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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30 금수 (錦繡) - 미야모토 테루
책 읽기2016. 4. 30. 18:23

 

 

 

 

 

 

소설 속에 나오는 <모차르트 39번 심포니>

 

 

 

 

p. 19

 아아, 별들이 어쩌면 그렇게 쓸쓸하던지요.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별들이 어쩌면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던지요. 저는 당신과 10년 만에 도호쿠의 산속에서 뜻밖에 재회한 것이 어쩐 일인지 무척 슬픈 사건처럼 느껴져 견디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것이 슬픈 일이었던 걸까요? 저는 얼굴을 들어 별을 바라보면서 슬프다, 슬프다,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한층 슬픔이 더해지더니 10년 전의 그 사건이 스크린에 비치듯이 되살아났습니다.

 

 

 

p. 86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어쩌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아주 불가사의한 것을 모차르트의 부드러운 음악이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슬픔과 기쁨의 공존을 사람들에게 전해 줄 수 있었다, 그걸 묘한 음악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선율로 싸서 아주 간단히, 게다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면서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이 모차르트라는 사람의 기적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인의 눈에 꼼짝 못하고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표현으로 대답했습니다. 어쩌면 조금 점에 갑자기 제 머릿속에 떠오른 '죽음'이라는 말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서 저는 그 말에 조종되어 실제로 생각하지도 않은 말을 해 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p. 100

 저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습니다. 어느덧 마음속에서는 불길도, 나무가 튀는 소리도, 주인의 모습도 사라지고 당신과 처음 만났던 대학 시절의 여름날 나무 그늘 아래의 시원함, 당신과 손을 잡고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던 미도스지 국도의 자동차 후미등의 그 어렴풋한 빛, 아버지에게 당신과의 결혼 승낙을 받아 내고 너무 기쁜 나머지 갈 곳도 정하지 않고 한신전철을 탄 날 차창으로 보였던 고베 앞바다의 개개풀린 반짝임등이 <39번> 심포니와 한 덩어리로 어울려 어떤 아련한, 말이 되지 못한 생각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주인이 말한 우주의 불가사의한 구조, 생명의 구조라는 말이 간직하고 있는 어떤 것을 저는 아주 한순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과 한순간의 일이었습니다.

 

 

p. 116

 아가씨한테는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게 주인의 의견이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가씨가 여성으로서 아마 크고 깊은 슬픔을 겪은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으로서, 게다가 그 젊은 나이에 모차르트의 음악이 가진 비밀을 한순간에 저보다 선명하게 읽어 낼 리가 없거든요.

 

 

p. 148

 저는 조금 전에 자신이 행한 악과 선의 청산을 격렬한 고통과 함께 강요받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고 썼습니다. 그건 잘못된 말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쓰면서 기억을 깊이 파헤쳐 보니 자신이 행한, 아니 행하지 않았더라도 마음속에 품은 악과 선의 청산을 강요받고 정신이 이상해질 만큼의 고뇌와 적요감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회환에 심한 가책을 받았던 것은 죽어가는 자신을 보고 있는 또 하나의 저였습니다. 저는 아마 그때 아주 짧은 순간 죽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저는 뭐였을까요? 저의 육체에서 벗어난, 저의 목숨 자체였던 건 아닐까요?

 

 

p. 149

 그런데 당신의 편지에 쓰여 있던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어쩌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구절을 본 순간 저는 이상한 흥분과 오랜 생각에 빠졌습니다. 죽음에 의해 그 생명의 모든 것이 사라져 없어진다는 사고는 어쩌면 인간의 오만한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 큰 착각이 아닐까?

 

 

p.155

 당신의 편지를 읽으면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아, 당신이 돗코누마 옆에 있던 그 산막 2층에서 저희가 지나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니요…… . 그뿐 아니라 다시 돗코누마를 따라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는 길로 돌아오는 저희를 몇 시간이나 계속 창가에서 서서 기다렸다니요…… . 저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p. 269

 제가 35년간 잃은 것 중에서 특별히 소중한 것이라면 어머니와 당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p. 276

 이 편지를 쓰면서 저는 당신에게서 받은 모든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것들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어느 것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저만의 마음의 무늬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딱 하나 글로 전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라는 것을 본 당신은 그것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무서워졌다고 썼지요. 하지만 사실은 짧다고 하면 짧다고 할 수 있고 또 길다고 하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강력한 양식이 되는 것을 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이 편지를 대체 어떻게 맺어야 좋을지 저는 펜을 쥔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는 왜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그런 말을 생각해 낸 것일까요?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어쩌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마치 어딘가에서 떨어져 솟아난 것 같은 뜻밖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말을 편지에 툭 써 넣은 일이 당신에게서 제가 몰랐던 많은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결코 말하지 않았을 말. '모차르트'의 주인이 마치 저에게서 들은 것으로만 착각했던 말. 우주의 불가사의한 구조, 생명의 불가사의한 구조라는 말이 저에게 깊은 전율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 * *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쓰인 문장들이 감동을 준다. 어쩌면 이미 지나가버린 일에 대한 미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풀리지 않았던 마음 속 응어리를 담담하면서도 극적인 표현으로 풀어낸다.

서로 주고 받은 편지는 당사자들에게 어떤 위로가 되었을까. 그럼에도 변함 없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안타까운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수용하기 위해서 이런 작업들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모쪼록 행복하기를.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 내가 좋아했던 일을 오랜만에 한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누군가에게 공감을 구하는 일. 하지만 같은 책이 같은 문장을 읽는다고 해서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땐 조금 외로웠다. 어쨌거나 내가 해야할 일은 보다 선명하게 내 마음을 읽어내는 것.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