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2012. 2. 2. 09:00





p.51
아메리카 이디언 '회색 올빼미'이자 영국인 아치 벨러니曰:
 "……그들의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과 애정의 속삭임, 자기들만이 아니라 우리들하고도 장난치며 뛰노는 그 멋진 교재력, 잽싸게 상황을 알아차리고 판단하는 그 기민한 자각력…… 그들은 우리가 그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어떤 다른 행성에서 온 난쟁이들 같았다. 그런 생물들을 죽이다니, 얼마나 극악무도한 짓인가. 나는 더 이상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p.63-64
동물들의 사랑이 입증되는 것은 부모-새끼 관계에서만이 아니다. 비버, 거위, 독수리, 늑대, 매, 펭귄, 스라소니, 퓨마 등 많은 동물들이 평생 동안 일자일웅 관계를 갖는데, 짝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너무나 헌신적이어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서로를 사랑하겠노라고 맹세한 대다수의 인간 부부들이 오히려 민망해할 정도다. 이처럼 동물들도 사랑을 주고받을 능력이 있고 또 그럴 필요가 있기에, 고통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인간의 무지는 여전히 계속된다. 동물들이 어떤 의미 있는 고통을 느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흔히, 동물들은 너무 멍청하기 때문에 자기가 다쳤는지도 모르고, 따라서 그들이 느끼는 통각이란 건 전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동물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양태의 그런 지능을 나타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멍청하다고 판단하는 쪽이 오히려 편협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무딘 지각력에 비추어 동물이 말을 못한다고 그들을 벙어리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의 자만심과 주제넘음, 바로 그것이다." (마크 트웨인)


p.224
 우리는 죽은 소의 시체를 보고는 "소고기 조각(side of beef)"이라고 부르고 주은 돼지의 시체를 보고는 "햄"이나 "포크"라고 부른다. 이처럼 우리는 모든 것을 동물의 관점에서 보지 않도록, 심지어는 동물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관점에서 보도록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온 것이다.


p.225
아마도 그 고모는 자신이 먹고 싶은 동물을 직접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녀 역시 고기가 실제로 어디서 나오는지를 상기하는 게 그리 달가울 리 없을 테니 말이다. 이처럼 우리들 대부분은 동물의 살을 먹고 싶어하며서도 동물의 피를 직접 보는 건 싫어한다. 자신을 살해자가 아니라 단순한 소비자로 여기고 싶어하는 것이다.


p.237
 유대 율법에 맞는 죽음은 이렇듯 실제 적용 과정에서는 율법의 본의를 소름 끼치게 왜곡하는 과정이 되고 말았다. 그 형식적인 교리 때문에 동물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마치 고문당하는 사람 같은 형국에 처해서 죽어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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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알고만 있던 책인데 도서관에서 누군가 읽고 반납했길래 나도 집어 들었다.
베스킨라빈스의 사장이 될 뻔 했던 존 로빈스의 책:)
책에서 소개된 동물들의 친근한 모습과 사랑의 표현은 감동적이고 신기하다. 이들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을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였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인간보다 지능이 낮은 생물들이라고 생각하고서... 우리와는 다른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는데도 말이다. 사랑스럽다! 
우리나라 축산의 현실이 궁금하다. 이런 류의 책들은 대부분 미국사람들이 썼던데, 우리나라는 책은 커녕 그에 관한 자료들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을 보면 책이나 동영상에서 접한 것보다는 잔인한 정도가 '덜하겠지' 싶기는 한데, 사료값이 비싸 아사하는 소가 있는 지경인 걸 보면 그리 나은 형편은 아닐것이다. 도살장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 축산농민들의 삶이 아주 힘겹다던데...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