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틀을 정신 없이 보내고 드디어 한 숨 돌린다.

짧은 것 같으면서도 길었던 시간이다.

늘 이렇게 바짝 서있고 쉴 새 없는 날이 계속 된다면 오래 견디지 못하겠지만,

때때로 이런 시간이 다가오면 한층 자라는 것도 같다.

수용하는 폭이 넓어진다고 할까.

 

일은 밀려있고 몸은 바쁘면서도 마음이 바쁘지 않다는게 참 좋다.

2월은 특히 짧아서 어쩌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시간에 쫓겨 마무리를 여유있게 못 할지도 모르겠지만,

한꺼번에 모아 보지 않고 따로 떼서 작게 보려고 노력 중이다.

 

한 순간에는 하나의 사건만 일어날테니.

 

스트레스가 심할 법도 한데 의외로 몸이 가볍다.

요가를 하면서 느낀게 마음이 긴장하고 있으면 몸도 그렇다는 점이다.

실제로 느끼는 피로는 얕은데 요가를 하면 온 몸이 아플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가 느끼지 못하는 스트레스나 긴장감을 몸이 알려준다.

이번에도 혹시나 그런가 했는데, 괜찮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파인애플을 사왔다. 작은거 한 통에 2300원. 

파인애플을 봉지에 담기 전에 가게 점원이 "꼭지 따드릴까요?"해서 그런다고 했는데,

막상 '폭' 따인 꼭지를 보니 예전에 파인애플 머리에서 뿌리를 내리는 이미지를 본게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내가 머뭇거리며 보고 있으니까 "가져가실래요? 심어놓으면 나요." 한다.

이번에도 그러겠다고 하고는 따인 꼭지를 도로 담아서 집으로 가져왔다.

근데 그 점원은 어떻게 그런걸 알았을까? 여간해선 알기 힘든 사실인데.

 

농약이 떡칠이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사왔다. 먹고싶으니께.

몇일 전에 사온 베이킹소다로 파인애플을 씻는데 손 끝이 미끈덕 거렸다.

농약느낌인가.. 하면서도 이제 먹을거로 완전히 맑아지겠다는 생각은 버렸기 때문에 맛있게 먹기로 한다.

파인애플 껍질을 칼로 잘라내는데 요령 없이 너무 많이 잘랐다.

담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파인애플 머리에 달린 뾰족한 잎을 물에 담궜다.

 

글에는 힘이 있다. 확실히 그렇다.

좋은 글귀 한 문장, 좋은 책 한 권은 때로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 순간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느리게 자라는 머리카락 같다. 

말조심 해야겠다. 쓰는 언어를 조심해야겠다. 

 

궁극적으로 섬세해진다는 건 놓치지 않고 본다는 말과 같은 말.

서서히 흐르는 시간 사이에서 그 흐름을 읽어내는 것.

아직 그런 경지는 멀었겠다만, 그런 바라봄을 꿈꾼다.

 

오랜만에 아빠랑 통화를 하는데 아빠가 장염이라고 일도 안나가셨단다.

목소리에 힘이 없고 아픈 사람 티가 확확 나는데...

'아픔'이라는게 예전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다. 슬프기도 하고.

안 아프면 좋겠다. 건강했으면...

 

이~ 벌써 여덟시 반이 넘었다.

정신을 잘 차린다고 하는데도 돌아보면 빼먹은 것들이 보인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잊지 않게 해줘서 다행... ;)..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고 싶다.

 

아 오늘은 입춘이 시작되는 날인데 애들한테 말해준다는걸 까먹었다.

내일 알려줘야지.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