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5.29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 4
  2. 2011.05.05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 변현단
느낌과 기억의 기록2011. 5. 29. 00:35



변현단님의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를 읽고 -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

이정아 


 나의 주식은 현미밥이다. 그리고 반찬은 채소류다. 채식위주의 식생활 때문이다. 채식은 올 봄부터 시작했고 현미밥 먹기는 여름부터 시작했다. 현미는 씨눈이 달려있는 살아있는 씨앗이라 그런지 몸이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싱싱한 채소류는 내 성질을 온순하게 만든다.

 채식에 관심을 갖고 실천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이웃 블로거로부터 '연두농장'이라는 곳을 소개받았다. 요즘 마음을 두고 있는 곳이란다. 평 나와 관심사가 비슷하다고 느끼던 블로거였기 때문에 주저없이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도시 외곽에 있는 유기농 공동체'. 연두농장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변현단'이라는 이름이 들어온다. 누군가 했더니 연두농장의 대표다. 가장 최근에 쓴 책이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라고 ……. 오옷!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안 그래도 산과 들에서 나는 풀들 중에 어떤 풀을 먹을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길로 서점에 달려가 책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 황대권씨의 '야생초 편지'를 읽고 크게 감동을 받은 일이 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내 손은 직접 풀을 따고 있다.

 

 책을 들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책 속의 잡초를 찾아보기 위해서다. 집 바로 뒤에 있는 '닭의 장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릴 적에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최근에는 분명 처음 보는 것이다. 나의 무심함이 어느 정도 인지 실감이 났다. 파란 머리를 들고 수줍게 피어 있는 꽃이 먹을 수 있는 풀이었다니! 여려보이는 이파리들을 하나 둘 떼어냈다. 꽃 송이도 몇 개 따고 말이다. 맛을 보면 왠지 질길 것 같다. 대나무 잎이 생각이 나서 …. 그리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 닭의 장풀을 소금물에 데쳤다. 그리고 참기름과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해서 먹어보았다. 처음으로 잡초를 뜯어다가 맛을 보는 순간이다. '오호……!' 느낌이 오묘하다. 생각처럼 질기지가 않고 씹는 맛이 꼬득꼬득 하면서도 부드럽다. 자꾸자꾸 먹어보니 맛이 좋다!

 다음날이 되자 나는 2차 잡초 채취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명아주'와 '질경이'도 눈에 들어온다. 이런 풀들도 먹을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릴 적에 토끼가 잘 먹는 것은 보았지만 말이다. 명아주는 그렇다고 쳐도 질경이는 더 못미더워 보였다. 괜히 미운 인상이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질긴 놈이라서 '질경이'라는데 어쩐지 얄미워보였다. 나는 도대체 어디서 그런 못된 심보를 배웠을까? 그런데 질경이는 그런 나의 못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의 발에 밟힘으로써 살아간다고 한다. 씨앗이 발바닥에 붙어 자손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진실로 자연의 생명력은 놀랍다.

 산책로를 따라 주위를 둘러보니 '개여뀌'가 보인다. 깨알같이 붙어있는 분홍색이 개여뀌의 꽃이란다. 이 풀도 어릴적에 자주 보았던 풀이다. 이름이 왠지 어울이지 않는다. '개'하면 하찮을거란 인상을 가지고 있는 내 선입견 때문일까? 하지만 개여뀌는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그곳에서 주위에 오염된 것들을 정화시켜주고 있으니 말이다. 수줍은 분홍빛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진다.

 몇 발짝 더 걸으니 '미국자리공'이 있다. 열매 하나를 떼어 손으로 뭉개보니 보라빛 검은색이 손에 묻어난다. 역시 어릴적에 자주 보았던 풀이다. 어쩌다 이렇게 내 기억속에 남아있다가 이제야 다시 눈에 들어오게 된 걸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나는 왜 그리도 무관심했을까? 보라빛 손을 보고 있자니, 열매로 즙을 내어 염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저쪽 들에선 강아지풀이 넘실거린다. 종류도 다양하다. 머리에 금빛 테두리를 두른 녀석도 있다. 예전엔 알지 못했던 '비름'과 '쇠무릎'을 발견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그 말이 꼭 맞다. 잎을 떼어 등에 붙이고 놀았던 '환삼덩굴'도 보인다.  

 명아주와 질경이, 비름나물을 한데 모아 감자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항상 두부와 양파만이 들어있던 된장찌개에 푸른 채소가 들어있으니 색다른 느낌이다. 나야 이제 '잡초도 먹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졌으니 별 거부감이 없지만 동생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래서 한 번 먹어보라고 권했더니 의외로 거부감이 없다.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더니 군소리 없이 잘 먹는다. 야호! 뿌듯하다.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다.


 벌써 가을의 문턱이라는 것이 아쉽다. 새싹이 돋아나는 봄의 계절이었다면 좀 더 다양한 잡초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숨은 그림을 찾아내듯 나물들을 찾아내고 말이다. 달래, 냉이, 소리쟁이, 지칭개, 제비꽃. 봄이 오면 바구니와 삽을 들고 산으로 들로 나가봐야겠다. 그리고 여름에는 뱀딸기와 달맞이꽃도 맞이해야지.

 내가 알면 먹을 수가 있는 잡초. 잡스러운 풀에서 가치있는 풀로 탈바꿈 한다. 언젠가 '왕고들빼기'를 두고 친구들에게 먹을 수 있는 풀이라고 했더니, '말도 안돼'라며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 적이 있다. 우리집에선 '씨아똥'이라 부르며 어릴 적부터 비빔밥에 넣어 먹어왔기 때문에, 내겐 전혀 이상한 풀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쌉싸름한 맛이 일품인 풀. 내겐 의미가 있는 풀이었지만 친구들에겐 단지 잡초였을 뿐이었다. 


 세상에 가치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있다. 즉 쓸모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잡초를 쓸데 없는 것에 비유하고, 사람 역시 잡초같다며 의미 없는 존재로 치부하기도 한다. 무가치하다는 생각에 의해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명감을 띄고 태어나는 것이다. 식물이 날때부터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면, 사람은 그 것을 찾아내야만 하는 운명을 지녔다.


 도시는 갈수록 삭막해진다. 이제는 많은 일들을 기계로 처리한다. 사람이 더이상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느끼며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울증과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사람이 사람다워야 할 것을, 너무 많은 부분을 기계에게 내어줘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돈으로 먹을 것을 사고, 돈으로 옷을 사고, 돈으로 집을 산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한다. 때문에 돈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고 돈이 없으면 스스로 할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게된다. 따라서 자기가 하는 일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었으며 그 밖의 일은 쓸데 없는 것이 됐다.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 바로 '의식주'라 불리는 것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집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돈을 모으는 데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건강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점점 세련되어 지고 자꾸자꾸 뿜어 나오는 상품에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새로 나오는 상품은 끝이 없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집 마저도 손으로 직접 지어 살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자기가 살 집을 다른이의 손에 맡기는 것은 사람만이 유일하다고 한다.

 

 대학교 4학년인 나는 졸업을 앞두고 한참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맞춰서 기업에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든지,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든지 해야한다. 그에 따르는 책임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의 방식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만든다. 텃밭에 씨앗을 뿌리고 먹을 것을 가꾼다. 꽃과 나무를 심고 곤충들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호밀과 국화를 함께 심는다. 야생식물 나물밭도 있다. 곁에 더불어 자라나는 잡초들은 나의 훌륭한 먹을거리가 된다. 땅이고 약이고 음식이다. 잡초를 뽑지 않으니 자연스레 일거리가 줄어든다. 농약과 제초제도 치지 않는다. 비닐 역시 마찬가지다. 있는 그대로의 유기농 방식이다. 피어나는 꽃들은 차로 만든다. 나를 찾아온 손님들과 담소를 나누며 그 맛을 음미한다. 몇 송이를 꺾어 손님 돌아가시는 길에 선물하기도 한다. 그 자리에서 독식하지 않는 풀들을 나 역시 독식하지 않는다. 곁에 지내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며 건강한 몸을 지켜나간다. 자연이 스스로 그러하듯 나 역시 마찬가지로 자립을 꿈꿔본다. 


 자연은 순환한다. 획일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돌고 도는 것이다. 땅에서 돋아난 생명들을 생명이 먹고 다시 생명을 낳는다. 공존과 상생이 조화롭게 이어진다. 이 땅에 태어난 것이라면 으레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그것이 모두가 다양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 순환의 고리를 자꾸 끊으려고만 한다. 영화 <매트릭스1>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간은 포유류가 아니야. 모든 포유류는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그런데 인간은 자연자원을 모두 소모해. 그러곤 옮겨가지. 바이러스처럼.”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인간은 질병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암적인 존재. 나는 이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암적인 존재가 아니라 더 잘 살아갈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될 것이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그 가치를 느끼고 깨달을 것이다. 우리가 진짜 알아야 할 것들을 보듬어 가면서……. 자연은 왜 지켜야만 하는가? 그것은 인간 역시 자연이기 때문이다.  


 곧 추석이 다가온다. 이번 연휴는 대학수업 휴강까지 더해져서 유난히 길다. 가을은 쇠무릎이 제철이라지? 이번에 집에 내려가면 쇠무릎을 찾아야 겠다. 신경통이 있는 엄마를 위해서. 뿌리를 캐서 물에 씻어 햇볕에 말릴 것이다. 자연의 축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1. 5. 5. 19:35


2010.09.14 20:37


p. 64

 한 땅에 한 개의 잡초가 있다면 자신이 끌어들이지만 만약 여러 개의 풀이 있다면 영양분을 다른 개체들과 나눈다. 즉 독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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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쓰려고 하는데 감이 잘 안잡힌다. 킁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