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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28 다시 안경 6
느낌과 기억의 기록2013. 9. 28. 19:00



안경. 안경을 다시 쓴다. 렌즈를 끼지 않게 된 것은 수영장에 렌즈를 끼고 갔다가 각막염에 걸린 후 이다. 안경을 쓰지 않게 된 것은 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놓아버리려는 마음(이건 어느 정도 까지만 나의 의지였다), 시력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마음, 귀찮음, 외적으로 별로임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안경을 쓰게 된 것은 순전히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일단 얼굴처럼 매일 들고 다니려면 잘 보이는 것은 당연한 거고 외적으로도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골랐다. 처음부터 사려고 계획했던 디자인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내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랐다.

안경을 썼더니 무언가 사물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내 눈과 외부 환경 사이에 놓인 안경알 때문이겠지. 창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 때문에 이 느낌을 안경 창문이라고 부른다. 이 안경 창문은 요즘 나 자신을 멀리 떨어뜨려 놓고 객관화 시켜 보려는 나의 관심부분에 시기 적절히 어울린다. 특히 화가 났을때 요긴하게 쓰인다. '그는 ~했을때 ~하는 마음이 들었다'라는 솔직한 감정을 내것이 아닌냥 한번 받아들이고 보낼 수 있다는 것. 이 감정은 뭔가가 잘못됐다고 나 자신을 부정하기 보다, 그저 순순히 인정하고 가볍게 넘기는 데엔 이 방법이 아주 좋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다고 해서 아쉬울 것은 별로 없었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멀리서 오는 버스의 번호가 헷갈린다는 것 정도였고 그 외의 것은 어느 정도 감안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하늘의 달이 두세개로 번져 보이는 것은 좀 아쉽게 느껴졌었다. 달의 무늬도 보이지 않았고 말이다. <달 샤베트>란 동화책을 보고 나선 그 마음이 더 강해졌다. 

안경을 쓰고서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과 눈을 더 자주 맞출 수 있어서 교감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것이다. 또 어른사람들과 대면을 할때도 서로의 눈빛을 좀 더 정확히 잡아낼 수 있기에 대화에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서로를 알아간다는게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제껏 인간이란 배타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흐리던 얼굴들도 잘 보이고. (어떤 사람은 자세히 보니 더 예쁘게 보이고, 어떤 사람은 흐렸을 때가 나았다.) 특히 표정들이 또렷하게 보여서 좋다.

그리고 또 하나. 오고 가며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한번이라도 더 눈길을 주게 된다. 어떤 얼굴들이 있는지, 어떤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안경으로 인해 얼굴에 무게가 실리고, 이미지가 달라보이지만 요즘 나는 좋다.

한동안 매일 뒷골이 땡기더니 조금 더 나아지려고 그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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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보잘 것 없는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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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커 버스커 2집 좋다.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