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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17 생애 첫 나홀로 여행 in 부산 / 2014 인디고 유스 북페어 8
카테고리 없음2014. 8. 17. 11:17


지난 휴가때 계획했던 부산 여행.
하지만 막상 떠날 시간이 있었음에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렇게 계획은 무산되고…

이번 여행은 굉장히 즉흥이었다.
실은 친구들과의 계획이 먼저였고,
그러다 가족여행으로 변경이 되었는데
결국 가족여행마저 무산되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나 혼자 떠나는 것이었다.


 


2014 인디고 Youth Book Fair
달력 귀퉁이에 적힌 글씨들을 본 순간 '떠나야지' 싶었다.
글씨를 쓰면서도 이번에도 놓쳤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기회가 생기다니!

여행을 결심했을땐 이미 참여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시작될 참이었다.
(낮잠을 자느라 그걸 모르고 있었다지...)
그러다 문득 시기적으로 적절히 맞아 떨어진 다는 것을 느꼈을 때
급작스레 부산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이 모든 것은 두 시간 안에 실행되었다.
'꿈을 살다' 라는 문구로 내게 의미가 되었던 인디고 서원.
5년 만에 다시 찾으려니 감회가 새로웠다.

순발력 있게(?) 필요한 짐들을 꾸렸다.
갑작스레 결정한 것 치곤 마치 미리 계획한 사람 처럼
순조롭게 준비할 수 있었다.

부산으로 향할 터미널에 도착해서는
책을 구입하는 여유까지 누리며.


그러나…


'기왕 자는거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면 좋겠지'
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택한 광안리는,
한참 휴가철인 덕분에 사람들이 북적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던 것은 아니었는데,
잠잘 곳이 없었다.
내가 도착한 시각은 거의 밤 12시가 다 됐을 때인데
그때만 해도 그렇게 잘 곳이 없을 줄은 몰랐지.

우선은 미리 알고 있었던 해변이 보이는 찜질방으로 갔는데,
여자 열쇠는 다 나가서 방이 없다고 했다.
나는 쉽게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아 떠났다.
그 옆에 있는 찜질방도, 그 옆에 있는 모텔도 빈 자리가 없었다.

사실 모텔 같은 곳에서는 자고 싶지 않고,
게스트 하우스나 찜질방이 좋았다.
빈 자리가 없는 것은 계획 없이 떠난 것 때문이었으니 할말이 없다.


 

 

 


온 김에 모레 사장이나 거닐어 보자 하고 모레 사장을 걸었다.
그때 들려오던 파도 소리…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폭죽을 터뜨리면 벌금이 있다는 플래카드가 있었음에도 폭죽을 터뜨렸다.

나는 그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모레 사장을 다 걷고 나서 반대편의 숙소를 찾아보았으나,
현란한 노랫소리와 클럽 분위기의 술집들,
고깃집, 횟집, 그리고 모텔.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다며 자려고 했으나,
나를 받아주지 않은 것은 모텔도 마찬가지였다.
입구에서 부터 '빈 방 없음'이라고 써 붙여 놓은 곳이 대다수였다.
겨우 찾은 게스트 하우스는,
한 밤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드렸더니
"지금이요? 없습니다."했다.

핸드폰 배터리는 다 떨어져 가고…
편의점에 들어가 충전을 하려고 했더니 70% 충전을 해주는데 35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그냥 나왔다.
그러다 정처 없이 거닐며 생각한 것은.
'그래, 춥지도 않은데 바다 옆에서 자지 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찜질방에 가서 씻으면 되고'

이상하리만치 상황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걱정이 되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러다 문득 후박나무님이 떠올랐다.
후박나무님도 여기 부산 어딘가에 계실텐데…

거의 포기할 때가 되었을 즈음,
저만치 걸어가다 다시 모레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가려는데
나와 반대 방향으로 지나가고 있던 택시가
'빵'하고 클랙슨을 울렸다.
나는 모른 척 했다. 택시를 탈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굳이 방향을 바꾸어 내 쪽으로 와서는
어디로 가냐고 물으셨다.
나는 우선 택시기사 아저씨의 인상을 살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인상이었다.
좋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으므로
그냥 택시를 탔다.

눈은 족제비 같고 몸집은 푸근했는데
말투가 조금 어눌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내게 이곳 지리와 어느 곳에서 묵으면 좋을 것인가를 설명해 주셨다.
'여기는 성수기라 빈 곳이 없으니 조금 떨어진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
'내일 찾아갈 곳이 어디냐. 그 부근으로 가자'며.
그래서 내일 목적지를 알려드리고
처음에는 숙박할 곳이 모여 있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찜질방으로 가자고 말했다.
아저씨는 처음부터 택시비가 얼마 나올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고,
정말 그렇게 나왔다.
택시비가 숙박비보다 더 많이 나온 상황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나는 잠 잘 곳을 얻었고, 저렴한 값에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지하철로 광안리까지 오면서
지하철 노선도를 봐둔 것이 있어서
몇 노선 되지 않는 것 같던데 왜 이리 머냐고 물었더니,
지하철로는 가깝지만 차로 가면 멀다고 하셨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내일 어디서 몇번 버스를 타고 가면 되는지 까지 알려주셨는데
이상하게 그 버스 번호들이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
광주에서 살면서 몇 번 반복해서 타는 버스도 탈때마다 번호를 확인하는 나인데.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은 지하철이 없다고 하셨던 것인데,
내가 이해하기로는 벡스코까지 가는 지하철이 없다는 말씀 같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묵은 곳에서 그곳으로 가는 지하철이 없다는 말씀이셨나 싶기도 하다.

택시에서 내려서 인사를 드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찜질방 안으로 향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착한 척을 하느라 한번 더 인사를 드렸을 것 같은데.)
여러 곳에서 거절을 맛본 터인지라,
벽임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맞이해 주고, 
8000원에 잠자리와 씻을 물을 제공해 준다니,
여간 고마운게 아니였다.

관광지와는 조금 떨어진 곳이라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 점이 특히 좋았다.

그냥 씻기만 하면 될 것을 굳이 욕탕에 들어가서 뜨끈한 물에 호사도 누렸다.

핸드폰 배터리는 두개 다 1층 카운터에 맡겨 두고,
손목시계 하나에 의지한 채 잠이 들었다.
새벽 두시가 넘어가는 시간.

그리고 아침 여섯시가 되자 눈이 떠졌다.
더 자야지 싶어 15분 가량을 뒤척이다가, 잠이 오지 않아서 아예 눈을 떴다.
가벼운 마음으로, 또 뜨끈한 물과 미지근한 물에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아주 여유롭게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북페어 시작 전까지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카페로 가서 브런치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벡스코 부근에는 눈에 띄는 카페가 없었다.
있더라도 문을 닫았고.

길에서 대충 먹거리를 챙겨먹고
(근데 무지 맛있었다. 'o'...)

벡스코 앞 벤치에 앉았다.

무슨 행사가 있는건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깔깔대며 떠들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매력이 느껴지는 타입들은 아니였지만,
웃으며 장난치는 모습들이 보기에 좋았다.
 
저기 멀리서는 4~50명의 아이들이 단체로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내가 이동을 할때까지도 (한 시간이 넘게)
계속해서 앉아 있었다.


 


행사를 시작하기 30분 전,
문득 내가 참여 신청을 마감 후에 했다는 사실이 기억이 나서
미리 가서 기다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부터 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STAFF'라고 적힌 목걸이를 두른 아이들이었는데,
아마도 정세청세 아이들, 인디고 아이들인 것 같았다.
(* 정세청세: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

신청을 늦게 했지만 신기하게도 내 이름이 신청자 목록에 적혀 있었다.
대신 음영이 살짝 어둡게 되어 있고, 전화번호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 번호를 적고,
신청한 사람 200명 중 오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경우 1번으로 들어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 나는 광주에서 출발을 했을 때부터 못 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신청한 사람들 중에서도 오지 않을 사람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혹여 다 오더라도, 꼭 듣고 싶다고 간청하면,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다리는 동안 인디고 서원에서 나온 공책과 다이어리, 볼펜과 포스터 들을 구경했다.
아 - 정말 내 취향.
택배비 때문에 (또 구입 과정이 보통의 쇼핑몰과는 다르므로) 선뜻 구입하지 않았던 것들인데,
실물을 보고 나니 구입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이 3분기로 접어들기 직전인 마당에
공책인줄 알고 산 다이어리는, 공책 역할도 충실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볼펜과 포스터도 하나씩 구입했다.
뭣보다 포스터가 정말 마음에 든다.
파란 배경에 깨끗한 인상을 주는 여자가 달을 향해 입을 맞추고 있는 모습.
예전부터 갖고 싶었는데 정말이지 반가웠다.
부산에서 광주까지 공수해 오느라 구김이 조금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만족스럽다.
포스터는 지금 현관 안쪽에 붙어 있다.

 

 


그렇게 기다리고 만난 사람은
윤호섭 선생님.
디자이너라고도 불리우고, 예술가, 화가, 교수님, 아저씨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우는 것 같은데
나는 선생님이 편하다.
벽에 붙어있던 것들을 가방에 싸들고 와서 전시 하셨다는 전시물들.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인데도, 지극히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개인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처음 만난 인디고 서원에선 (2009년) 생태지향적인 느낌은 그다지 받지 못했었는데,
최근에는 그쪽 분야에도 활동 반경을 넓히는 느낌이다.
생태지향적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표현하자면 그렇다.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과도 더불어 살아가는.

나는 누가 보면 주책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손을 들고 질문 기회와 대답 기회를 잡으려 했다.
나는 손만 들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단 기회를 잡기가 어려워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았다.
어느 곳에서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까?
(아 맞다. 우리 아이들은 이보다 더 하지 ㅋㅋㅋㅋㅋㅋㅋ)

 

 

 


운이 좋게도 커피로 만들어졌다는 컵을 선물 받고,
또 운이 좋게도 헌 옷에 페인팅을 해주시는 이벤트에 당첨이 됐다.

그래서 가져간 옷에 초록색 물감으로 돼지 코를 그렸다.
이 돼지 코는 구제역 당시 산채로 생매장 되던 동물들을 상징하는 것인데,
솔직히 티셔츠에 그리고 싶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 그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그림 자체만 보면 귀여운 느낌을 주었기에,
등짝에다가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드렸다.
제일 그리고 싶은 그림은 따로 있지만,
그려주시는 그림들 중에서는 별을 그리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돼지코 그림을 그리길 잘한 것 같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옆에 앉아 있던 스무살 친구가 내게 밥을 같이 먹자고 얘기 했다.
몇 마디 주고 받았을 뿐인데 선뜻 그런 얘길 먼저 꺼내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동행한 친구도 한 명 있다고 했는데, 그 친구도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나는 희안하게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고기를 먹지 않는다며 채식 식당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 친구들은 흔쾌히 그러자고 했고 그렇게 '재크와 콩나무'에 가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실은 부산에 오기 전부터 가고 싶었던 식당 중에 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벡스코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남천역 5번 출구) 식당이 있었다.
아마 이 친구들이 아니였다면 나 혼자 가서 먹었겠지만
덕분에 풍성한 대화와 함께 식사를 나눌 수가 있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지극히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둔 것들에 관해 나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게다가 무게를 두지 않고 가볍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관계에서도 그랬다.
꼭 연락하자거나 반드시 다시 만나자는 약속 없이,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좋은 경험이었다.



다시 홀로 떨어져 나와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보수동책방골목에 가려고 했으나,
거리와 시간의 한계에 부딪혀 사상터미널 가는 길목에 있는 서면역에서 내려 카페로 향했다.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고른 '기린'이라는 카페에 가려고 했지만, 찾지 못하고
분위기 좋고 한적한 카페로 들어갔다.
시끄럽지 않아서 좋았고, 친절한 종업원이 좋았고, 시원한 드립 아메리카노가 좋았다.

이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다시 광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오는 동안 책을 읽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잠자고 있던 상상력이 깨어나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을 테지만,
그동안 잊고 지냈던 능력이.

여러 모로 도움 받은 일이 많았던 여행이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였지만,
이토록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었 던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아 좋다.


선선한 바람, 혹은 싸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에
촛불이 고요하게 타오르는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저마다 자기만의 공간을 가진 사람들을.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