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할 것만 같았던 봄은 이렇게도 흐리게 흘러간다.
벚꽃이 만개하자마자 하늘은 구름들이 에워감쌌고, 서늘한 봄바람이 불었다.
벚꽃이 다 떨어질 때까지도 흐리던 하늘, 투닥투닥 흩내리던 비. 그리고 이제는 노오란 유채가 만발했다.
물론 늘 흐리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틈틈이 햇살이 내리 비춰질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마음은 평화로웠고, 포근했고, 따스했다.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냄비, 금이 간 그릇, 어떤 타박…
그런 것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렇게 쓰고 나면 내가 피해자인 듯한 느낌을 주지만
실은 내가 자진해서 그런 마음을 낸다는 것을 안다.
월요일 아침 쏟아져 내린 커피. 이 경험은 신선했다.
종이를 서서히 갈색으로 물들이던 커피가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했으니까.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서는 듯 했고 '내가 뭘 하고 있는거야' 싶었다.
나는 늘 우울한 마음이 찾아올때면 우울할리가 없다며 부정해왔다.
늘 기뻐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그걸 알고나서부터는 좋든 싫든 감싸안고 가기로 마음 먹었으나,
그런 마음에서 헤어나오는게 힘들었다.
그런데 이 쏟아져 내린 커피를 경험하며 순간적으로 우울한 감정에서 빠져 나오는 나를 보면서
어쩌면 자발적인 힘으로 벗어날수도 있는거겠구나 싶었다. 우울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빠져나갈 수 있는.
흐리지만, 그래도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