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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03 달과 6펜스 - 서머싯 몸
책 읽기2015. 1. 3. 21:55

 

 

 

Paul Gauguin’s Ia Orana Maria (Hail Mary) (1891)

 

 

 

p.245

 대개의 사람들이 틀에 박힌 생활의 궤도에 편안하게 정착하는 마흔일곱 살의 나이에, 새로운 세계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던 그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p.253-254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태어난 곳에서도 마냥 낯선 곳에 온 사람처럼 살고, 어린 시절부터 늘 다녔던 나무 우거진 샛길도, 어린 시절 뛰어 놀았던 바글대는 길거리도 한갓 지나가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가족들 사이에서도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고,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보아온 주변 풍경에도 늘 서먹서먹한 기분을 느끼며 지낼지 모른다.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또는 격세유전으로 내려온 어떤 뿌리 깊은 본능이 이 방랑자를 자꾸 충동질하여 그네의 조상이 역사의 저 희미한 여명기에 떠났던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때로 어떤 사람은 정말 신비스럽게도 바로 여기가 내가 살 곳이라 느껴지는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그곳이 바로 그처럼 애타게 찾아 헤맸던 고향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그들이 죄다 태어날 때부터 낯익었던 풍경과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정착하고 만다. 마침내 그는 이곳에서 휴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서머싯 몸의 소설.

 

"당신 나이에 시작해서 잘될 것 같습니까? 그림은 다들 십칠 팔 세에 시작하지 않습니까?" 라는 물음에

"열여덟 살 때보다는 더 빨리 배울 수 있소"라고 답하는 스트릭랜드에게 반해 읽게된 책이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열정적인 스트릭랜드는 어떤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그런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절박함이 있지 않았을까. 집념의 세계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제목은 '달'이라는 이상세계와 '6펜스'라는 물질/현실세계를 대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스트릭랜드의 몇 가지 행적만 봐도 충분히 눈치 챌만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철저히 달 중심의 인물이다. 인간이라면 흔히 하게 되는 두 세계 사이에서의 고뇌나 번민이 없다. '6펜스'의 세계에서도 살아봤으니 미련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나서야 알았지만 실제 고갱의 행적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극적인 요소를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표현한듯 싶기는 하지만(특히 스트릭랜드가 모든걸 버리고 화가의 길로 들어서는 장면), 실제 고갱의 삶에서의 인과관계가 좀 더 매끄럽다.

 

p. 311

 증권 일을 하던 20대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30대 초반부터는 전시회에 그림을 출품하기 시작한다. 35세가 되던 해에 증권 시장의 붕괴로 일자리를 잃고 전업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생활이 궁핍해지면서 부부간의 갈등이 심해지자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그를 떠나버리는데 이것은 스트릭랜드의 경우와는 딴판이다. 

 

 

아무래도 책 속의 인물 스트릭랜드는 어떤 행동이나 말 대부분이 지나치리만큼 과장된 인물처럼 보인다. 그런 인물이라 책을 읽는 사람들이 더 매력을 느끼고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 같기는 하지만.

 

고갱이 더 궁금해지는 책이다.

고갱은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물음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Posted by 보리바라봄