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그리고 멀리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1.19 화가의 역할 6
  2. 2011.01.04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8
느낌과 기억의 기록2011. 1. 19. 00:13



 Vincent van Gogh: "Child with Orange", 1890


 

  에리봉  화가의 일은 무엇인가를 재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색채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당신에게 반박을 가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  내가 보기에, 화가의 일은 현실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6세기와 17세기의 네덜란드 정물화가들이 치즈 조각의 구조, 투명한 유리잔, 솜털로 뒤덮인 과일을 정확히 묘사하려고 노력한 것은, 물리적인 인상과 화가의 작업이 내포하는 지적인 작용 사이에 상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가치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화가의 작업은 감각 세계에 대한 지적인 반영이 됩니다. 화가는 우리가 내부로부터 감각 세계를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에리봉  술라주는 당신이 19세기의 군소 화가들만 찬양한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  그건 부정확한 지적입니다. 왜냐하면 『야생의 사고』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문자 P를 사용할 수 있는 화가peintre가 모든 것을 발견했으며, 그 이후의 회화는 그가 이룩해놓은 것으로 살 수 있을 만큼 우리가 빚지고 있는 화가가 있는데, 그가 바로 반 데르 바이던Van der Weyden이라고 밝혔기 때문이지요. 다른 화가들에게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에게 내 자신이 보는 것보다 실재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세상사 속에서 나를 감동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나의 지각과 인식 능력을 보조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혹은 한때는 실재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초현실 세계로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지요. 나는 막스 에른스트에 감탄하는 글을 쓰기도 했어요. 이런 사실은 내가 현대화에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대담 디디에 에리봉,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송태현 옮김, 강, 2003, pp.265~266.




  

 나는 화가를 바라보는 레비스트로스의 시각에 동의한다. 언젠가 나는 화가의 역할이란 '사람들이 세상을 더욱 사랑하도록 돕는 것'이라 여겼던 적이 있다. 화가의 역할이 그림에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진기로 대체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일반 사람들은 인식하기 어려운 실존하는 것들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평가하는 대표적인 화가로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를 들 수 있다. 그의 생애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그는 색채를 통해서 연인의 사랑, 마음의 떨림, 사상, 희망, 열정등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이를 눈속임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밖에 인식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초현실의 세계로 초대하는 화가들로는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세라핀 루이(Séraphine Louis, 1864~1942), 파블로 아마링고(Pablo Amaringo, 1943~2009) 등을 들 수 있다.




Posted by 보리바라봄
책 읽기2011. 1. 4. 19:11

http://www.dsweetvery.com/ soony draw

 

 

 

p.257~258

 

에리봉  당신은 그 글에서 "모든 민족학자는 자신의 『고백록』을 쓴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아를 거쳐서 자아로부터 벗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항시 개인적인 정체성의 감정, 자아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선언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  나로서는 그 점에서 모순을 느끼지 않아요. 

만일 어떤 사람이 개인적인 정체성의 감정이 없다면, 

그 사람은 특별한 상황을 겪은 후에 자아를 포착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테지요. 

민족지학적 경험은 연구자를 벗어나는 어떤 것에 대한 경험적인 탐구입니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안다면, 이국 땅에서 모험하며 자신을 찾으러 갈 필요가 없겠지요.

 

에리봉  당신은 자신의 자아를 잘 모른다고 생각합니까?

 

레비스트로스  거의 몰라요.

 

에리봉  그 점은 당신에게만 고유한 것인가요, 아니면 인류 정신의 특성인가요?

 

레비스트로스  그게 나만의 특성이라고 자부하진 않겠어요. 

개인적인 정체성의 감정을 우리에게 부과한 것은 바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에리봉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라고 

그의 저서들에 서명하게 만드는 것도 사회입니까?

 

레비스트로스  그래요. 사회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며, 

그 사람이 자신이 행하고 말하는 바의 책임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만일 이 사회적인 압력이 없다면, 개인적인 정체성의 감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험한다고 믿는 것처럼 강렬하지는 않다고 확신해요.






Posted by 보리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