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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08 서울구경 8

현충일부터 주말까지 3일간의 연휴.
이번 연휴는 친척동생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까지 다녀왔다.
오랜만에 엄마랑 동생들이랑 바람쐴 겸 가는거라, 보고 싶은 얼굴들에게 연락은 못했다.
그래도 올핸 반드시! 내가 만나러 갈 것이니 혹여 알게 되더라도 너무 서운해 하지는 않기를.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들이 지나가 버린 것만 같아 뭐라도 기록해 두고 싶다.

원래 계획은 금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와 동생이 도착하기 전메 터미널로 미리 마중을 나가는 것이었는데,
간밤에 아주 늦게 늦게 잠든 나머지... 그럴 수가 없었다. 쩝.
열심히 책을 읽었고 (두근 두근 내 인생, 이번엔 밑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모기를 쫓았다.
-.-
올 여름 내 방에 첫 등장한 모기 두 마리가, 내 팔과 다리 여기저기를 물었다.
대략 10여 군데. 간지럽기보다 아리다.
내가 지금 채식도 완전 겉핥기로 하는 중인데, 그래도 살생하는 건 최대한 줄여보고저.
모기를 차마 죽이진 못하고 구멍 뚫린 일회용 컵으로 잡았다.
그리고 방충망을 열어 모기를 날려 보내면 끝. 혹여나 그대로 다시 들어오면 곤란하니, 공 던지듯 날려보낸다.
그러고 잠을 자려는데 또 들려오는 에엥~ 소리. ㅠㅠ
'뭐야, 두 마리야?'이러고 다시 불을켜고 안경을 집어 든다.
다행히도 신발장에 붙은 모기를 발견하고 또 한번 일회용 컵으로 잡는다.
이번엔 뭔가 벌을 주고 싶은 마음에
'좁은 공간에서 아침까지 한번 있어봐. 구멍이 뚫렸으니 숨은 쉴수 있을거야.'라고 생각을 했지만..
다시 맘을 고쳐 먹고 이번에도 창 밖으로 던져주었다.
그리고 내가 취한 행동은 잠자기가 아닌 스맛폰으로 모기장 검색하기 ㅋㅋㅋㅋ
시간은 새벽 네시를 향해 달려가는데 그거라도 하고 자야 맘이 편할 것 같았다.
모기와 같은 공간에서 사는 삶은 힘들 것 같고, 모기장이 최선이다.
가격대는 1만원에서부터 4만원대까지 다양한데 저렴하고 예쁘고 편한 걸로 찾고싶었다.
공주님 방처럼 커튼느낌 나는걸 캐노피라 부르는 모양인데, 알고 보니 그건 천장에 구멍을 뚫어야 해서 패스.
그래서 결국 예전에 쓰던 것처럼 원터치 형식인 걸로 알아놨다.
(하지만 뒷날 엄마와 대화 후 집에 남은 모기장을 챙겨오는 것으로 결정....;ㅋㅋ)

주저리주저리 밤을 보냈으니 일찍 일어나기는 커녕, 버스 시간에 늦지 않도록 터미널에 도착한 것 만으로도 다행.
그래두 빵이랑 커피는 먹고 싶어서 사려고 했는데, 엄마가 센스 팡팡 터지게 생협에서 빵을 사왔다 '0'
그래서 커피만 사서 서울로 고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 빵도 뜯어 먹고 커피도 홀짝이며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일하는 이야기를 해주고, 우리 원의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내 자랑을 하면 왠지 엄마가 기뻐할 것 같아서 내 자랑도 하고,
내가 괜찮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이런 저런 이야기로 공간을 채웠다.

엄마는 누구보다도 내 이야길 웃으며 들어주었다.

나는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이런 이야기가 그렇게도 재미있을까, 싶었다. 아이들이야 다 예쁘기는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예쁜가. 나야 항상 부대끼는 아이들이니까 그렇지만
삼자의 입장에선 그저 그런 아이들일텐데. 

그러면서 엄마는 "너는 심심할때 애들 사진만 봐도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엄마는 심심할때 할게 없는가봉가'

서울서 운현궁(흥선대원군)에 들러 잠시 쉴때 엄마는 이런 얘길 했다.
엄마는 이선희의 인연 노랠 들으면 내가 처음 대학 갔을 때가 생각이 난다고.
그러면서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다.
처음으로 자식을 떠나 보냈던 때인데, 내게 전활 걸면 컬러링으로 그 노래가 흘러 나왔다고.
나는 그 당시 왕의남자의 공길을 사랑했기 때문에 노래도 그걸 해놨던 거고,
컬러링 바꾸는 것도 귀찮아서 꽤 오랫동안 그 노래가 컬러링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내가 외지에서 혼자 학교에 다니는게 짠하다고 했었는데, 엄마는 별로 안그렇다고 했던 말을 들은게 기억에 있어서.
엄마는 그런 측면에선 그런가 보다 했는데. 사실은 그랬었나 보다.
두 세달에 한 번씩 집에 내려갔다 돌아올 때마다 눈물을 찔끔 거리고 있을때, 엄마도 그랬던 거구나.

나는 사실은..
엄마한테 서운한 마음 같은 걸 가지고 살았는데.
그 마음을 최근에야 혼자서 좀 풀었는데.
내가 엄마한테 서운해 한걸 엄마가 알면 더 많이 서운할 것 같아서,
차마 이 말은 엄마한테 전하지 못할 것 같다.

엄마가 마음 아파 하는 모습을 보고 걱정하는 모습을 봐야지만이 나는, 사랑 확인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이야기는 다시 버스 안으로.
서울 터미널에 도착해 여동생을 만났고, 우리 넷은 지하철을 타고 예식장으로 향했다.
이제 겨우 스물 다섯 먹은 친척 동생은 동갑내기와 결혼식을 올렸다.
오랜 연애를 하고 결혼한거라고 했다.
결혼식 내내 서로를 마주보고 긴장하지 않도록 애써주는데. 그걸 보는 내 마음이 뭉클뭉클 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엔 외삼촌 집으로 향했다. 금요일 밤 우리가 묵은 곳.
오랜만에 뵙기도 하고, 댁을 방문하는 건 처음이기도 하고.
함께 먹은 저녁은 감자탕이었는데, 나는 물이랑 사이다만 마셨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도 있었고, 내가 먹지 않는 메뉴이기도 했고...
그런 자리에선 뭐든 맛있게 먹어줘야 하는데, 그렇게 앉아 있었던 것이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잠을 자기 전에 TV를 보며 사촌동생과 숙모와 정치 얘기를 잠깐 했다.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견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감지할 수 있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생각도 다른 것이겠지.

다음날 아침, 삼촌은 우리가 처음 이동할 장소로 데려다 주셨다.
그때 더 많~~~이 기뻐하고 감사를 표현했어야 했는데, 참.


우리는 인사동을 거닐고, 경복궁에도 가고, 북촌마을에도 갔다. 끝으로 들른 곳이 운현궁이었고.
너무 이른 시간에 가서 그런가 인사동은 한가했다. 그래서 경복궁엘 먼저 갔는데,
때마침 그곳에선 행사를 하고 있었다. 나발도 보이고, 북도 보이고.. 

경복궁을 보고 나서 간 곳은 인사동. 아기자기 예쁜 것, 볼거리들이 너무 많아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참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내가 제일 여기저기를 기웃거린 것 같다.
우리나라 전통 공예물들을 파는 것처럼 생긴 가게가 무지 많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 같은 걸 대량생산 해서 판매하는 것 같다. 작은 주머니 같은게 필요해서 조각보 무늬가 들어간 걸로 하나 골라 샀는데, 속에 'made in china'를 보고 깜짝 놀랐다.
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향한 곳은 '오세계향'!
캬아.. 드뎌 이곳을 와보는 구나.
눈팅으로만 많이 봐왔었는데.

여동생이 나를 위해 부러 데리고 간 곳. ㅠㅠ
얼마나 오랜만에 와보는 채식 전문 식당인지.
정말 오랜만에 맘 편히 맛있게 먹은 식사였다.
짜장면, 탕수육, 비빔밥, 콩비지 찌개..
난 콩비지는 평소에도 안좋아하는데, 남동생이 먹어보고 싶다며 시켜놓고는 먹는 내내 툴툴 거렸다.
콩단백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콩비지에서도 난다며. ㅋㅋㅋㅋ
어쩌라고. 맛만 좋구만.
그래도 남동생을 달래려 식사 후에 식혜 한잔을 사줬다.
그런데 거기서도 하는 말, "식혜는 할머니 식혜가 최고인거 같아."
으이구 이 불만 덩어리.
ㅋㅋㅋㅋㅋ


음... 식사 전 후에 길거리에서 마주한 외국인이 있었다.
아마도 인도의 성현 한분께 가르침을 받으며 수행하는 사람인 것 같다.
우리나라 옷으로 치자면 황토로 염색한 듯한 편한 옷을 입고, 머리는 밝은 노란색인데 말 꼬랑지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그랬나, 그 사람은 도시에 우뚝 솟은 유니콘 한 마리 같았다. 어떤 이상향을 가진.
어떤 책자를 나눠주는데 그걸 받아가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도 그냥 지나치려다가, 호기심이 발동해서 한권 달라고 했다. 그리고 돌아서려는데, 내게 기부(?)를 해야한다고 했던 것 같다. 정확한 단어는 생각나지 않지만.. "오천원 정도"라고 얘길 해서, 나는 오천원을 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두유 노우 요가?" 하고 물었고, "왓츠 유얼 네임?"하고 물었다. 나는 한국 말로 "네 알긴 알아요"라며 이름을 얘기했고, 그 사람은 자기 이름이 '리와'라고 했다. 사실 이 이름도 정확하지가 않다. 눈빛이 선하고 표정이 다정해서 인상이 깊었는데, 나는 왠지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져서 그 순간에 깊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만났다가, 밥을 먹고 나와서 한번 더 마주쳤다. 리와는 내게 인사를 건냈고, 나는 "바이바이"라고 말했다. 으으... 한참 후에 만원 정도는 더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생겨서 한번 더 마주치면 주려고 지갑에서 미리 꺼내놓았는데, 아쉽게도 다시 그 자리에 돌아갔을 땐 그가 없었다.
나도 궁금한게 많았다. 이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지, 뭘 전하려는 건지, 밥은 먹고 하는지.
'당신은 아름답다, 어디서 왔냐, 고맙다, 행운을 빈다' 이 정도의 영어는 열등감 없이도 할 수 있었는데. 참.
오세계향에서 가져온 책자도 두 권 있는데, 조만간 찬찬히 들여다 봐야겠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남동생은 노래를 부르던 한 남자 앞에 멈추더니 내게 '천원짜리가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니가 마음에 들면 니 돈으로 주라'고 했고, 남동생은 오천원짜리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피오나 애플의 across the universe를 부르고 있었다. 원곡은 비틀즈라지.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판매하는 사람들, 반짝이는 팔찌와 각종 악세사리들. 북촌마을 전망대서 보았던 지붕들. 그 위를 걸어다니던 키티(아기고양이). 바람을 맞으며 마시던 아메리카노.

서울, 하면 떠오르는 건 무시무시한 지하철이라, 그런 곳에서 사는 것은 엄두도 못 낼것 같다고 여겼는데 이번 서울 구경은 '살아볼만 할것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숨을 쉴때마다 폐로 들어올 매연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답답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은. ㅋ


여동생을 서울에 남겨두고 엄마와 나, 남동생은 다시 내려왔다. 엄마랑 남동생은 나 혼자 생활하는 1인 가구에서 잠을 청했고, 오늘 다시 집으로 떠났다.

끝으로 사진 몇 장.











우와.. 잠깐(?) 사이에 뜨끈뜨끈 소독된 이불!
햇님은 정말 보배다.
다시 찾아올 월요일을 위해, 남은 일요일 오후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 + 엄마는 인사동을 구경하던 중 혼자서 여기 구경만 해도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엄마가 요즘 많이 외로운가 싶다. 엄마랑 여기저기 많이 놀러 다녀야겠다. 이야기도 많이 하고. 인사동서 엄마가 사준 지압 도구를(회양목으로 만든) 굴릴 때마다 엄마 생각을 해야지. )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