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긍정일기2017. 4. 17. 21:27







내겐 고질적으로 '표현장애'가 좀 있는데,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다가 병이 날 지경에 이른다.
표현하지 못해서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채식'에 대한 부분인데,
오늘은 스치듯 흘려 들은 줄 알았던 '아무거나 잘 먹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말이 맘속에 걸려 계속 맴맴돈다.
그 말보다 더 싫었던 건 '그러게요.'라며 웃으며 답한 내 모습이었다.
하나도, 전혀, 조금도, 1도 '안' 그러게요, 인데.
나는 채식을 해서 이만큼 행복해졌고, '아무거나' 먹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는데.
표현하고 살아야지.
하고 싶은 말은 해야지. 안 그러면 정망 병이 되니까. 어느 노랫말처럼.


(이건 사실 간밤의 일기)



오이를 와그작 씹어 먹는다.
오이 하나가 주는 만족감이 심하게 크다.
신선하지, 충분하지, 경쾌하지, 향기롭지...
살을 뺀답시고 채소만 추려 먹는 짓은 못 하지만, 맛있어서 챙겨 먹는 건 잘한다. 쿄쿄.

오늘은 주변 사람에게 살이 쪘다고 얘기했다가 '명존쎄'란 말을 들었다.
명존쎄란 '명치를 존나 쎄게 때리고 싶다'는 말이란다. 거의 문화 충격적인 말인데, 뭔가 속 시원하게 웃겼다.
내 딴엔 손목시계가 낄 지경이 되서 심각했는데... 이젠 사람들한텐 말하지 않기로.

어젠 괜히 심난한 마음에서 벗어나지질 않더니만,
역시 사람들을 만나고 아이들이랑 부대끼다 보니 자체 힐링이 되었다.
김형경 작가의 책에서 문득 찾아오는 우울이란,
햇볕을 쬐여주거나, 몸을 움직이거나, 사람들을 만나면 된다는 얘길 읽었던 게 떠올랐지만,
요 얼마간 사람들을 잘 만나주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로 해결이 될 것 같진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문제였나보다.
아 이 소중한 사람들.
평일을 꼬박 채워 만나도 지겹지 않은 사람들.
내 머리가 어서 잘 어울린다고 말해, 눈빛으로 사인을 보냈는데 세상에 '돌 같다'는 대답은 또 어찌나 참신하고 재미있던지.

요가를 하면서 항상 신경을 쓰는 건 허리를 곧추 세우고 가슴을 활짝 펴는 일인데,
오늘은 요가샘의 '가슴 펴고'란 말에 너무 열심히 핀 나머지 요가샘께 웃음을 안겨드렸다.
바보같은 건데 뭔가 좋은 일을 해낸 기분이 든다.
마지막에 죽어 있는 자세로 누워 코로 숨을 쉬는데, 배가 따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여쭤보니 내 호흡이 짧아서 손을 잠깐 올리셨다고 했는데, 그런데 난 그게 아주 오랫동안 배가 보살핌을 받은 그런 느낌이었다. 색다른 체험.
눈을 떴을때 배 위에 아무것도 없어서 좀 놀랐다.


살이 찐 건 뭐가 잘못 돼서가 아니라,
보살핌이 필요해서 그럴 뿐이란 걸 알게 된 내가 참 자랑스럽다.
불과 한 달 하고 열흘 전만 해도 스스로를 비난하기만 했었는데... 대단해!


무지무명으로 지었던 지난 과거의 모든 잘못들을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_()_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