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이라 해도 소홀히 여기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그 작은 티끌이 바로 온 우주이자 합일의 나 이므로,

세상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하나의 티끌은 또 다른 티끌을 비춘다.

향을 가까이 해서 향내가 나는 종이처럼,

서로가 서로를 비춤으로 하여 온 세상에 두루 편재하여 존재한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법성게2018. 3. 24. 22:12



일미진중함시방 (一微塵中含十方) - 한 일, 작을 미, 티끌 진, 가운데 중, 머금을 함, 열 십, 방위 방

: 한 티끌 가운데에 시방세계 담겨있고



분리된 듯 보이는 작은 티끌 하나 속에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전체가, 온 우주가 담겨 있다.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듯,

티끌과 우주가 하나이고,

내 생각과 견해가 바르면 곧 우주의 전체 의식과 일치하며,

망상이라도 곧 우주의 마음이다. _()_


말은 그럴듯 하게 하지만, 낡고 오래된 관념과 습관으로 인하여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잘못을 참회합니다. _()_

선지식 스승님 가르침 따라 꾸준히 꾸준히 나아가겠습니다. _()_


Posted by 보리바라봄
법성게2018. 3. 18. 15:04




일즉일체다즉일 (一卽一切多卽一) -  한 일, 곧 즉, 한 일, 모두 체, 많을 다, 곧 즉, 한 일 

: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이다.

 

(법성게의 '일즉일체다즉일' 구절을 보니 스님 법문 중에 '에고를 붓다로 꽃피워라' 가 떠올라서, 다시 들어보며 사유해 본다.

_()_)


쌀 한 톨 속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말이 있다.

작은 먼지처럼 보이는 하나의 쌀을 위하여 시원한 바람이, 속살거리는 비가, 따듯한 햇살이, 견고하지만 부드러운 땅이 자비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 톨의 작은 씨앗 속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 _()_

그래서 한 톨의 작은 씨앗이라도 결코 작지 않으며, 귀한 생명력을 발현시켜 다시 온 우주를 먹여 살린다. _()_

우주가 없으면 한 톨의 쌀이 없고, 한 톨의 쌀이 없으면 우주도 없다.

바다가 물방울이요, 물방울이 바다다.


이렇듯 하나 속에 우주가 담겨있음을, 하나가 곧 우주임을 진정으로 믿고 알게 된다면

하나가 드러내는 상은 진리의 아름다운 상이 된다.

삼독심의 개아가 아닌, 대자비의 여럿을 위하는 마음.

나와 상대를 구분하는 집착과 애착에서 벗어나 본래부터 하나임을 자각하여 평화로이 안주할 수 있다.

하나의 물방울은 전체 바다의 대자대비심으로 꽃피워져야 한다.

전체가 나임을 알면 당연하고도 자연스레 발현될 일이기에, 지금 당장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안달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본래 그러하므로 처음부터 안심하는 마음으로 출발하면 된다.

다만 깨우쳐 알지 못하였기에 어리석은 미혹을 살피고 또 살펴서 하나씩 하나씩 닦아 나아가면 된다.

그러다 보면 잘나고 못남 없이, 크고 작음 없이 평등한 지혜의 마음 속에서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보배인 다보여래, 대자비의 붓다가 발현된다. _()_

Posted by 보리바라봄
법성게2018. 3. 17. 10:33




일중일체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 -  한 일, 가운데 중, 한 일, 모두 체, 많을 다, 가운데 중, 한 일 

: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다.

 


(오랜만에 다시 시작해보는 법성게 공부. '-'

언제 법성게 공부를 했던가 하고 감을 잃은 느낌이지만. T-T 그래도 해봐야지!

어떻게 사유해볼까 하다가 '무아'와 연결시켜 봐야겠다 싶어 ☞ '무아를 모르면 생사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스님 법문에 의지하여 이해를 해보았다. )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다는 말은 '무아'를 의미한다.

별개로 동떨어진 고정된 '나', 단절된 '나'라는 건 없기 때문에 하나(바다)이면서 둘(물방울)이고,

둘(물방울)이면서 하나(바다)이다.


있었다가(생, 태어남) 사라지는(멸, 죽음) 모든 오고(들숨) 가는(날숨) 나는 둘(분리된 나)이다.

그 둘과의 동일시가 바로 무지무명이고, 어리석음이고, 미혹이다.

하지만 그러한 무명마저도 항상한 비어있음(허공) 속에 포함되어 있기에 전체,

'하나된 나'를 벗어나는 일은 결코 없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무명 속에 있을지라도, 처음부터 안심입명처 이다.

거짓된 자아의식에 대한 집착과 애착으로 인해 죽음이 존재하며, 헤어짐이 있다.

거짓된 자아의식에 대한 집착과 애착이 사라지면, 본래 대자대비한 성품이 드러난다.


완전하고, 원만하고, 항상하고, 맑고, 청정하고, 순수하고, 묘하고, 원만구족하고,
광대무변하고, 불가사의하고, 본자청정하고, 본무동요하고, 본불생멸하고, 본자구족하고,
능생만법하고, 걸림없이 통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 우리들의 마음은... 일체를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케 한다.

언제나 항상했던 그러한 마음이... 삼독심을 닦아내고 자유를 얻는다.


바다 속 하나의 물방울은 전체 바다가 마르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무량수 무량광 나무아미타불! _()_

Posted by 보리바라봄
법성게2016. 9. 11. 20:33
불수자성수연성 (不守自性隨緣成) -  아니 불, 지킬 수, 스스로 자, 성품 성, 따를 수, 인연 연, 이룰 성

: 본래의 성품은 드러나지 않으나 인연 따라 이뤄진다.

 

인연 따라 드러나는 상은 온 존재의 본래 성품 그 자체이며, 찰나찰나 생하고 멸하는 허상이나

그 근본자리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변하는 것이 드러나는 상의 본질이며, 어떤 고정된 상이 있다고 여겨 집착하게 된다면 고통이 뒤따른다. 드러난 현상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비어있음이 본질임을 알고 본다면 이는 허상에 속지 않음이며, 실제를 보는 것이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