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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2012. 6. 22. 10:38


                                                                                                    로이터, 2010/07/24



<개밥바리기 별>, <바리데기> 등
읽어보진 않았지만 엄청 많이 들어본 제목들, 바로 황석영 작가의 소설들이다.
교과서에 <삼포 가는 길>도 실려 있으니 한 번쯤 접해 볼 만도 한데
나는 그의 책을 처음으로 읽어보았다.
 
나는 책 속에 소개된 낯익은 세상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음 속 한 구석은 말할 수 없게 답답했다.
처음에 읽기 시작할때부터 주인공 소년들이 잘못되면 무척이나 슬플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


대학시절 '스펙과 PPL광고의 관계'를 주제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그림이 나왔었다.

판매 촉진과, 상품 생산과, 상품 소비의 무한 반복.
문득, 돈이 많아질수록 쓰레기도 많아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잠들기 전에 좀 울다가 잤다.
너무 부끄러워서 어깨가 무겁다. 

거대한 자본, 산업화의 부작용들.
우리나라는 너무 마음 아픈 나라다.
다른 가난한 나라들도 그렇다. 
오래된 미래, 라다크가 생각난다.


손에 들고 내려놓을 수가 없었던 책.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더 읽어볼 작정이다. 
글은 이런 사람들이 써야한다. 



* 책 속에서

p.94 
 도시 사람들은 멀쩡한 음식들을 미처 먹어 치우지 못하고 묵히다가, 또는 너무 많아 먹다먹다 질려서 버려대고 있었다. 비닐 속에서 녹아 미끈거리는 얼렸던 밥덩이며, 물주머니 같은 비닐에 가득한 굴이며, 말라비틀어진 생선이며, 녹지 않은 고깃덩어리들, 겉잎사귀만 벗겨내면 아직도 싱싱한 노란 양배추, 새벽 수산시장에서 버려진 엄청난 내장들과 생선의 대가리 꼬리 또는 팔다 남은 멀쩡한 것들, 그야말로 이런 때 며칠은 꽃섬 사람들에게 밤마다 잔칫날이나 마찬가지였다.

 p.124 
 달빛이란 전깃불 빛과 달라서 추한 것들은 적당히 감춰주고 강이나 나무나 풀이나 돌멩이와 물건들까지도 친근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p.137
 저건 풀꽃들 씨앗이야. 우리 식구들이 모두 거두었어. 봄이 오면 꽃섬의 흙이 있는 어디에나 뿌릴 거다.

p.206-207
 집이든 나무든 바위든 강이든 모두가 장애물이고 괴물은 나를 출발점으로 떨어뜨리려는 나의 적일 뿐이다. 나는 되돌아가지도 못하고 한없이 나아가면서 건너뛰고, 솟구쳐오르고, 붙잡고, 매달리고, 물리치면서 점수를 올려야만 한다. 겨우 일차적 성취를 끝내고 나는 높다란 성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다시 이르렀다. 이미 내가 걸어온 길은 화면 밖으로 밀려나가 돌아갈 퇴로도 없다. 이것은 무수하게 반복되는 행진이며 최대의 성취에 이른다 할지라도 언제나 출발점으로 되돌아간다. 성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 있는데 뒷전에서 컬컬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얘야, 가지 마라. 그럴듯하지만 이건 꾸민 거란다. 뒤를 돌아 보니 김서방네 할아버지가 서 있다. 여긴 웬일이세요? 내가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말한다. 사람들이 그 길로 가다가 모두 망쳐버렸다. 지름길인 줄 알고 갔지만 호되게 값을 치를 게다. 온 세상의 산 것들과 물건들이 너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잊지 마라. 나는 그리운 꿈 같은 기억을 떠올리며 외쳤다. 할아버지네 동네에 가본 적이 있어요. 거긴 여기와 다른가요? 암, 다르구말구. 우리 동네는 언제나 너희 곁에 함께 있는 곳이다. 너희들이 있어서 우리가 있게 되고 너희가 없어지면 우리도 없어지는 거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오리 한 마리, 산과 강에 이르기까지 함께 살고 너와 똑같단다. 여기서는 모든 물건이 장애물이고 싸워서 없애야 할 괴물에 둘러싸인 너 혼자뿐이로구나. 이쪽 길은 너를 끝없이 쫓아내려 하고 성취에 길들이려고 하지 않니? 그냥, 출발하지 말고 나가버리면 될 텐데……

p.218-219
 할아버지가 딸이 다른 데로 가지 못하도록 허리춤을 잡고 있었건만 그녀는 일어나서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소리쳤다.
 망할 것들아, 여기 니들만 사는 줄 알아? 니덜 사람 새끼 다 없어져도 세상은 그대루야.
 얘야, 알았다 알았어, 다 애비 잘못이다.
 만물상 할아버지가 헛소리를 하는 딸의 어깨를 눌러서 주저 앉히고는 힘에 부치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딱부리도 합세해서 빼빼엄마의 허리를 붙잡고 앉았다. 그녀는 붙잡힌 어깨를 뿌리치려고 몸부림치면서 다시 외쳤다.
 세상에 니들만 사는 줄 아냐? 

p.220-221
 쓰레기는 도시의 각 구역마다 매일 발생했지만 수집꾼들은 거처를 잃어버렸고 당장에 모아둔 폐품도 없어서 오두막을 지을 형편이 못 되었다. 화상을 입은 부상자들도 많았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수집꿈들 중에는 후유증을 앓는 사람들이 절반은 넘었을 것이다. 오두막동네 사람들은 불탄 자리에서 아무것도 건진 게 없었다. 세월이 가다보면 쓰레기 속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집어다 다시 살림도구를 장만하게 될 거였다.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장판지 아래 묻어두었던 돈도 모두 타버렸을 것이다. 스티로폼과 비닐이 열기에 녹아서 모두 검은 덩어리로 변해버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쓰레기차는 날마다 몰려들어왔으며, 임시 천막을 수십 동씩 쳐놓고 작업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엄마는 하루에 두 번씩 약을 먹으면서 견디었는데, 수집꾼들은 서로 두통약을 권했다. 

p.225
 이런 못쓰는 물건들을 왜 소중하게 감춰두는 거예요?
 서루간에 정들어서 그러지.
 그럼 저어기 쓰레기장 물건들은요?
 빼빼엄마는 검댕이 잔뜩 묻은 더러운 얼굴을 돌리고 야멸치게 말했다.
 저것들은 사람들이 정을 준 게 아니잖아!

p.226
 봄은 바람을 따라 찾아왔다. 사십 일 만에 조립식 주택 오십여 동이 완공되었고, 한 동네 네다섯 평짜리 방이 스물여섯 개나 되었다. 간이 공동샤워장도 생겼다. 바르게 사는 사람이 되는 교육을 받으러 갔다던 딱부리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으며, 아수라 반장에게서는 감옥 미화부에서 일한다는 편지가 왔다. 오두막동네가 불탄 뒤로 빼빼엄마는 증세가 더욱 악회되었다. 그녀는 작업장은 물론이고 읍내까지 휘젓고 다니더니 관리사무소의 신고로 병원에 실려갔고, 그해 내내 병원에서 나오지 못했다. 딱부리는 그들 모두 소독이라도 한 것처럼 새 사람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엄마의 남은 소망은 딱부리를 학교에 보내는 것이었는데, 그는 감옥이며 병원이나 학교 같은 곳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p.228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딱부리는 이제 알고 있었다. 수많은 도시의 변두리에서 중심가까지의 집과 건물과 자동차 들과 강변도로와 철교와 조명 불빛과 귀청을 찢는 듯한 소음과 주정꾼이 토해낸 오물과 쓰레기장과 버려진 물건들과 먼지와 연기와 썩는 냄새와 모든 독극물에 이르기까지, 이런 엄청난 것들을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사람 모두가 지어냈다는것을. 하지만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들판의 타버린 잿더미를 뚫고 온갖 풀꽃들이 솟아나 바람에 한들거리고, 그을린 나뭇가지 위의 여린 새잎도 짙푸른 억새의 새싹도 다시 돋아나게 될 것이다.



 
: 작가의 말 中

 난지도 쓰레기장에 묻어버린 것은 지난 시대의 우리들의 욕망이었지만, 거대한 독극물의 무덤 위에 번성한 풀꽃과 나무들의 푸르름은 그것의 덧없음을 덮어주고 어루만져주고 있는 듯하다. 도깨비가 사라진 것은 전기가 들어오고부터라는 시골 노인들의 말처럼, 지금의 세계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온 도깨비를 끝없이 살해한 과정이었다. 나는 이들 우리 속의 정령을 불러내어 그이들의 마음으로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 있는 거냐?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